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양혜왕장구 상편 ‘何必曰利‘
2024년 12월 3일.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꿀 같은 휴식을 취하며 전화로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별 의미도 없는 소소한 일상에 웃고 떠들던 중 전화기 너머로 형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계엄 선포했다는데?”
“뭔 말이야, 가짜뉴스겠지.”
“아니야, 지금 기사 잔뜩 올라오고 있어. 계엄령 선포 중이래.”
어이없는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바이든’도 ‘날리면’이 되는 세상이니까 완전히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일어나서 부모님을 깨우고 TV를 켰다. TV 속에선 정말로 대통령이 나와 상기된 얼굴로 무언갈 떠들어대고 있었다. 비상계엄이란다. 2024년에.
얼마 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1980년 계엄 치하에서 광주라는 한 도시가 무자비하게 학살당해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았지만 죽었고, 누군가는 죽었지만 살아있었던 그런 내용의 소설이었다. 작가는 그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탔고, 시상식 참여를 위해 스톡홀름에 가 있다고 했다. ‘정말 운이 좋은 걸?’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작가는 1980년 광주에서도 그 학살이 일어나기 직전 서울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날 밤,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TV에서는 국회로 몰려간 사람들과 그들을 막는 경찰의 대치로 아수라장이 된 모습이 나왔고,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국회가 2시간 만에 계엄해제를 의결했지만 대통령의 계엄해제 선포는 새벽 3시가 넘도록 나오질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계엄 해제됐어.”
결국 계엄은 6시간 천하로 막을 내렸다.
웃픈 현실이다. 그리고 더 웃픈 건 그 주 토요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계엄, 즉 사적 목적을 가지고 자행한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투표성립조차 되지 않았던 일이다. 밖에선 100만 국민이 모여 자신과 가족의 안전한 삶을 위해 추위에 떨며 국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온 국민의 눈앞에서 그런 대통령을 낳은 당은 탄핵을 부결시키기 위해 퇴장했다. 자신이 어떤 비장한 각오라도 한 것과 같은 표정을 하고.
그 뒤에 그 당에서 나온 말들은 더 가관이었다. “야당은 너무 힘들어서 야당 되기 싫다.”, “(유력대선후보)ㅇㅇㅇ이 대통령이 되어선 안된다. 그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 “1년만 지나도 국민이 다 뽑아주며 의리 있다 칭찬하니 끝까지 버텨야 한다.”, “다수가 찬성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판단일까?”, “토요일 투표는 신변에 위협이 되니 다른 요일로 투표를 옮겨달라.” 등등
이들은 과연 어떤 자들인가? 나는 이들의 행태를 보며 맹자 양혜왕장구 상편의 ‘何必曰利(하필왈리)’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나라가 뒤집어질 뻔한 이 상황에서, 국민이 자신과 가족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 100만 명 이상이 거리로 뛰쳐나온 이 상황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자가 버젓이 군권과 행정권을 두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이 어떤 것인지 셈하고 있었다. 하필, 왜,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이익을 말하는가?
왕께서는 왜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를 말씀해야 하실 뿐입니다.
왕께서 “어찌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하시면 대부들은 “어찌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할 것이고, 선비와 보통사람들은 “어찌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 할 것입니다.
위아래 사람이 서로 이익을 취하고자 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천자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그 아래 제후이며, 제후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그 아래 대부입니다.
만 중에 천을 취하게 해 주고, 천 중에 백을 취하게 해주는 것도 많은데 이렇듯 윗자리를 넘보니
의로움을 뒤로하고 이익만 우선시한다면 빼앗지 않고선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 而國危矣
萬乘之國 弑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 弑其君者 必百乘之家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矣
苟爲後義而先利 不奪 不饜
우리 사회에는 많은 이면이 존재한다. 이 사건 역시 윤석열이란 괴물 뒤에 그를 뽑은 수많은 평범하고 선량한 국민이 있다. 우리가 그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거기부터 반성해야 한다. 우선 자신의 정적을 가족까지 모조리 몰살시키는 잔인함을 보였을 때 이미 그는 지도자로서 실격이었다. 자신이 돕던 정권을 나와 반대편에 서 있는 당으로 가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 우린 그가 어떤 자인지를 의심했어야 했다. 손에 왕자를 새기고 대국민 토론회에 나왔을 때 그가 말도 안 되는 자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온갖 범죄로 얼룩진 배우자의 면면을 보고, 그녀를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그 자를 봤을 때 우린 그에게 일말의 기대초자 버렸어야 했다. 그를 알아볼 수 있었던 수많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닌가? 집값을 더 올려줄 줄 알고, 내가 가진 알량한 이익을 더 공고히 해 주리라 믿어 그를 뽑은 것이 아닌가?
결국 그는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배신했다. 개가 주인을 문 것이다. 또 그를 우두머리로 하는 개떼들이 상처 입은 주인을 다시 둘러싸고 물어뜯으려 준비하고 있다. 제후가 천자를 치고, 대부가 제후를 치는 상황인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음 정권을 빼앗기기 싫어서.
결국 탄핵은 가결되었다. 모든 것이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쿠데타를 막는 과정에서, 탄핵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국민의 힘은 대단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 우리는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자를 왜 대통령이 되게 했는지, 우리에게 잘못은 없었는지. 물론 과반에 가까운 많은 국민들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임은 모두가 져야 하는 것이기에 이런 일이 반복되게 하지 않을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선 사람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인간 본성을 토대로 생각해 보아도, 자본주의 사회라는 상황으로 보아도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므로 그 자체가 죄악시될 순 없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 도덕개념에서 벗어나 탐욕으로까지 나아갈 때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는 쉽게 말해 부끄러워야 할 상황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과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을 보라. 국민 대다수의 통념에서 벗어나 당당히 자신의 탐욕을 드러낸다. 그들에게 수치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를 어떻게 획득한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나 하나의 작은 힘으로 바꿀 수 없다 한탄하고 혐오하고 무관심해질 것이 아니라 지켜보고 소리 내고 행동해야 내 자유를 유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무엇하나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지난 대선 당시 그를 지지한 많은 국민들의 기대는 ‘썩은 정치판에서 굴러먹지 않던 새로운 인물이니 다른 면모를 보여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준비 없는 대통령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가를 보았다. 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건 결국 대통령이 되어 국가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이고, 곧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사사로운 마음으로 대통령이 된 것임을 알았다. 그 점을 우린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6시간 천하 계엄령 선포 이후 국내에 그 수습을 위한 혼란이 가중되던 때 스톡홀름에서 한강 작가가 말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를 고민했는데 결국 과거가 현재를 도왔다.”
5.18과 4.3, 6월 항쟁, 2016년의 촛불, 그리고 세월호와 이태원의 희생이 지금의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지금 우리는 중대한 역사적 갈림길에 또다시 섰다. 오늘이 미래를 돕는 그날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다시 우리 손에 달렸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 이 사태를 끝까지 지켜보아 올바르게 수습하고 기억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