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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칼렛 Sep 07. 2023

이래서 어디 풀코스 달리기 하겠습니까?

풀코스는커녕 하프코스도 겨우 할 판입니다.


아이들 밥을 차려주다가 우연히 싱크대 대리석 난간에 골반이 부딪혔습니다. 순간 많이 아팠지만 멍이 좀 들었다가 괜찮겠지 했는데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걸음을 걸을 때도 아파서, 무슨 할머니 마냥 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납니다. 손은 당연히 허리에 가서 받치게 되고 몸도 옆으로 갸우뚱 기울어지게 되었습니다.

 

순간, 저도 살짝 고민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프니 살살 만지며 쉬어야 할까?'

'그래서 계속 움직이면 피도 통하고 몸도 적응을 하겠지?'


 아픈 채로 있기에는 벌려놓은 일들이 많습니다. 당장 이번달 말에 '마라톤 대회' 하프 코스도  신청해 놓았고 '풀 마라톤'도 11월에 있습니다. 몸은 안 따라주는데 마음은 갈팡질팡, 우왕좌왕, 허둥지둥입니다. 날씨가 더워 실외 연습을 잘 못하니 심폐 기능이라도 좀 좋아질까 싶어 2배로 수업을 늘린 줌바수업에 가서 일부러 더 열심히 엉덩이를 이쪽저쪽 움직여도 보고 크게 휘돌려도 봅니다.

처음에는 엉기적거렸던 몸이 거의 모든 동작들을 다 소화를 해 내기는 합니다.

 요가수업도 갔습니다. 자리에 앉거나 일어설 때 찌릿한 통증이 또 요가를 하면 생각이 안 날 만큼 크게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다시 걸어 나올 때

 '아, 여전히 아프기는 하네.'

생각이 다시 들기는 하지만요.






문제는 달리기입니다. 골반 통증을 핑계 삼아 쉬어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합니다.

오늘은 달리러 나가면서

 

'에휴... 내가 괜히 욕심을 내 가지고...'


후회와 자책도 밀려옵니다. 취미로 걷고 달리시는 분들에 비해서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라며 괜히 내 마음과 타협도 해 봅니다.


'이 정도면 몸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에도 나쁜 습관은 아닌데...'


 어떤 핑곗거리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면서 패기와 의욕이 가득했던 목표는 자꾸만 은근슬쩍 뒤로 밀어내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시간과 거리면에서 기록이 안 나오는 것도 사기저하에 큰 몫을 합니다. 해는 점점 더 늦게 뜨는데 그렇다고 깜깜한 새벽에 나갈만한 배짱은 없습니다. 6시에 나가도 아이들 등원준비를 위해 7시 20분 정도까지는 집에 들어오려면 집 옆 학교 운동장만큼 좋은 장소는 없습니다. 그런데 좁은 트랙을 계속 돌고 도는 일은 넓고 긴 자전거도로를 뛰는 것보다 시간도 더디게 가고 지겨운 느낌도 훨씬 강하게 듭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걷고 살살 뛰시는 것을 보는 것도 괜한 우쭐감을 불러일으키며 더 매진하여야 하는 마음에 은근슬쩍 나태함을 가지게 합니다.




"삑"


시계를 정지하고 보니, 오늘 뛴 거리는 미약하고 아쉽습니다. (6km를 달렸습니다)

3일을 뛰었는데도 다 합쳐봐야 하프코스 하나의 길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숨은 차고, 다리는 무겁고, 기록도 마음만큼 안 받쳐주니 재미도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 되겠습니다. 하루 동안 뛰는 거리가 짧으니 이틀에 한번 뛰던 달리기 연습을 매일 하던지 해야겠습니다.

 11월에 풀 마라톤도 안 될 것 같은데 무슨 심보인지

내년 3월에 또 풀 마라톤을 신청해 놓았습니다.

 

저는 

'현실감각이 없는 이상주의자'이던지,

'목표부터 정하고 거기에 끼워 맞추는 되는대로 형' 이던지,

'욕심이 많아 일단 저지르고 보는 계획남발형'

인간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많이 해 놓으면 하나는 얻어걸리겠지?'

를 꿈꾸는 전형적인 '여러 우물형 인간'일까요?





 오늘도 줌바 수업을 갑니다.

 끊임없는 고민의 연속들...


 '과연 줌바를 하면, 달리기의 고정되고 경직되었던 자세를 풀어주며 도움을 주는 측면이 클까요? 심폐기능을 계속 향상해 주고 있을까요?'

'아니면 괜히 이것저것 도전하다가 체력만 축나고 다음에 뛸 달리기에 기운이 달리는 불상사가 생기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줌바는 또 줌바대로 엄청 재미있습니다. 나를 살아있게 하고 생기돌게 만들어 주거든요. 번잡하고 귀찮은 생각의 불순물들도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그 어떤 통쾌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달리기는 왜 하고 있을까요?

 일단 오늘은 이것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부터 고민해 보아야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어제까지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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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다시 뛰고 왔습니다.

학교 운동장은 너무 좁아서 차를 끌고 원래 다니던 자전거 도로가 있는 큰 공원에 갔습니다.

한결 재미있고 달릴 맛이 납니다.

시간상 많이는 못 달렸지만 속도도 최대 5분대로도 달렸습니다. 하하... 기분이 다시 좋아집니다.


골반은 아직 아프지만 다리는 안 아파서 다행입니다.

무릎은 다시 10킬로미터 이상으로 많이 달려봐야 알겠지만 현재 저의 몸 상태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시 희망이 생겼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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