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_과거가 현재를 살릴 수 있다

한강_작별하지 않는다

by 주루주루

이 책은 제주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4.3은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그 잔당들에 의해 계속해서 고통받고 있던 제주 도민들이 1947년 3월 1일 있었던 민간인에 대한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공권력에 저항하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 안에는 제주 도민들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거부 선거 보이콧, 대규모 파업사태, 1948년 4월 3일 제주 남로당이 일으킨 소요사태와 그 진압을 명목으로 1954년 9월 21일까지 벌어진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대한 소개령 및 이에 따른(혹은 이를 핑계로 한) 무차별 주민학살사건이 있었다. 4.3 사건은 앞선 문장에서 보듯 여러 가지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이지만, 요약해 본다면 관공의 부정부패와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사건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손에 든 건 두 달 전쯤이다. 작가의 다른 책은 하루이틀 상간에 술술 읽혀 내려갔는데, 이 책은 정신을 차리고 읽어나가려 해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70여 년 전에 제주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을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책의 내용의 절반 정도는 주인공 경하의 현재 상황에 대한 묘사였다. 5.18에 대한 소설을 쓴 뒤, 그 역사적 심연에 갇혀 현재의 삶이 파괴된 채,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던 경하의 트라우마를 떨쳐내려 해도 떨쳐낼 수 없는 더위, 두통, 구역질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 고통 가운데서 그녀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친구인 인선이 다급하게 그녀를 찾았던 것이다. 이유를 물을 생각도 못하고 경하는 인선이 있는 병원으로 간다. 인선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되어 봉합수술을 한 뒤, 신경이 끊어지지 않도록 3분마다 바늘에 손가락이 찔리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경하에게 뜻밖의 부탁을 한다. 사고 와중에 정신이 없어 그냥 두고 온 자신의 새 아마를 살리기 위해 제주로 가 달라는 것이다. 경하는 자신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지만 그럼에도 친구 인선에게 소중한 생명인 아마를 살려야 한다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 길로 제주로 떠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인선의 집에 도착했을 때, 아마는 이미 죽어 있었다. 급한 대로 사체를 수습해 인선이 그렇게 하였을만한 곳에 정성스레 사체를 묻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죽은 것으로 생각했던 아마가 깨어났고, 서울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이 집으로 돌아왔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간에서 인선은 경하에게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하고, 이 소설의 본격적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 한강에게 소설의 주제가 된 5.18과 4.3은 그저 역사 속의 사건이 아니었던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작가 자신으로 보이는 경하는 5.18에 관련한 소설을 쓰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그들의 고통이 그녀에게 들어가 온몸의 감각기관으로 퍼져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정신적 고통 속에서 생사를 오갔던 건 그들의 죽음 위에 선 자신의 삶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사람들이 있다. 유독 예민한 감수성과 양심을 가진 사람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고 저릿하게 아파오는 심장을 함께 느끼는 사람들. 물론 이런 사람들의 존재가 소중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5.18에 대한 소설을 쓴 뒤로부터 경하는 알 수 없는 꿈을 꾼다. 숲과 맞닿아 있는 바닷가에 가지 부분이 잘린 검은 나무 수십 그루가 심어져 있는 꿈.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뒤이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경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 꿈에 관해 인선에게 이야기한 것이고, 언젠가 그 꿈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하리라 약속했던 것이다. 둘 다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그녀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 꿈이 4.3이란 사건에 관련한 것임을. 또 그 프로젝트는 당시 말도 안 되게 하늘로 보내진 영혼들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는 일임을.

