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양혜왕 상편 이민이속(移民移粟)장
인간이든 동물이든 어느 날 갑자기 삶 속에 내던져진 존재이기에 우리 앞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 삶을 유지하는 것 일게다. 이는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맹자의 가장 첫 번째 글인 양혜왕장구 상편에서 백성의 삶을 유지해 주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점을 가장 먼저 말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養生喪死無感 王道之始也
산 이를 기르고 죽은 이는 장사 지내는데 유감이 없는 것이 왕도의 시작이다.
이 말은 양혜왕장구 상편의 가장 핵심적인 문장이다. 맹자는 뒤이어 왕도의 완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산 이를 기르고 죽은 이를 장사 지내는데 유감이 없게 하는 방법의 상세한 기술일 뿐이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의 제시야 말로 맹자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다. 맹자가 제시하는 방법을 한 문장으로 본다면 바로 다음과 같다.
明君制民之産 必使仰足以父母 俯足以畜妻子
현명한 군주는 백성의 생업을 정해주어 (먹고살게 함으로써) 반드시 그들로 하여금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 충분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기를 수 있게 한다.
백성의 생업을 정해 주는 것, 지금 말로 하자면 생계가 가능하게 해주는 것, 맹자는 이것이 국가의 가장 핵심적 역할이라 여겼다. 그런데 맹자는 이 최소한의 생계를 재물로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생업을 정해주는 형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곧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먹고살 수 있도록 하여 인간의 존엄(맹자는 이를 인의仁義라 표현했다)까지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까지를 국가의 책무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국가에서 국민의 출생률과 취업률을 관리하며 온갖 사회보장제도를 만드는 이유도 맹자의 위 주장과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지만 그러한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모든 기반은 결국 백성이 만들어내는 생산력과 관계되기에 과거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된 국가라면 백성의 생산능력 관리뿐만 아니라 백성이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것이 바로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게 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보살피는데 충분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맹자 양혜왕 상편의 가장 첫째 장에서 말하는 핵심 논지는 현대 복지국가가 추구하는 이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樂歲終身苦 凶年不免於死亡 此惟救死而恐不贍 奚暇治禮義哉
풍년에는 죽도록 고되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치 못하는데, 오직 죽지 않을 정도로만 구제하는 것도 충분치 못할까 두려우니 어느 겨를에 예의를 챙기겠습니까?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마음 한켠이 시렸다. IMF를 기억하는가? 당시 온 나라가 힘을 합쳐 국가적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랑스러워했지만 정작 그 고난의 터널을 지나며 진짜 힘들었던 이들은 누구인가? 수없는 평범한 가정이 무너져 가장들이 노숙자로 내몰리고 온 가족이 생계를 위해 뿔뿔이 흩어졌던 당시의 고된 삶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의 몇 다리만 건너도 그 시절 그런 고생을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쯤 끼어있다. 이건 흉년에 죽음을 면치 못하는 일의 현대적 예시이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위기, 그리고 30년 이래 최악의 경기라는 지금까지 흉년의 현대적 예시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곤 하지만 지금의 삶은 녹록한가? 맹자의 시대처럼 굶어 죽고 얼어 죽지 않을지언정 서민들은 삶을 유지하는 것 조차도 고달프다. 일정 계급 이상으로 편입되지 못하면 평생에 걸쳐 살기 위해 죽도록 고생하고 외롭게 죽어가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뉴스에선 녹록지 않은 생계로 인해 가족이 동반자살하는 뉴스가 종종 보도되고, 청년들은 생계의 시작부터 길이 막혀 허둥대며, 돈을 버는 일이라면 가족도 살해할 수 있을 만큼 예의고 염치고 돌아보지 않는 이 시대의 풍경을 보면 맹자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결국 2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은 다르지 않다. 때문에 맹자의 현실 인식은 저릿하게 날카롭다. 우선 태어났으니 삶을 유지해야 하고, 그 기본이 가능해야 예의고 염치고 논할 수 있으며, 백성들이 예의와 염치를 알고 행할 수 있을 때 그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는 것이라는 맹자의 주장은 지금의 말로 하면 곧 국민이 국가를 유지시키는 한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주는 일이 국민 각자가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라 국가의 책무임을 말하는 것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인, 의를 배우는 기쁨을 먼저 이야기했다면 맹자는 먹고사는 문제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두 성인이 살았던 현실의 격차라 할 수도 있지만 정통적 이상주의자와 뼛속까지 현실주의자였던 두 사람의 캐릭터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첫 장이다. 공부가 모자란 내게 아직은 나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이야기를 하는 맹자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동시대 살았다면 사생팬 제자가 되었을 것 같은 맹자쌤의 글이 아직 전해져 볼 수 있단 사실이 지금을 사는 나에게 그나마 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