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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옥 Nov 03. 2023

거절을 당해도 상처받지 않으려면

하우스키퍼의 운동화

“됐어요. 나 이런 거 필요 없어요. 너무 꽉 껴서 불편해요. “


거절하는 운동화를 들고 집으로 왔다. 일주일간 설레었던 마음이 민망했다.


괜히 줬나? 부담이 된 걸까? 혹시 자존심이 상한 건가? 내가 선을 넘었나?

“됐어요” 보다 “괜찮아요”라고 해주면 안 되는 거였나?


사랑을 주려다 상처를 받은 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무단히도 애를 쓴 날이다.


선행에도 적당한 선이 있다면 그 적당한 선이 어디까지인지 대입만 하면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공식 같았으면 좋겠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선행을 베풀기 전에 나를 먼저 챙겨라. 이것이 오늘 배운 나만의 인생 공식이다.


미쉘의 운동화

떨어진 걸레를 주우려는데 미쉘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약간 낡긴 했는데 아직 신을 만해 보였다. 심플한 디자인에 알아볼 만한 브랜드 로고는 보이지 않았다.


브랜드가 있느냐 없느냐, 비싼 거냐 저렴한 거냐의 문제이기보다는 장시간을 서서 청소를 하는 하우스키퍼인지라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운동화의 창이다. 신고 있는 운동화의 안창은 볼 수 없지만 밑창과 중창만 봐도 내 발바닥과 다리에 피로함이 느껴졌다.


막일로 다져진 몸매

청소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온몸이 욱신거릴 정도로 힘들었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랬던 것이다.

몸에 익으니까 요즘에는 처음처럼 삭신이 쑤시지는 않는다. 그만큼 어느새 내 몸이 막일하기에 딱 좋은 체형으로 가다듬어졌다. 팔뚝은 단단해져서 여름에 민소매 입기가 좀 부끄러울 정도로 건강해 보인다. 어깨부터 등짝까지 탄력이 더해져 좋게 말하자면 뒤태가 듬직해 보인다.


근육량이 늘어 막노동에 익숙해진 몸이더라도 쉽게 피로가 쌓이는 곳이 하체 부위이다. 특히 발바닥과 종아리.


좋은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 이유

달리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종아리가 터질 것 같이 힘들 때가 있다. 서서 일하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인지 몸소 체험하며 알게 되었다. 발바닥에서는 불이나고 아프다 못해 혹시 이러다 평발이라도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레이나, 양말이라도 두꺼운 거 신고 발바닥에 푹신한 깔창을 깔아."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나보다 먼저 시작한 하우스키퍼 선배가 준 팁이 내 다리를 살렸다. 청소한다고 막 신었던 헌 운동화를 버리고 괜찮은 운동화로 갈아 신고 나서 발바닥과 다리 통증이 덜했다.


마샬에서 건진 푸마 운동화

나도 이 같은 경험을 했기에 미쉘에게 좋은 운동화 한 켤레를 사주고 싶었다.


얼마 전 딸아이 옷을 사주고 마샬(Marshalls)로 쇼핑을 갔었다. 브랜드가 있는 물품들을 저렴하게 파는 곳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알만한 프랜차이즈 할인매장이다.


운동화를 사려고 벼르고 있던 참에 이때가 기회다 싶었다. 딸아이가 옷을 고를 동안 신발코너로 갔다. 디자인보다는 오래 신어도 발이 편했으면 하는 운동화를 사주고 싶었다.


흐뭇하게 푸마(PUMA) 한 켤레를 주워 들었다. 신어보니 착용감이 꼭 맘에 들었다. 푹신하면서도 단단한 밑창이 딱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장땡이다. 딱이야, 딱!”


 계산하고 집에 오는 길이 무척 설레었다. 그런 설렘으로 일주일을 지내고 주말이 왔다.


고민

포장까지 해서 주면 부담을 느낄 것 같아서 그냥 들고 출근했다.


"성의가 없어 보이나? 아니다, 생일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너무 거창하게 준비해서 주는 게 되려 더 오버일 수 도 있겠다." 전달해 주는 방법을 혼자서 고민했다.


락커실에서 미쉘을 만났다. 다행히도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 가볍게 건네주는 거야."


됐어요

"미쉘, 이거 내가 딸이랑 마샬에 갔다가 미쉘 생각나서 산 거예요."


운동화를 받아 한쪽 발을 넣다 말고 불편하다며 돌려주었다.


“됐어요. 나 이런 거 필요 없어요. 너무 꽉 껴서 불편해요. “


"됐어요."라는 한마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순간 당황했다. 나의 호의가 기분을 나쁘게 했나? 나는 또 선을 넘은 것인가?


오지랖

괜히 오지랖 떨었나 보다.


늘 학생들에게 잘해주고 허무함을 느낀다. 뭘 바라고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과하게 줘버린 탓이다. 꼭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온 힘을 다해 응원하고 멘토링을 해줬는데 졸업식 때 인사도 없이 떠나버리면 씁쓸하다. 해마다 각오한다.


각오

"올해는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사랑하자, 이제는 적당히 잘해주자. 졸업할 때 내 곁을 떠나도 아쉽지 않을 만큼만 가까워지자. 오지랖 떨지 말자."


나도 모르게 각오하며 그어둔 선을 무의식 중에 넘어버리고 만다. 이미 돌이키기 힘들 만큼 와버린 후에야 선을 넘어버린 나를 발견한다.

잘해주려고 하는 내 마음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클 때는 속상하기도 하다. 이렇게 비율이 맞지 않을 때는 주고 싶은 마음도 이기적일 수 있는 것이다.


선행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면 상황마다 관계마다 달라지는 그 선은 대체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나부터 챙기는 연습

거절당한 운동화는 내가 신기로 했다.

환불받기 위해  마샬에 다시 가자니 시간이 아깝다.

마샬에 가면 빈손으로 나올 확률이 희박하다. 입장하는 순간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지는 환각상태에 빠지게 되는 이상한 곳이다. 장단컨데 환불받는 금액보다 소비하는 금액이 더 클 것이다.

마침 그 운동화가 내 발사이즈이지 뭐야.

생각해 보니 나를 위한 운동화 한 켤레 정도는 기분전환에 좋을 것 같았다.


남 챙기기 전에 나를 먼저 챙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먼저 건강해야 남을 챙기는 일이 더욱 의미가 있어진다.

그래야 거절을 당해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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