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내가 5.18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성년을 훌쩍 넘긴 20대 중반 봄이었다. 그저 사는 데 바쁘고 보수적인(정확히는 정치에 무관심한 탓에 보수적으로 흘러간) 부모님의 영향으로 그전까진 5.18 민주화운동이란 명칭보다는 광주사태를 더 익숙하게 들으며 살아왔다. 또 학교에서도 교과서 뒤쪽에 실려 기말고사가 끝나 진도를 나가지 않던 부분이었기에 자세한 내용을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당시 그 사건에 대해 접할 수 있었던 건 오직 방송이나 신문 등을 통해서였고, 이를 통해 얼핏 얼핏 그것이 전두환이란 자와 관계된 민주화운동 비슷한 것이구나 하는 어렴풋한 대강만 알고 있었다.
민주화운동. 80년대 생인 나에게 민주화 운동은 그저 매운 냄새와 그걸 막기 위한 치약이 생각나는 일이었다. 어릴 적 신촌에 살던 나는 근처 대학교에서 ‘데모’가 많았던 지라 데모가 있는 날이면 밖에 나가지 말라는 엄마의 신신당부와 함께 매운 내를 막아보려 창문을 꼭꼭 닫고 코 밑에 치약을 바른 채 선풍기에 의지해 무더위를 견뎌내곤 했다.
그렇게 커서 대학원생이 되었던 어느 봄날 학교에서 광주비엔날레를 관람한다고 광주로 답사를 가게 되었다. 일정 중에 5.18 민주묘지를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다. 묘역을 참배할 때까지만 해도 일정 중 한 곳을 들르는 것일 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광주 출신의 한 선배가 진지하고도 알 수 없는 묘한 얼굴로 묵념을 하는 것을 광주출신이라 이 일이 다르게 느껴지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묘역 참배 후 관련 전시가 진행 중이던 공간 들어가 본 것들, 그때의 충격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대부분 사진과 영상으로 이루어진, 정식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 듯한 전시였는데, 그 내용들은 그때까지 내가 생각한 5.18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너무나 잔인한 학살의 현장. 온갖 끔찍한 장면들이 우리나라의 군복을 입은 군인들과 일상복을 입은 평범한 시민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한 순간, 하나의 거대한 수용소, 아우슈비츠가 거기 있었다. 한 도시가 저렇게 철저하게 파괴되었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기억을 안고 이 도시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소설은 어릴 적 작가가 살던 집에 이사 온 한 소년이 보낸 당시 광주의 마지막 며칠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시간이 전개됨에 따라 화자가 바뀌어 당시로부터 현재로 시점이 바뀌고, 희생자에서 생존자, 유족으로 화자가 바뀐다.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이 구절을 읽으며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마치 나를 인정하지 않는 부모를 마주한 것처럼. 서럽고도 고통스러운 분노. 왜, 무엇 때문에 광주를 그렇게 만들어야 했을까? 광주 시민들을 왜 그렇게 버려진 자식처럼, 버려진 국민처럼 취급하며 마치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인 것 마냥 총구를 겨눌 수 있었을까?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것 아냐. 한낮에 사람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광주시민들 역시 그들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인정 아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 나라가 국민을 지키라고 국민이 만들어 준 군대를 시켜 아무 죄 없는 국민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당연히 그건 국가가 아니다. 전두환이란 자가 대통령을 참칭했던 8년 간 우리나라는 무정부 상태였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 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 주겠다.
