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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루주루 Oct 26. 2024

자아성찰 - 중년의 자기 인식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어젯밤 내가 무슨 꿈을 꾸었던 걸까?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침부터 갑자기 나에 대한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구나...

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성인으로서 내 밥벌이를 하면서 산 지 14년 차. 나는 늘 이곳이 내 자리가 아니란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늘 더 좋은 직장을 꿈꿨고 이리저리 이직을 거듭하다 고대하던 직장에 들어갔지만 그곳 역시 내 자리는 아니었다. 결국 그 직장마저 마지막으로 그만두며 내 삶은 미궁으로 빠졌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어딜 바라보고 걸어가야 하는지 방향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 눈을 뜨면서 갑자기 불현듯 그 모든 일의 원인이 또렷해졌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이 한 문장이 모든 걸 말해주었다.

어릴 적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가정에서 자란 나는 돌봐줄 이가 없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해야 했기에 직장에 나가시면서 어린 나를 가까이 사는 외할머니나 이모, 혹은 이웃집에 맡기고 나가셨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그렇게 맡겨진 집에서 최대한 조용히 가만히 존재감 없이 있으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조용히 있었는지 엄마는 내가 언어발달에 문제가 있는 줄 아셨다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자랐지만 나는 무얼 하면 항상 평균이상은 하는 아이였다. 공부도 곧잘 하고 노래도 곧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렸다. 말은 그렇게 안 하면서도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가면 상을 탔고, 누구 하나 숙제나 준비물 챙겨주는 이는 없어도 어렵지 않게 반에서 1~2등을 했고, 묵언 수행을 끝내고 입을 떼기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는 반장까지 도맡아 했다.

나의 과대평가가 시작된 것 아무래도 그 무렵부터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어디서든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도 당연히 뭐든 잘하는 아이인 줄 알았다. 여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해주는 딸에 대한 기특함으로 과대하게 부풀려진 부모님의 기대와 칭찬이 더해졌으니 나의 잘못된 자신감이 폭발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늘 내 마음속엔 나에 대한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그동안 예고를 지망했다 떨어지기도 하고, 재수를 하기도 하고 원하는 대학이 아닌 다른 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실패를 겪은 것이다. 그래도 내 자신감은 떨어지지 않았다. 속으로 늘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제대로 안 해서 그래. 제대로만 하면 다 할 수 있어."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그 자신감은 유지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를 졸업한 다음이었다. 직장에 갔더니 나를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몸을 갈며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을 만족시켜도 내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자리가 문제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직장을 옮겼다. 하지만 두 번째 직장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직장을 옮겼다. 그렇게 세 번, 네 번... 계속 직장을 옮겼다.

결국 나는 연구직 공무원 시험을 보았다. 내가 종사하는 직군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큰 조직. 그곳에서 스케일이 다른 일을 하면 나의 갈증이 해소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서 내가 나를 펼쳐 보일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36살이던 해 늦깎이로 연구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처음엔 그저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했고 자신이 넘쳤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어서 매일매일 야근을 하며 나의 온 에너지를 일에 쏟았다. 그렇게 3년 정도가 흘렀다.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마친 후였다. 온몸이 아팠다. 아니 몸뿐이 아니었다. 마음도 아팠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런 상태로는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상태로 2년을 흘려보냈다. 그 사이 휴직도 해보고, 정신과 치료도 받아보고, 심리상담도 해보고, 무속인에게도 가봤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회사는 감옥 같았다.

결국 나는 5년을 채 못 채우고 내가 그렇게 갈망했던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백수로 8개월, 다시 학생으로 1년 10개월을 보내는 중이다. 2년 6개월이란 시간 동안 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40대 초반, 다른 이들은 모두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바탕으로 이제 날 준비를 하는데 나는 왜 다시 추락해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는가? 이러저러하게 많은 방면으로 생각해 봤다. 나에게서 어릴 적 자주 직업을 바꾸고 일이 생기면 도망치던 아버지의 모습도 보이고,  나를 늘 추켜세워주던 엄마와 언니의 모습도 보였다. 잘난척하며 거만 떨던 내 모습도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켜 지금의 나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오늘 아침 한 문장으로 또렷하게 나타났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구나.'

직장을 그만두고 무얼 해야 할지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나에게 남편이 늘 해주었던 말이 있다.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후회만 안 남기면 돼. 뭐가 되지 않아도 좋고, 뭘 하지 않아도 좋아. 괜찮아"

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너무 감사한 말이란 걸 알면서도 한편으론 내심 속상했던 말이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난 뭐든 하면 제대로 하는 사람인데...!' 이런 생각을 하며 내가 대단한 사람이란 걸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했다.

그런데 오늘 이 문장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구나.'

그래서였다. 그래서 대단한 나를 담아 줄 직장을 찾아 그렇게 이직을 하고 결국 만족하지 못해 지금 여기 있구나. 나 스스로 구축한 나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혹시 기대 이하일지도 모르는 나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고 그 두려움이 무엇도 꾸준하게 지속하지 못하고 남들의 평가와 일의 결과가 두려워 도망가 버리는 나를 낳았구나.

갑자기 남편의 말이 새삼 이해가 됐다. 어차피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일 수밖에 없다. 게으름을 피우면서 하든 온 힘을 다해서 하든 그게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인 거다. 그리고 결과는 다시 그만큼 나오는 거니 잘 못해서 망신도 아니고 잘해서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게 나다. 더 중요한 건 어떤 일을 하는 그 순간의 나였다. '현재를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가 이런 것이었구나...' 나는 오늘에야 깨닫는다.

나의 언어의 한계로 이 깨달음이 다 전해지지 않을 것 같지만 오늘의 깨달음을 잊지 않기 위해 적어본다. 나는 대단하지 않다. 사람은 모두 스스로는 대단하지 않다. 그냥 모두 지금을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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