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사랑한 여자의 비자발적 퇴사:계속 일하고 싶었다.

난임으로 퇴사한 나의 이야기

by 끄적


24살, 휴학 없이 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시작한 사회생활.

20대의 나에게 있어 일은 곧 나 자신이었다.


"요즘 애들은 책임감이 없다."

"90년대생 애들.. MZ세대는 다 그렇다."

"자기가 먼저다."


내 또래가 들으면 다소 억울해 할 일반화의 오류.


나는 감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일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고야 말았다.


'일 = 나'

성과는 곧 존재 가치였다.

나는 스스로를 성장시킨다는 명분 아래, 사실상 일중독자가 되어갔다.


일이 잘 되어야 내 존재 가치가 입증되는 것 같았고,

일이 원하는 만큼 성과가 나지 않으면 내가 무너지는 그런 일 중독자였다.

일하는 과정이 모두 좋지만은 않았고, 순탄하지만도 않았다.

마음 다치는 일도 있었고, 체력이 바닥나 몸이 아팠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버텼다.

성과로 증명하면 된다고 믿었다.


작은 조직이었지만 노력은 인정받았고,

연차에 비해 빠르게 승진했다.


나는 확신했다.

90%의 노력과 10%의 운이 따른다면,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

그래서 결혼 초반까지는 딩크를 선언하기도 했다.

커리어가 먼저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일로서 존재 가치를 느꼈던 나는,

임신이라는 과업 앞에서 결국 일을 내려놓았다.




많은 여성에게 30대와 40대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질문과 마주하는 시기다.

실제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기로 해도,

그 고민을 하는 과정과 결정 또한 큰 과업이다.

선택을 하든 하지 않든, 그 고민을 통과해야 하는 시간.


특히 나에게는 더 큰 산처럼 느껴졌던 "임신과 출산"

3번의 임신 초기 계류유산,

두 번째 유산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된 극심한 난소기능저하.

나는 난임이었다.


그 사실을 처음 맞닥뜨린 후

내가 무너지고, 나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슬픔에 잠겼다.


하지만 시간이 약.

슬픔도, 아픔도 무디게 만든다.

살아가려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자연임신의 가능성은 바닥과 가까웠고,

바로 시험관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

시험관은 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멘탈관리 역시 필수였다.


그럼에도 '해낼 수 있을 거야'

특유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직장을 병행하며 1차 시험관을 시작했다.


편도 1시간 반, 지하철에서 내내 서있는 하루 3시간의 출퇴근.

관리자로서의 8시간은 나를 챙길 겨를 없이 내내 돌아갔다.

“빨리. 정확하게.”

업무는 늘 그렇게 나를 몰아붙였다.


난소 상태에 따라 수시로 난임병원을 찾아야 했고,

가뜩이나 눈치 많이 보는 나를 더 눈치 보게 했다.

예상할 수 없는 진료 대기 시간은 밀리고 밀려 미리 써둔 반차를 다시 조정하게 만들었다.

비는 시간만큼 구멍난 업무의 빈틈을 야근으로 메웠다.


이미 예민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점 더 예민해지는 나를 보며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난임으로 퇴사를 고민하는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내가 쌓아온 경력이 너무 아깝고,
매달 들어오는 수입이 없으면 외벌이로는 부족한데 가계 운영은 어떡하지,
난임으로 퇴사한 걸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게 싫고,
퇴사하기에 경력단절이 무섭고,
나중에 재취업이 될까,
나중에 취업이 되어도 지금만큼 역량이 있을까?

그리고 가장 잔인한 질문.

내가 이전에 어떤 잘못을 했기에 난임이 되었을까?
왜 내가 일을 그만둬야 돼?
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런 선택 앞에 서야 하지.
다들 챙기는 출산, 육아휴직 제도 나도 쓰고 싶은데 너무 억울하다.

그냥 다 억울하다.


이 외에도 더 많은 현실적인 고민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수많은 생각 끝에 남은 건 딱 하나의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퇴사 결심의 트리거가 되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

아기를 가지기 위한 때, 지금이 그 "때"라는 것.


일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기는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써도 어려울지 모른다.


나는 아이를 품을 수 있는 자궁을 가진 여성으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 앞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퇴사"를 말했다.

두 번의 유산을 지켜본 직장 관리자들은 나를 끝까지 붙잡지는 못했다.


일이 곧 나임을 어떻게든 입증하려 일중독자가 된 나는,

난임으로 인해 비자발적인 퇴사를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만족한다.


출근 후 근무시간 내내 함께했던 이명과 뒷골 통증은 금방 사라졌다.

일에 밀려 관심조차 두지 못했던 재테크 공부, 자격증 취득,

내가 일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도 탐색하고 있다.


사회복지가 곧 나의 정체성이야! 했던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졌음을 스스로 느낀다.


퇴사의 이유가 어찌 됐든,

일에 집중해서 보지 못했던 다른 것들을 보게 했고

나의 삶의 구조는 더 건강해졌다.


시험관 과정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좌절의 시기가 또 올 것이다.

또, 종종 들려오는 퇴사 후 바로 임신 됐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퇴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한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그 책임을 어떻게 살아낼지는 나의 몫이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

나는 일을 내려놓았지만, 조금 더 단단해진 나 자신을 얻었다.

일의 성과로만 나를 증명하던 사람에서,

삶 전체로 나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일을 사랑한다.

다만,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