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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칼렛 Sep 14. 2023

마흔 살 넘어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사연과 첫 연습


여러분은 달리기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정말 싫어했었습니다. 남편이 연습을 하거나 대회를 갔다 오면, 하얗고 까만 선명한 색의 대조가 너무 눈에 거슬렸거든요. 저는 여자라 원피스도 입어야 하고 나시같이 어깨와 팔을 훤히 드러내는 옷도 입어야 하는데, 그 촌실방한 선명한 자국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방송에서 매일 떠드는 것이 햇빛은 피부에 최대 적이라는데 피하지는 못할 망정 대놓고 그 땡볕 아래에서

 

"나 좀 잡솨요"


하고 다니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는 생각까지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영미 씨의 <마녀 체력>이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건강하고 당당하게 남자들과 스포츠를 즐기고 국내에서는 자전거 종주와 철인 3종 대회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내용이 실려 있었죠.

 앞으로 해외에서의 온갖 스포츠와 도전을 꿈꾸는 모습을 보고는 '아름답다' 혹은 '멋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라? 괜찮은 것 같은데? 좀 멋있는데?

  나도 도전해 볼까?'


이런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며 저의 마라톤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번의 마라톤 대회와 철인 3종 대회의 경력을 갖고 있던 남편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자진해서 하겠다는 부인을 말릴 수도 없으니 열심히 코칭해 주었습니다. 행여나 올바르지 못한 자세로 부상이라도 입는 날에는 세 아들의 교육과 양육을 책임지고 있는 제가 해 오던 일들을 자기가 떠맡을 수도 있는 공포 생활이 시작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올해(2023년) 3월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장소는 집 근처 작은 하천 둔치로 정했습니다. 시멘트로 포장도 잘 되어 있고 자전거 도로와 겸용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라 직선코스로 연습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전 걷기만 했지, 달리기는 순위에 목숨 걸며 무작정 뛰기만 했던 학창 시절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 사이 내 몸은 남자아기를 세 명이나 출산했고 오직 발바닥과 발목을 지지대 삼아 위아래로 흔들리는 육중한 내 몸을 이동해 가는 경험도 실로 오래간만이었습니다. 남편은 옆에서 끊임없이 장황하게 운동법을 늘어놓습니다. 내가 느끼기에는 오늘 무슨 책이라도 한 권 집필할 기세인 것 같습니다. 오늘 과연 몇 킬로미터를 뛸 수 있을지,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하지는 않을지 그 고민에 몰두되어 있는 저에게는 그저 과한 설명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막말로 오늘 내가 한 번 뛰어보고 급 흥미가 떨어지거나 지레 공포를 가져버리면 저 상세하고 친절했던 안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다행히 3월 중순의 거리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덕분에 남편과 처음으로 같이 뛰어보는 그 순간이 무슨 첫 데이트인양 환하고 벅찬 감흥으로 다가왔습니다. 길 양옆으로 하얀 솜뭉치마냥 모두 터뜨려진 무수한 꽃망울들은 때마침 적절하게 불어오는 순풍에 맞추어 하늘하늘 춤을 추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그날 첫 달리기 연습에 대한 나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면, 이런 자연의 정취로 인한 들뜸도 크게 한 몫을 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예행연습으로 5km를 뛰기로 했으니 2.5km쯤 되면 반환점이기에 돌아 나오면 되었습니다.


 "이제 다 와 가?"


다 왔다는 소리가 이제나저제나 들려올까 귀를 쫑긋 세워보지만 남편 입에서는 '아직'이란 야속한 단어만 새어 나올 뿐입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외치던 그 음성이 드디어


"돌자!"


못지않은 반가움으로 터져 나옵니다.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가는 길이 짐작할 수도 없고 예견되지도 않는 미지의 여정이었다면 이미 되돌아갈 길을 알고 있다는 자신감은 이제 최소한 반은 해냈다는 기쁨과 함께 한껏 의욕을 고취시킵니다. 왠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왠지 남편에게 첫 연습치고 잘했다고 칭찬도 받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부풀어진 마음은 첫 연습의 걱정과 불안을 덜어내며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내 몸의 몸놀림에도 긍정적인 화학신호를 쏘아줍니다. 땅을 디뎌내는 동작에도 다시 힘이 실립니다. 한 발 한 발 교대하며 다시 둥글게 타원형이 만들어집니다. 힘차게 굴러가는 엔진처럼 그렇게 멈춤 없이 운동의 관성이 발휘됩니다. 저 멀리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장소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 내가 처음으로 도전했던 달리기란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살면서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그 무언가가 내 옆으로 성큼 다가온 느낌이었습니다. 숨은 차고 땀방울이 솔솔 맺혔지만 왠지 싫지 않습니다. 발바닥이 지끈거리지만 기분 좋은 통증입니다. 해냈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떠 주위 사람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남편도 같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5km 첫 완주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새로운 친구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나와 기존에 연결되어 있던 존재들과는 전혀 다른 실체입니다. 그런데 왠지 거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몰랐고 상상할 수 없었던 그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맛볼 수 있게 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손을 맞잡은 우리의 여정은 다툼 없이, 갈등 없이 완만히 이어져 갈 수 있었을까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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