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 교수가 아닌 청소부가 3년간 수집한 데이터의 결과
"멈춰! 너희들 여기서는 그렇게 뛰어다니는 게 아니란다. 한 번만 더 뛰어다니다 걸리면 퇴실 조치를 취할 것이야!"
개념 없는 부모들
클리브랜드(Cleveland)의 따끔한 호령에 아이들은 얼음이 되어버렸다. 잔뜩 겁에 질린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스멀스멀 복도에서 사라졌다.
클리브랜드는 우리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가장 덩치가 큰 흑인 남자이다. 간단한 수리에서부터 각종 궂은일까지 도맡아 하는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저녁에는 gym(헬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기본적으로 키가 큰 데다가 근육으로 다져진 든든한 몸이라 객실에 문제가 생기면 누구보다도 클리브랜드가 출동한다.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컴플레인이 들어오자 프런트에서 2층 복도로 클리브랜드를 보낸 것이었다.
아이들이 복도에서 사라지고 나서 클리브랜드에게 물었다.
"손님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어린애들인데."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하기를,
"저런 애들은 손님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어. 컴플레인이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는 무식한 부모들이 이해가 안 가."
잠시나마 남의 자식에게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클리브랜드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복도에서 뛰어다니며 놀 수 있도록 하키게임 도구를 갖고 여행을 하는 개념 없는 부모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호텔 복도는 객실에 머무는 모든 손님이 휴식을 취하거나 업무를 보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의와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이 정도 뛰어다니며 소음을 일으키는 것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하우스키퍼가 모은 1차 자료
객실을 청소하다 보면 다양한 가족들을 구경하게 된다. 훔쳐보려 하지 않아도 가족마다의 성향이 보인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옷, 신발, 쓰게기가 널브러져 있는 방이 있는가 하면 잠시 머물다 가는 호텔에서도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방도 있다.
아이들의 발걸음에서 풍기는 당당하면서도 차분한 태도,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는 어린아이의 매너,
하우스키퍼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예의 바른 어린이,
다 먹은 과자 봉지나 음료수 캔을 쓰레기통에 넣는 야무지고 작은 손,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쌓아놓은 동화책,
가지런히 짝이 맞혀지게 벗어 놓은 신발,
정리된 침대에 예쁘게 눕혀 놓은 귀여운 토끼인형
비스트로에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주문할 때 원하는 음식을 똑바로 말할 줄 아는 아이가 있는 반면 우물쭈물 대거나 예의 없게 주문하는 아이들도 있다. 음식을 받아가는 태도에서부터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는 자세, 그리고 음식을 먹는 모습 까지에서도 아이들을 보면 부모의 성향이 정확히 보인다.
교육대 교수가 아닌, 객실 청소를 하며 내 눈으로 직접 수집한 데이터에 의하면 매우 정확한 통계 결과이다. 이렇게 직접 경험하거나 연구자가 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1차 자료라고 하는데 지난 3년간 수집한 나만의 1차 자료에 의하면 아이들은 부모의 그림자와도 같다.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이 모든 작은 행동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그리해야만 한다고 시킨 것은 더욱이 아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축적된 일상에서 보고 배워 몸에 익혀진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부모의 평소 행동이나 말투, 가치관 등이 아이들에게 반영되지 않을 수가 없다.
영어 표현 중에 "Like mother, like daughter"이라는 관용구가 있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보인다.
심리학에 modeling (모델링)이라는 용어도가 있다. 아이들이 부모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성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아이들 각자 고유한 성격과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부모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모델링을 통해 습득하고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에게 분명 부모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들의 권리보다 윤리적인 태도가 먼저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놀 권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 권리를 허용해 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타당한 장소와 시간을 선택하고 적절한 행동을 지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내 아이의 놀 권리를 지켜준답시고 타인의 쉴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은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기 위해 타인의 권리도 존중할 줄 하는 상호존중이라는 것은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배워야 할 기본자세이다. 어린아이라고 무조건 허용해 주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허용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클리브랜드가 퇴실조치를 취한다고 했던 말에 백번 동의한다. 다른 손님들 또한 편안한 숙소에서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허용되는 합리적인 훈육 문화
클리브랜드가 어린이 손님에게 경고했듯이, 미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적절히 지도하는 것을 마땅히 여긴다. 식당에서는 쫓겨날 수 도 있다. 한 커피숍 입구에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되는 어린이 손님에게는 무료로 에스프레소를 먹일 겁니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떠들거나 뛰어다녀서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면 부모들은 즉시 주의를 주거나 조용히 화장실로 끌고 가서 훈육을 한다. 참 합리적 문화이다.
규약이 없을수록 때와 장소에 맞는 훈육이 중요
부모가 아이들의 권리를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시할 때 "합리적인 훈육 문화"가 성립되지 않다. 합리적인 훈육을 위해서는 때와 장소에 맞는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다.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계절에 따라 적절한 옷을 사 입히는 것처럼,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과 목소리를 훈련시켜야 한다.
어느 조직이나 규약 (protocol)이라는 게 있다. 손님이 문제를 일으키면 호텔에서 쫓겨나거나 벌금을 물기도 한다. 손님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손해나 추가비용을 보상하기 위해 벌금을 무는 것이다.
대학생이 논문을 표절하거나 숙제를 복사해서 제출할 경우 대학에서는 경고, 정학, 퇴학 등의 징계를 내린다. 잘했을 때는 좋은 학점과 칭찬이라는 긍정의 결과가 있고, 잘못했을 때는 그에 합당한 부정의 결과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규약이 없는 조직에서 부모의 "합리적인 훈육"이 더욱 필요하다. 요즘 예배시간에 앉아서 때와 장소에 맞는 훈육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러다가 교회에 나가기가 싫어진다. 예배에 집중하고 싶은데 아무리 마음을 다스려봐도 아이들이 떠들고 뛰어다니고 단상 위에 올라가서 장난치는 모습들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교회에는 예배를 방해하는 아이들에 대한 제지가 없다. 그럴 경우 쫓겨나거나 벌금을 내야 하는 규약이 없기에 누구 하나 제지하거나 컴플레인을 못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이 조직에는 "합리적인 훈육 문화"가 없으며, 아이들의 행동에 따른 적절한 결과 (칭찬이나 혼냄)가 없다. 결국 아이들의 자유로움이라는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경건하게 예배하고 싶은 교인들의 권리는 침해당하고 만 것이다.
우리의 그림자
교수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교과서에 있는 이론도 잠시 묻어두고 딸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하우스키퍼로 일하면서 호텔에서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
그저 한 교인으로서 보게 되는 주변의 어린아이들,
엄마로서 딸아이 친구들을 보면서 느낀 점 등.
실컷 수다 떨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교과서에서는 얻을 수 없는 주옥같은 사례들이 줄줄이 땅콩처럼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우리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다.
엄마는 평소에 너에게 좋은 그림자가 되어주고 있니?
딸, 어디에서도 자랑스러운 그림자가 되어주어 고맙다.
우리는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을 하고 사는지?
남들에게 피해가 가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는지?
나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권리를 포기하고 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