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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옥 Jun 01. 2023

공부는 가성비 최고의 노동

아르바이트를 꼭 해봐야 하는 이유

“우리 딸도 나이가 되면 호텔 데리고 와서 일을 시켜보려고요.”

“왜요? 박교수 참 특이해요. 우리 애들은 이런 일 절대 시키지 않을 거예요.”


같이 청소하는 또래 학부모가 단호하게 말했다.  


“청소는 할 게 못되요.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시키지요.”


정말 한국 학부모 다운 말이다.


호텔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내 딸이 지금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하기보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꼭 해봐야 한다는 확신이 든다. 호텔이던 맥도널드이던 어디에서든지 최저임금을 받아가며 가장 어려운 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 문제집 한두 장 더 풀어가며 공부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더 의미 있는 결과를 갖고 올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 가성비가 가장 훌륭한 노동은 바로 공부라는 것. 더 정확히는 “배움”이라는 것. 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꼭 학교에서만 배움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배우기에 학교만큼 확실한 곳은 없다.


학벌은 결코 좋은 직업,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가정, 삶의 만족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는 확률을 확실히 높여주긴 한다. 내 딸이 굳이 명문대를 가지 않아도 좋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을 진학하지 않아도 좋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을 못했다면 바로 대학을 진학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 경험도 해보고 여행도 다니면서 대학에서 공부해보고 싶은 전공을 찾을 후에 진학하는 게 되려 이상적이긴 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성적은 되돌이킬 수 없기에 지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배우고자 할 때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공부를 하면 살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건 보장할 수 있다. 공부는 죽을 때까지 써먹을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노동이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지금 공부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거야.”


아마 한국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잔소리를 백만 번 하는 것보다 힘든 일을 직접 시켜봐야 몸소 느끼고 정신을 차리는데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나의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여느 한국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부모님 또한 공부만이 살 길이라 철덕같이 믿었기에 공부에 전혀 관심 없는 오빠를 정신 차리게 하려고 오만 노력을 다하셨다.  


둘째 아이와 어제 차 안에서 있었던 대화이다.


"엄마가 중학교 때였어. 이른 새벽이었는데 외할머니가 삼촌이랑 엄마를 깨우시더니 노량진 수산시장엘 데리고 가신 거야."

"시장에? 왜에?"

"삼촌이 하도 공부를 안 해서."


딸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남대문 새벽시장을 데리고 가신 적도 있었다.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 얼음을 나르고,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고, 리어카에 산더미 같이 쌓아 올린 물건들을 나르는 등 시끌벅적 생동감이 느껴지는 곳으로 현장학습을 간 것이었다.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잠이 많고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게임을 즐기는 오빠에게는 새벽 공기와 육체적인 노동이란 최악의 근무조건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게다.


"그래서 시장 갔다 와서 삼촌이 공부 좀 했어?"

"아니, 삼촌은 신이 나서 물고기 구경, 시장구경을 너무나도 재밌어했지. 공부는 여전히 관심 밖이었고."

"하하하."


대화를 나누던 차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자극을 주고 싶었던 엄마의 의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나의 부모님은 세 자식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공부를 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백문불여일견이라 하지만 나는 보는 것보다 직접 해보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풀을 뜯고 있는 말에게 채찍을 보여줘 봤자이다. 말이 직접 채찍질을 당해야 정신이 빤짝 들어 달리지 않는가.


“너도 청소를 해보면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해도 공부가 하고 싶어 질 거야.”


올해 15살이 된 고등학생이나 55세 아저씨나 호텔에서의 아르바이트는 똑같이 시급 $15에서 시작이다. 하루 6시간 일해서 $90을 번다면 고등학생에게는 꾀 만족스러운 돈일 수 도 있겠다. 하지만 중년이 되어서도 기존의 경력이 고려되지 않는 채 평생 15세와 같은 시급을 받고 일해야 한다면 그만큼 고단하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직업도 없다.


딸아이가 직접 육체적으로 힘든 청소를 해서 돈을 벌어보면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함께 일하는 55세 아저씨가 한 시간 일해서 버는 돈과 엄마가 강의 한 시간 해서 받는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배움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내가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들인 시간과 고통과 비용에 비해 교수의 연봉이 만족스럽게 높지는 않다. 하지만 교수에겐 방학이 있고 출퇴근 시간의 자유로움이 있으며 1년 365일 중에 내가 계약상 일을 해야 하는 날은 186일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연봉이 낮다고 투덜거릴 수 없다. 갓난아이를 끌어안고 모유수유 해가며 박사학위 딴다고 고군분투했던 시간은 분명 의미 있는 투자였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가성비 최고의 노동이었던 것 같다.


"암튼, 생일이 지나면 여름방학 만이라도 청소 일을 시켜보려고요."

"잘 생각해 봐요. 귀한 딸 왜 이런 데서 일을 시켜요."


귀하기 때문에 시키는 것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말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 입이 가볍거나 신중하지 못한 사람은 멀리해야 한다. 마음에도 없는 말, 상대방을 떠보는 말, 너무 즉흥적으로 내뱉는 말, 진심이 아닌 말, 뜬구름 잡는 말,  잘난 척하는 말, 남을 무시하는 말, 비밀을 전달하는 말, 친구나 동료를 흉보거나 헐뜯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나에게서 시간을 빼앗아가며, 감정노동을 시키기 때문이다.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 딸아이와 많은 대화를 통해 내린 결론이다. 만 14세가 되면 엄마 따라서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로 했다. 만 14세 고등학생이 호텔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다. 스타벅스 커피와 조식 서빙을 하는 비스트로,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려 빨래를 게는 일을 하는 빨래방, 청소를 하는 하우스키퍼, 호텔 복도와 로비를 돌아다니며 먼지를 닦고 쓰레기를 치우는 하우스퍼슨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은 객실을 청소하는 하우스키퍼이다.  


내 딸은 올해 만 14세 생일이 지나자마자 나와 함께 하우스키퍼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로 했다. 교수인 엄마가 청소를 하며 느끼고 배우는 인생공부를 딸과 함께 나눌 생각에 기대된다. 십 대 사춘기에 접어든 내 딸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인종차별, 자본주의, 직업윤리, 학벌과 소득, 자기 관리, 시간관리, 이민자의 삶, 협동심, 리더십 등 청소를 하러 오가는 길에 끊임없는 모녀의 대화를 상상하면 벌써부터 설렌다.


딸아이 또래 한국 친구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미국 대학입시준비에 들어간다. 나는 내 딸이 성공할 확률을 높여주기 위해 SAT학원 보다 호텔로 데려가 청소를 시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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