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옥 Jun 21. 2023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준 꼬마

그 부모에 그 자식

"After you. 먼저 가세요."


꼬마신사가 엘리베이터 문을 잡으며 나에게 말했다. 딱 봐도 초등학생이었다. 한 5학년 즈음 되어 보였다. 면 반바지에 카라가 달린 하얀 면 폴로를 입은 모습이 아주 깔끔해 보였다.


하우스키퍼는 웬만하면 게스트와 엘리베이터에 동승하지 않고 다음 차례를 기다린다. 청소부 복장에 빨랫감을 가득 실은 카트를 밀고 있는 나에게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는 어린이는 처음이었다.


교육대 교수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 꼬마신사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올곧게 서있는 자세, 초롱초롱 맑게 깨어있는 눈빛,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고 3층 버튼을 눌러주는 매너, 그리고 미국 어린이가 자주 쓰지 않는 구 "after you". 그 아이의 몸과 입에서 자연스레 풍겨 나오는 이 모든 게 예사롭지만은 않았다.


일부러 그 아이를 따라간 건 아니었지만 그 아이가 들어가는 룸넘버(방번호)를 알게 되었다. 오늘 내 보드에 적힌 객실들 중 3박 4일을 머무는 방이었다. 이렇게 여러 날을 머무는 stay over 객실은 수건을 갈아주고 쓰레기 정도만 치워준다. 가끔 정말 더러운 객실은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기만 돌려도 10분 이상 거릴 때가 있다. 머문 자리를 보면 대충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된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 꼬마신사의 가족이 잠시 외출을 했을 때, 수건을 갈아주러 들어갔다.


침대는 단정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옷은 옷장에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흔한 객실의 모습은 양말이며 수영복이며 아무 데나 흩어져 난리 쳐 있다.

여행가방은 옷장 안쪽에 질서 정연하게 놓여있었다.

여벌 신발이 짝을 맞추어 옷장 아래에 정리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어른이 읽던 책 두권, 침대 옆에는 아이가 읽던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없었다.

화장품, 면도기, 액세서리 등이 정리되어 놓여있었다.

화장실에 수건이 수건걸이에 걸려있었다. 보통은 쓰던 수건들이 바닥과 방 여기저기에 널려져 있다.

화장실 거울에 물이 튀지 않았다. 더러운 방일 수록 거울에 물이 많이 튀어져 있다.

청소기를 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바닥이 깨끗했다.

소량의 쓰레기는 쓰레기통 안에 예쁘게 버려져 있었다. 종종 쓰레기가 방 전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을 때 가 있다.


청소를 하며 이 가족에 대해 현실적인 상상을 해 보았다.


이 아이의 아빠는 엄마에게 자상하다. 아이가 청소부의 문을 잡아주는 행동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보고 배운 게 자연스레 몸에 익혀진 것이다.  

부부는 늘 서로를 배려하고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준다. 아이가 청소부를 대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모의 그림자라는 걸 알 수 있다.

가족의 대화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다. 부모가 책을 읽는 모범을 보이기에 아이도 책을 읽는 게 자연스러울 게다. 여행을 할 때도 호텔에서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손에 책이 들려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이런 사람들은 분명 생각에는 신중함과 말에는 책임감이 있을 것이다.

이 가정의 집은 늘 정리가 잘 되어있고 신선한 냄새가 난다. 머물었던 자리는 평소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바쁘거나 당황스러운 일에도 허둥대지 않으며 시간관리를 잘할 것이다.


다른 객실로 이동해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 꼬마신사의 엄마가 노크를 하며 물었다.


"당신이 우리 방을 청소했나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 가정에 대해 내 마음대로 상상을 했던 게 잘못이었는지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네, 제가 청소했어요. 더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하던 청소를 멈추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 그녀는 $20짜리 지폐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니요, 저희 방은 완벽해요. 고마워요."


팁을 주려고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팁을 건네는 그녀의 손짓과 말투, 그리고 뒤돌아 걸어가는 걸음걸이는 당당하면서도 겸손했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에는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아이를 보면 그 부모가 보인다. 그래서 오늘도 나 자신을 점검해 본다.


나의 행동과 말은 본받을 만 한지.

시간을 헛되이 쓰지는 않는지.

타인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하지 않는지.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나의 가치관은 정의로운지.

나의 부모님에게, 시부모님에게는 잘하고 있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