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by 끄적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행복한 걸까?"


잘 모르겠어.


누군가는 이미 가진 것들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답을 쉽게 말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행복"이라 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었다.

한때 나에게는 분명했던 행복의 기준.


안정적인 집, 건강한 가족, 일할 수 있는 직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


그 모든 게 갖춰졌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 이제 행복한 것 같아.”


모든 게 만족스러워 이 행복이

계속 이어질 것을 예상하고 희망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나만의 행복 모형틀을 만들었다.

이 틀에서 벗어나면 '행복이 아닌 불행이야.'라고

정해둔 것이었다.


행복이 아니라면 불행,

흑 아니면 백,

너무 짧은 생각이었다.




2025년 1월,

난임을 진단받고 그 단단했던 행복이 무너졌다.

삶의 다른 부분은 그대로였지만,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현실이 마음의 무게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불행하다’는 단어가 마음을 뒤덮었다.

아기를 갖고 싶을 때 임신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렵게 겪어야 할까 싶었다.


이 무게를 견디기가 너무나도 버거웠다.

여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두려움,

혹여 아이가 없는 삶을 상상할 때 밀려오는

공허함과 고통.


시험관 시술에 집중하기 위해 퇴사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엔 “그래, 푹 쉬어보자” 했지만,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고, 고요는 점점 불안으로 변해갔다.


시험관 시술이, 임신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저차수로 끝나길 바랐던 시험관 시술은 길어져만 가고 있다.


기쁨과 좌절 반복의 반복 속에서

이렇게 힘들 거면 기쁨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혼자만의 시간이 위태했던 순간이 있었다.


우리 집은 12층인데,

'떨어지면 많이 아플까?'


그 생각은 내가 만든 게 아닌 것처럼

갑자기 스쳐 지나갔다.


답이 없는 막연한 생각이 뒤를 이었다.

내 생각이 내 의지대로 흐르지 않았던 것인가,

아니면 의식이 누르고 있던 무의식이 튀어나온 걸까.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한 거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뭔가를 해야겠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잡념들을 막고 싶어

더 열심히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하고, 자격증 공부,

저녁식사 준비 등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루틴을 병적으로 해냈다.


병적이던 루틴은 몸이 못 버티겠는지,

균형 잡힌 루틴으로 완급조절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채우다 보니,

버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야,

나 꽤 괜찮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7시 30분에 일어나면 직접 만든 요거트와 과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단지 내 헬스장에서 1시간 30분 땀나는 운동을 한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대추차 한 잔을 타서 블로그 포스팅을 작성하고 발행한다.

12시 30분이 되면 내가 먹고 싶은 반찬들로 점심식사를 먹고 영양제를 챙긴다.

오후에는 낮잠 자고 싶으면 자고, 책을 읽거나, 집안 청소를 한다.

저녁 시간이 되면 남편과 함께 먹을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에서 각자 할 공부 후 집으로 귀가한다.


내 하루가 끝난다.





나에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에 집중하면

모든 것이 나아진다.


결국 행복을 정하는 키맨은

행복해할 만한 일들이 아닌, '나'였다.


안정적인 집이 있고, 건강한 부모님, 형제들과도 여전히 웃을 일이 많다.

내 옆에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실감하고 있다.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퇴사 후 나의 하루는 여전히 길고,

그 고요한 틈 사이로 이런 생각들이 여전히 스며든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행복한 걸까?"


행복이라고 이름 짓지 않을래.

오늘 하루 무탈하게 흘러갔다면,

그 무탈함이 그저 좋았다면 된 거야.


행복은 완벽할 때 느끼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삶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독일 때 피어나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아기를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그게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나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으면

"엄마, 아빠, 이제 준비 됐어? 부모가 될 준비"

라며 찾아올 아기를 기다린다.


오늘도 내 일상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균형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