국가를 운영할 자격이 안 되는 자들이 권력을 잡고 국가를 참칭하면서 광주시민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으며 한 짓은 국민들이 자신들을 두려워하여 복종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고작 그런 사사로운 목적으로 국민을 학살하고 나라를 훔쳤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지지 않았다. 그 학살의 현장에서 그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후에도 학살의 기억을 안고 살며 몸에 새겨진 상처로 괴로워하면서도 자신들의 존엄을 지켜내려 애썼다. 그런 의식이 있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광주 시민들은 존엄했고 숭고했다 이를만하다.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피구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 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버스에서 터져 나오는 여자애들의 쨍쨍한 노래에 이끌려 광장으로, 총을 든 군대가 지키는 광장으로 걸었던 것처럼. 끝까지 남겠다고 손을 들었던 마지막 밤처럼.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권력욕이라는 사사로운 탐욕에 맞선 광주시민들은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리고자 하는 공변된 마음으로 맞섰다. 자신들을 죽이러 오는 자들의 생명까지도 지키고자 했던 고귀한 양심으로 자신들의 존엄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 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낼 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히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당시 시민들은 자신들이 존엄하단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가가 아무 죄 없는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당시 그들이 했던 행동은 그저 상황이 그래서 엉겁결에 휩쓸려 갔던 것이 아니었다. 분명한 선택으로 국가가 아닌 자들의 학살을 막으려 한 명 한 명이 어떤 고통의 대가를 치를 줄 알면서 그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것이다. 그래서 광주시민들을 존엄했고 숭고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으로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저는 그 폭력의 경험을, 열흘이란 짧은 항쟁의 기간으로 국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체르노빌의 피폭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몇십 년에 걸쳐 계속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당시 광주에서 있었던 일의 실제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어떻게 이런 기억을 안고 다시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었을까?’였다. 가족과 친구를 잃고, 삶의 터전이 학살의 현장이 되었던 그 기억을 안고, 그들에게 그런 기억을 남겨준 자가 대통령을 참칭하는 그런 세월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나라면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위대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기억은 잊힐 수 없다. 소설에서 말하듯 그 기억이 있기 이전과 이후의 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학살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그 기억으로 인한 상처를 ‘트라우마’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말로도 대체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죽음만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 같은 인간이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변해 사람들을 학살하고 생각지 못한 온갖 방법으로 고문하는 장면을 보고 겪은 사람들에게 그 짐승들과 다시 같은 인간으로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혼돈일까?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 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동료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2차 대전이 끝나고 전범들에 대한 재판을 통해 너무나 평범한 얼굴을 하고 너무나 성실하게 악행을 저지른 이들을 본 한나 아렌트가 이들의 행태를 정의하기 위해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생각해 냈다. 위의 대목들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악의 평범성’이었다. 어떤 이들은 당시 공수부대로 광주 학살에 참여했던 일반 군인들에 대해 명령이었으니 그들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백번 양보해서 그 시대는 항명한 자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알 수 없으니 일부 인정한다 하더라도 저토록 특별히 잔인했던 자들에 대해서는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게 했던 전두환이란 자, 그 아래 계획에 참여했던 군 수뇌부들, 그리고 그 폭력을 독려한 지휘관들, 그리고 그 명령을 아무 죄책감 없이 그대로 실행했던 일반 병사들. 당시 광주에서의 학살은 이들이 모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저편 시민들의 빛나는 양심 반대편에는 한없이 비겁하면서도 자신의 비겁함조차 모르는 자들이 서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들 역시 자신들의 죄를 모를 리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 누구에게나 ‘양심’은 있으니까. 광주 시민들은 그 양심을 지킨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고 인간이길 포기했던 것이다.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지르고, 자신은 시킨 일을 한 것뿐이라며 죄가 없다 평생 자기 최면을 걸고 살았을 것이다. 그날의 결정과 함께.
책을 읽어 나가며 당시 광주를 겪은 사람들이 받은 모욕보다 더 처절한 모욕을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감정적으로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모욕은 바로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을 주고 싶다. 너희들의 영혼은 너희가 짓밟으려 했던 자들에게 했던 그 모욕들을 생각해 낸 것만큼 비천한 영혼이라고. 깨끗한 영혼은 그조차 생각해 낼 수 없다고. 그날 너희들이 시민들을 죽이러 올라왔을 때 그들이 한 발의 총도 쏘지 못했던 것처럼.
