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옥 Aug 20. 2023

내가 웃을 수 있다고 남도 웃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벼락 맞고 울고 웃는 하우스키퍼

“이민 와서 이 고생하는 내 팔자가 너무 서러워서 우는 거야. 교수인 너는 이해 못 할 거야. “


머리카락부터 유니폼까지 물에 흠뻑 젖은 미쉘이 화장실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이 됐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욕조가 없는 샤워부스는 통상 샤워기 바로 밑에 서서 청소를 하는 자세가 나온다. 그 자세로 수도꼭지를 닦다가 실수로 순간 물이 틀어지면 영락없이 물벼락을 맞는 것이다. 이 함정에 빠져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첫 달에 이런 식으로 찬물에 신고식을 당했다. 얼마나 젖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울 앞으로 갔다.


“이게 무슨 꼴이냐,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네.”


유니폼이 물에 젖으니 너무 야해 보였다. 도저히 복도로 나갈 수가 없었다. 객실에 다시 들어가 방문을 잠그고 유니폼을 홀딱 벗었다. 헤어 드라이기로 유니폼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깔깔깔 웃음이 나왔다. 드라이기 소리에 내 웃음소리가 묻혀버리니 누가 들을까 걱정할 것 없이 속시원히 웃을 수가 있었다.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미쉘,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너무 웃겨서 나 혼자 막 웃었지 뭐야. 괜찮아, 일어나. 드라이기로 말리면 돼."

"너는 이런 일 안 해도 되는데 하는 거니까 웃을 수 있는 거야. 나는 정말 하기 싫거든. 근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까 눈물이 나는 거야."


미쉘 말이 맞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자진해서 하는 사람과

해야만 하기에 마지못해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상황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위로는 상대방이 힘들어하는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다. 미쉘의 눈물을 미처 헤아리지도 못하고 위로하려 했던 말과 행동이 너무 가벼웠지 않았나 싶어 내심 부끄러웠다.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를 감히 쓰다듬어 줄 용기조차도 수그러들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볼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기를 꺼내어 둘둘 말려진 전선을 풀며 등 뒤에 있는 미쉘에게 말했다.


"미안해. 내가 드라이기로 옷 말리는 거 도와줄게."


차마 벗으라고 까지는 못하겠고, 드라이기로 그녀의 등 뒤를 쐬어주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지금 당장 미쉘을 위로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드라이기를 미쉘 손에 쥐어주었다.


"앞쪽은 네가 말려. 내가 니 방 하나 청소해 줄게. 천천히 말리고 나와."

"고마워."


끌어안고 허그를 한다거나 오버해서 구두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미국식 인사 따윈 없었다. 하지만 미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진한 허그에서도 느끼기 힘든 깊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미쉘이 맡은 방으로 가서 침대시트를 벗기기 시작했다.


"내가 웃을 수 있다고 해서 남도 웃을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웃기를 바라는 것은 교만하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한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위로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을 때, 이 네 가지를 상기하기로 했다.

나의 상황이 아니라 상대방이 처한 상황 파악하기,

나의 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

내가 상대방에게 해주고싶은 말이 아니라, 지금 상대방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

내가 보여주고 싶은 행동이 아니라, 지금 상대방에게 가장 위로가 될 행동으로 위로해 주기.

작가의 이전글 유산한 임산부로부터 되려 위로를 받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