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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칼렛 Dec 29. 2023

2023년의 나의 성과들


2023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나를 찾고 싶었고,

나를 성장시키고 싶었고,

나를 따뜻하게 만들고 싶었고,

나를 넓혀 보고 싶었고,

나를 살아있게 만들고 싶었던 한 해였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고 열정적이었다.



1. 나의 운동


 작년부터 시작된 <단독으로 떠난, 전국 22개 국립공원 산의 대표 등산 코스 완주> 도 올해 10월에 끝이 났고,

요가와 댄스도 꾸준히 다녔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5번의 마라톤 도전과 풀코스 완주'다. 갑상선 저하증을 15년 넘게 겪으며, 지금도 한알 반을 매일 아침에 복용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목표한 바를 이루고, 신체 능력을 향상시켜 나갔던 일들은 가장 뜨거우면서도 인상 깊은 올해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2. 블로그, 브런치에서의 인연



 특이하게 올해는 블로그에서 인생 벗을 만난 해였다.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몇 년 동안 꾸준히 만나고 있는 친구나 지인이 있지만 내 기준 온라인에서의 인연은 좀 특별하다.

우선 나의 생각과 감정과 감흥을 글을 통해, 책을 통해, 시를 통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나누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동심 속에 날아올랐던 마음도, 슬프게 내려앉는 작아지고 약해졌던 마음도,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던 시구와 문구도, 놀라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줬던 지적 깨우침도 그분들을 통해 더 느끼고 나누어 볼 수 있는 한 해였다. 물론 기질이라는 것도 분명 존재하고 그전에도 그러한 감정의 굴곡을 느끼지 않고 살았던 바는 아니나 그분들을 통해 좀 더 분명해지고 생명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글을 쓸 동안은, 시를 쓰고 글로 대화를 할 동안은, 아내, 엄마, 며느리, 딸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잠시 내려놓아도 되었다. 현실적 의무나 역할 속에서 무뎌지고 덮어 놓았던 나만의 생각과 감정에 어떤 색깔과 무늬의 옷을 입혀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소중히 감싸주셨다. 레이스의 하늘거림도 즐겁게 바라봐주시고 청바지의 질긴 내구성도 건강미로 쾌활하게 여겨 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에도 입성하고 스스로 만족할만한 몇 개의 글도 남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나의 생각과 감정이 어떤 글과 말로 표현되어 나의 인생에 얼마만 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계속 도전을 할 것이고, 글로 남길 것이며, 좋은 분들과 소통을 이어나갈 것이다.




3. 내 생애 최고의 몸 상태였던 인바디 기록과 몸무게



 여러 개의 운동을 하고 운동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크게 식단을 신경 쓰지 않아도 나의 몸 상태는 나날이 좋아졌다. 2023년 4월 인바디 기록은 'I'자 형의 '표준체중 건강형'이였는데 3개월 후 6월에는 'D'자 형의 '표준체중 강인형'으로 나왔던 것이다.

 내장 지방도 많이 줄었고, 무엇보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겪으며 이루어 낸 결과이기에 무엇보다 뿌듯했다. 초등학생 3명의 밥상을 차려주며 일반 가정식을 먹었고 닭가슴살이나 샐러드처럼 일부러 음식메뉴를 갖추지도 않았다. 여행이나 캠핑을 가면 먹고 싶은 만큼 먹었고 그래서 3~4킬로그램이 갑자기 훅 불어나는 경우도 흔했지만 평소의 운동 패턴으로 돌아가니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었다. 현재까지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기록표가 아닌가 싶다.



4. 유독 남편과 가까워졌던 해


원래 부부는 싸운다고 서로 가르쳐주고 도움받는 일은 하지 말라고 자주 들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도로주행 연습'이 아닐까 한다. 2023년은 원래 각자가 해오던 스포츠 영역에서 (남편 : 철인 3종과 헬스,  나 : 등산, 요가, 댄스) '달리기'라는 매체를 통해 많이 가까워졌던 한 해이기도 했다.


나는 원래 '달리기'에 부정적이었다. 햇볕에 노출되는 것이 싫었고 음악도 없이, 지루하게, 한 동작만을 연속적으로 해 나간다는 것이 다소 답답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녀 체력'이라는 책을 읽고 불현듯 '마라톤'이라는 세계가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왜 달리는지, 무슨 희열이 느껴지는 것인지, 과연 나는 얼마만큼 할 수 있을지 단순하고 즉각적인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성인이 된 후로 한 번도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는 아줌마가 '한번 달려볼까?'하고  운을 띄우니 같이 사는 집안사람이 앞날의 평화를 위해 거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장난인지, 얄팍한 호기심인지, 진심인지도 모른 채 그 남자는 그렇게 열성적으로 상세하고도 긴 설명을 풀어놓으며 코치의 역할에 임했다.


