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대로 Mar 08. 2024

화사하게 버텨내는 힘, 눈새기꽃

 봄은 기다렸기에 빛난다. 견디며 버티는 사람에게 봄은 빛나는 희망이다. 견디는 시간은 길다. 어느 지점까지 버텨야 하는 지를 안다면 쉽겠지만, 늘 그렇듯 그 지점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버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삶의 대부분은 버티는 시간이다. 격정적인 순간은 잠깐이고, 좋고 유익한 것은 매력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 어정쩡한 시간을 버티는 것이 실력이고 힘이다.


  물기를 없애며 겨울바람을 버티는 산에서, 햇살이 풍부하지 않은 자갈틈에서도 기운차게 밀어 올려 꽃을 피우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겨울은 멈춤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조건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버티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것은 생명체의 숙명이다. 이 몸부림이 세상에 인정받을 수 있다면 힘이 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버텨야 생존할 수 있다.


  어정쩡하게 매여 존재감을 확인하기 어려운 삶터에서 박차고 나오고 싶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할 때가 있다.  메마르게 버티는 시간이 식물에게는 겨울이다. 남녘은 이미 매화소식이 시끄러워도, 높은 산은 그리 쉽게 봄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3월 첫날에 내장산을 향한다. 해마다 만난 그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떠난다. 그러면서도 다가갈 때는 만나지 못해도 섭섭해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크니까.


  복을 받고 장수를 기원하는 바람이 담겨서 복수초라고 이름불리지만, 그 이름이 못마땅하다. 이름은 소리와 뜻의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좋은 이름이다. 그래서 눈에서 꽃을 새긴다는 눈새기꽃이나 얼음 사이에서 피어난다는 얼음새꽃의 이름에 더 마음이 간다. 이미 굳어버린 이름이라 바꾸기가 어렵다고도 하지만, 자꾸 부르며 관심을 가지면 풍부한 뜻이 살아날 것 같다.   


  올해도 만났다. 오후 3시의 부족한 햇빛에도 아직 꽃잎을 다 오므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환하고 노란 꽃잎 안에 가득 찬 쌀알 같은 수술이 옹골차게 맺혀있다. 하는 일이 복잡하게 꼬일 때 나만 벌 받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나약하게도. 그럴 때 이 꽃을 떠올리리라. 3월에 내리는 눈에도 지지 않고, 노랗고 환한 잎을 짱짱하게 펼쳐내는 기운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기세 등등하게  벼텨낼 것이다.




이전 02화 봄바람 몰고 오는 너도바람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