소설은 이 책의 제목이 말하고 있는 소년이 어머니가 소년을 잃고 살아온 세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전까지도 너무나 어이없고 참담한 내용이었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슬픔보단 분노가 내 감정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나는 오열했다. 자식을 낳아보진 않았지만, 그 어머니의 마음이 마치 내 심장과 연결된 것처럼 온몸의 혈관이 저릿하게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사랑하는 아이를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올려 보낸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자가 광주에 왔을 때 그 분노와 고통을 어떻게 참아낼 수 있었을까? 나는 못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어릴 적 소년이 해가 비추는 밝은 길로만 걸으려 하던 일을 기억했다. 아이가 어둠 속에 두려워하지 말고 어디에 있든 밝은 빛 속에 있길 기원하는 마음, 이제는 만질 수 없는 그 아이를 그 빛으로라도 보듬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과거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위원회란 곳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강제동원을 공론화하고 희생자들을 추념하기 위한 전시를 만드는 일을 했다. 전시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읽고 생각한 것은 어떤 명분이 되었든 전쟁은 있어선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 전쟁이란 결정은 거의 전적으로 권력자의 탐욕에서 나오는데 대가는 그 전쟁을 결정하지 않은 보통사람의 희생으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왜 아무 결정도 하지 않은 보통사람이 그들의 결정으로 희생되어야 하는가? 더군다나 전쟁을 치른 후 공동체는, 역사는 그렇게 희생된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억해주지도 않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람을 그저 도구로만 사용하고 만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전시는 희생된 한분 한분에게 바치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의 존엄을 해치지 않으려면 그래야 했다. 세상 누구도 누구를 도구로 사용할 수 없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우리가 당시의 광주를 기억하는 것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분 한 분의 피해자를 다 알 수 없지만 그 한 분 한 분을 기억해 주는 마음으로 광주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의 가치가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호남의 정당지지율을 보고 공산당 일당체제와 같다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나는 그날 광주에서 그런 고통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라면, 내 가족과 친척과 친구를 잃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전두환과 그 동조자들을 어떻게 잊으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용서를 빈들 이미 떠나버린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훼손된 영혼은 되돌릴 수 없는데, 그 자는 자기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도 않고, 용서를 구하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너무 쉽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호남의 정당지지율은 그 용서할 수 없는 감정의 하나의 표현 방식인 것이다.
얼마 전 그 손자가 자신의 할아버지의 죄를 빈다고 광주를 찾았던 일이 기억났다. 유족들이 그에게 괜찮다며 손을 잡아 주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정작 아무런 용서도 빌지 않고 죽지 않았는가? 이제는 역사가 기억하고 용서하지 않을 일이다.
소설을 마치며 작가는 에필로그를 덧붙여 자신이 이 소설을 왜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어떤 마음으로 써내려 갔는지 간략하게 실어 놓았다. 나는 그 의도를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이 글이 그저 소설로, 지어낸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길 바라는 ‘소설가’의 역설적 마음이고, 또 하나는 현재도 세상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작가가 쓴 이야기들은 모두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된 것으로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르포에 가깝다. 작가는 이 사실을 밝혀 두고자 했던 듯하다. 그 이유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런 일들을 우리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야 몰래 이런 일이 자행될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고, 언젠간 이런 일들이 종식될 거란 희망이 있으니까.
나는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타기 전까지 그녀의 작품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내가 집어든 한강의 첫 책이 ‘소년이 온다’였다. 그리고 바로 이해했다. 왜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탈 수밖에 없었는지. 문학은 왜 존재하는가? 나는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그 얘길 깊이 있게 할 순 없다. 하지만 일반 독자로서의 생각은 밝힐 수 있으니까, 여기서 간단히 이 소설과 관련하여 그 질문에 답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고스란히 체화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킴으로써 세상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것.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그런 작품이었다. 이제 다음 작품에서 그녀가 다시 어떤 주제로 이런 일을 해내는 가에 대해 탐색해 보고 싶어졌다. 따라서 당분간 나의 한강 탐독은 계속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