 3월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6월에 10km를 건너뛰고 바로 21km를 신청한다고 했을 때도 긴가민가 했지만 강력하게 말리지 않았다. 마라톤 경력이 1년도 되지 않는 8개월쯤에 '풀마라톤 (42.196km)'을 도전한다고 했을 때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보이기보다 하고 싶으면 해 보라고 도전의 앞길을 응원해 주었다. 통증이 생겨 절뚝거리며 걸어 다닐 때는 쉬어주라며 걱정해 주고, 제시했던 연습량을 충분히 채우지 못하더라도 채찍질하거나 비난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언은 하되 잘하고 앞선 자의 날 서고 차가운 지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달리기에 동료도 없고 동호회도 없다. 무엇보다 아이 셋을 키우는 일정 안에서 나의 성장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날 때 그냥 나서야 하고 차를 타고 떠나야 했다. 오는 길에 마트를 들리고 깜박했던 볼 일을 봐야 했다. 나의 아들 셋은 운동 외에 학원을 다니지 않고 그래서 엄마표로 공부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이다. 아이들의 간단한 학업을 봐주는 일정 안에서 내 것을 또 챙기고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결국 주어진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 작은 조각으로 소분하여 하나씩 해나가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서로의 스케줄을 묻고 약속을 정하며 그 시간까지 기다리는 일은 나에게 또 하나의 짐이며 지키야 할 또 다른 의무였다. 주고받는 대화와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냥 내킬 때 바로 나가 뛸 수 있는 자유로움이 편했다.

 그렇게 처음 한 달 정도를 남편의 코치 속에 같이 뛰었을 뿐, 나의 달리기는 오로지 혼자서 계획하고 뛰고 이루어내는 자유로운 고독의 시간이었다. 잘되는 대로, 못한 대로, 희열과 아쉬움 속에서 뻐근해진 다리로 집에 돌아왔던 것이다.


오로지 남편과 참가했던 5개의 대회들. 남편은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격려도 해주고 조금만 더 잘 달렸으면 숫자가 바뀌었을 거라고 아쉬움을 담아 웃기도 했다. 풀마라톤 때는 아픈 무릎으로 울면서 빠르게 걸어 나가는 아내 곁에서 묵묵하게 완주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주었다. 운동을 좀 잘하는 것 같다고 자만의 고개가 들리려고 하면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자중시키기도 했고 술자리에서 웃고 떠들며 장난스럽게 자랑할 때에는 빙긋이 웃으며 러닝의 기쁨을 함께 즐겨주기도 했다.


세 아이 키우며 빠듯한 살림 안에서 이번에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이하여 러닝화 2개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운동하는 사람이기에 오히려 평상복에 욕심은 없어도 운동에 관련된 용품에는 씀씀이가 후한 사람이다.

안전과도 직결될 수도 있고 기록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연습은 따로 하지만 그 운동화를 볼 때마다 남편의 사랑을 느낀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꼼꼼하게 준비물을 챙겨주는 마음에서 듬직함을 느낀다.



5. 여전히 꾸준히 계속되는 독서,  그리고 자작시 쓰기


책을 읽으며 독서노트에,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썼다. 올해 50권 이상은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난 '읽은 개수'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읽고 무엇을 남길 것이며 (특히 글로), 훗날 그 책을 상기시켜 볼 때, 난 무엇을 기억해 낼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두며 읽기로 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글귀, 문장을 타이핑을 치며 책을 읽는다. 물론 이것이 조금은 바보 같고 우둔한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작업해보며 이 수작업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했다. 무엇을 읽긴 했는데 무엇을 읽었는지 가물거릴 때, 메모해 둔 기록들만 봐도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시로 남겼던 여운이 그때의 인상과 느낌을 선명하게 되살려주었다. 긴 시간을 할애해서  다시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 책의 감흥을 느끼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노트를 보며 짧은 시간 안에 훑어볼 수 있었다.

 올해부터 시작된, 독서 후 '자작시 짓기'는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이웃님 덕분이다.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의 느낌과 감흥을 짧고 강렬하게, 그렇지만 더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작시의 장점을 체감하고 나니 계속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년의 목표는 <'세계 명작 소설'을 읽고 쓴 자작시와 서평>의 브런치 북을 발간해 보는 것이다.
일주일 연재를 시도해 볼 작정이라 아직 모아가는 단계로 공개는 되지 않고 있다. 기존에 읽었었던 소설들도 있어서 어느 정도 양을 채우는 것은 될 것 같은데 문제는 제대로 음미하며 읽으려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세계명작 소설 읽기'는 학창 시절부터 꼭 이루어내고픈 나의 버킷 리스트 같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꾸준히 읽었던 독서의 내공으로 이 계획도 잘 이루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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