하지만 경하는 망설인다. 역사 속 비극,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 자신에게 전달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을 알아 가는 것 자체가 그들의 죽음으로 통하는 길임을, 하지만 살아있는 자신에겐 죽음의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길임을 경하는 너무 잘 알았다. 그렇기에 다시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인선은 이렇게 망설이는 경하를 새를 살려달란 핑계로 제주 자신의 집으로 보내놓고, 자신 혹은 자신의 영혼을 뒤따라 보낸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의 역사를 보여주며 조용히 경하를 설득한다. 그 장면들이 현실이라는 건지 환상이라는 건지 작가는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하가 전 날 밤, 제 손으로 묻어주었던 아마가 살아 돌아온 것과, 서울 병원에서 손가락을 치료하고 있어야 할 인선이 아무런 상처 없는 깨끗한 손으로 온 것으로 보아 환상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결국 인선의 설득은 인선이 아닌 경하 스스로의 설득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인선이 기르던 새는 지켜주어야 하는 연약한 생명이다. 국가가 보호했어야 할, 그러나 국가가 죽인, 죽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국민들이다. 그렇게 떼죽음을 당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빛나고 아름다운 존재로서 지금도 살아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걸 알기에 경하는 납득이 되던, 되지 않던 본능적으로 새를 살리기 위해 제주로 떠난 것이다. 생명이란 건 그런 존재니까.

인선의 손가락과 손가락이 잘린 인선은 소설 속에서 각각 잃어버릴 뻔한 소중한 이와 소중한 이를 잃어버린 혹은 잃어버릴 뻔한, 또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들을 잃어버리게 되면 엄청난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그 생명을 어떻게든 지켜내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마치 3분에 한 번씩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는 것과 같은 고통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지키지 않으면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기에 기꺼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낸다. 그녀의 어머니가 죽어가는 동생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먹게 했던 것처럼.


이 소설은 사실 4.3과 그와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 매우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방 한 켠의 상자 속에 감추어져 있는 사건의 증거들은 매우 단편적이며, 그걸 마주한 경하 역시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인 듯 망설이며 그것에 다가간다. 이런 전개는 이 사건의 성격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역사 속에서 그 일들은 오랜 기간 감춰져 있고, 숨죽이고 있었으며, 그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 이후에도 매우 지리한 과정을 거쳐 밝혀졌다. 4.3은 독재, 군사 정권 아래서 부정되고 감추어져야 하는 일이었으며, 최근까지도 누군가는 이 일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 매해 4월이 되면 뉴스에 이번엔 4.3 기념식에 대통령이 갔네, 안 갔네 하는 뉴스 또한 그런 지리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소설이 무겁고 끈끈하며 지리하게 느껴진 이유가 바로 이런 숨겨진 의도 때문이었으리라.

또 소설은 이 일을 매우 개인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역사적인 원인, 과정,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어이없이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는 일, 죄 없는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학살되던 장면을 목격한 일, 또 일이 벌어진 이후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조차 없는 상황. 심지어 그 사건이 없었던 일인 양 부정을 강요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연좌제에 걸려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으며,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야 하거나, 가해자의 편에 서서 부역했다는 이유로 남모를 가책의 트라우마를 겪는 고통. 그 모든 일은 피해자 입장에선 영문도 모르고 벌어진 일이다. 거기에 논리적 서사가 무슨 소용있으랴. 하지만 고통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압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별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 더욱더 잊을 수 없고, 한 줌 유골이라도 찾아내야만 하고, 유골이 없으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라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위해, 마지막으로 살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소설의 제목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래서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나와 같은 세대만 하더라도 이 일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4.3이란 말만 들었지, 그 안의 세부적 내용과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연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얼마 전 제주 4.3 기념식을 전후해 서북청년단이라 이름한 단체가 제주에 출몰해 난동을 벌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그때 제주에 있었는가? 그들은 그 역사를 알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인가? 그 서북청년단이 제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인가?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에게 작가 한강은 너무나 소중한 자산을 주고 있다. 그녀가 노벨상 수상 소감으로 밝힌 “과거가 현재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은 최근 비상계엄사태와 그 극복에 있어 대단한 위로가 되며, 엄청난 힘을 국민들에게 주고 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어떤 과거도 현재도. 차마 보기 힘들더라도 눈을 부릅뜨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작금의 우리가 맞닥뜨리는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으며, 그것이 한강이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