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흔적
본인의 삶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가?
나는 잠들기 전에 이불킥을 할 에피소드나, 슬펐던 기억이 종종 떠오른다. 그럴때마다 방송국 PD처럼 기억을 편집하고 삭제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예를 들면 치기어리게 행동했던 일들, 응급실 원무과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공허한 죽음들, 가벼운듯 무거운 기억들이 나를 여러가지 감정에게 잠식시켰다.
지나간 일에 반성을 하거나 새로운 동기를 가지고 좋은 다짐을 하겠다는 마음 보다는 '아.. 모르겠다'라며 릴스나 숏츠로 생각의 흐름을 회피하고 언제 잠든지 모르게 잠들었다.
그렇게 아침에 깨면 말린 동태마냥 피곤에 절은 눈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니까 지나간 일이라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얼룩이 되어 내 일상에 남겨지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흉터가 아닌 성장의 흔적으로 바꾸는 연습을 했다.
나는 아직도 25살 치기어린 내 모습을 떠올리면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때는 내 생각이 다 맞는줄 알았고 타인도 당연히 내 의견에 동의해야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거침없는 표현과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였다. 본인이 잘못된지 모르고 혼자 '잘'하고 있다 착각하는 것 만큼 무서운게 없는데 그 무서운걸 내가 오랜기간 지속한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행동이고 주어담을 수 없으니 스스로 깊이 후회하며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 지나간 시간을 회고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걸 인지하고 상황을 한번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네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뭐야?'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응급실에서의 근무라고 대답할것이다.
인생에서 한번 볼까말까한 일들을 1년동안 매일 경험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모두가 고군분투하는 곳의 무게를 체감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 재정이 어려운 할머니 손잡고 온 초등학생아이, 저 멀리 지방에서 죽음을 위해 한강까지 온 고등학생, 자신의 상처를 가리고 싶어 문신으로 가득 채웠다고 한 대학생.. 그때 대면했던 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아무리 돕고 싶은 마음이 커도 내가 감정에 빠져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삶에 열심을 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러한 생각의 과정들이 내게 주어진 사회의 공간에서 조금 더 유심히 관찰하고, 마음을 들여 행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일상을 흐트러트리는 여러 가지 흔적들을 깊이 생각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들이 하루의 생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나의 흉터를 성장의 흔적으로 승화시키며 기쁜 마음으로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리라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