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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칼렛 Oct 19. 2024

달리기를 거부하던 나를 달리게 만든 책

이영미 씨의 <마녀체력>


 나는 남편이 밖으로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러 가는 것을 몇 년째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 보듯 지켜봤었다. 세상에 실내에서도 즐길 스포츠가 얼마나 많은데, 음악이 곁들여져 저절로 신이 나고 흥겨운 운동도 있는데 왜 무미건조한 아스팔트 길 위에서 하염없이 몇 시간을 운동하고 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딱하고 안쓰런 마음으로 뜨거운 햇살에 데여 벌겋게 익어버린 살갗에 알로에를 바르며 처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나의 심정과는 대조적으로 남편은 경기를 마치고 오면 흥분했고 자신의 기록이 당겨졌는지, 늦춰졌는지에 관해 열심히 분석하며 몰두했다. 나는 내키지 않는 활동이지만 저렇게 좋아하는데 즐기면 됐지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내 곁에는 여자임에도 몇 년째 꾸준히 달리기를 하는 친한 언니가 있었다. 내가 존중하고 좋아하는 지인이었기에 여자의 심리로써 그분을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그리고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게 된 책. 이영미 씨의 <마녀 체력>이 나의 생에 전혀 올 것 같지 않았던 이방인을 마음속으로 확 끌어당기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 전환점이 된 책 <마녀 체력>


 

영웅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하지 않는다.

                                             로맹 롤랑



 이영미 씨는 철인 3종은 하는 작가셨다. 책을 많이 읽으시는 편집자이기도 하셔서 그분이 소개하는 문구와 책은 나의 구미를 확 당기면서 깊은 몰입감을 가지게 하셨다. 위의 문구를 읽으며 과연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은 단절되었다. 사회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직장인이 아닌 것을 어설프게 모면해보고 싶은 엄마표 공부라는 타이틀은 지출의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적지 않은 부담과 이게 옳은 길인가 하는 시시각각의 고민과 맞닥뜨리게 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현재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꾸준히 운동을 하는 이유는 어떻게 죽을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움직이고 싶기 때문이다. 골골 100세는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체력을 쌓는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재미가 없을 테니까. 사실 내 진짜 속셈은 따로 있다. 언제라도 손짓하며 지나가는 기회란 놈의 앞머리를 확 잡아챌 수 있도록 몸 상태를 준비해 놓고 싶다.  체력이 강해지면서 그동안엔 꿈도 꾸지 못했던 근사한 버킷 리스트가 생겨났다. 유럽 자전거 여행, 몽블랑 트레킹, 사하라 사막 마라톤, 필리핀 스킨 스쿠버, 실크 로드 도보 여행 등. 리스트의 꼬리는 라푼젤 머리카락 자라듯이 늘어져만 간다. 이런 모험은 돈과 시간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 후다닥 능력을 갖출 수도 없다. 꾸준히 운전 연습을 하듯 체력을 단련하다가, 기회가 내 앞에 다가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버스 운전대에 앉을 수 있어야 한다.


  "에펠탑까지 걸어가서 근처에 있는 공원을 뛰기 시작했다. 누구나 감격하는 놀라운 파리의 상징을 코앞에 보면서 뛰고 있는 기분을 상상해 보시라. 관광버스가 수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을 내려놓는 그곳. 하지만 나는 그들 같은 관광객이 아니라, 마치 이 도시에 오래 살아온 주민처럼 동네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면서 나란히 달렸다. 그렇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나는 에펠탑 주위를 열 바퀴나 신나게 뛰었다. 그것이 내가 만난 최초의 파리였다. 언제든 파리는, 그런 느낌으로 기억날 것이다. "


 내가 염원하는, 언젠가 해 보고 싶은 세계 여행이라는  무대에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달리기! 걷지 않고, 버스를 타지 않고, 달리면서 더 많은 장소를 구경하고 마치 동네 사람인양 지나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아침 산책대신 조깅으로 한 바퀴 돌고 오면 얼마나 뿌듯할까?

 이국에서 널따란 관광지나 좁은 골목에 상관없이 달리면서 더 많이 알아 갈 수 있다는 발상은 내겐 정말 신선했다. 그리고 즐거운 충격이 되어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머리가 받아들인 정보는 나이 혈류를 빠르고 더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고 그런 기분은 당장이라도 밖에 나가 달려고픈 마음의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이렇듯 내가 비관적으로만 보던 달리기에 새로운 눈부신 조명을 들이대며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서는 걷기나 달리기, 자전거 여행으로 마음의 치료뿐만 아니라 더 건강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돌아온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하루에 26킬로미터를 걷기도 했던 <나를 부르는 숲>의 적자 '빌 브라이슨'

80일 동안 6,400킬로미터를 달려서,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를 가장 돌아가는 길인 '트렌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해 낸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의 홍은택 님.

 예순 살의 나이까지 30년간 기자 생활을 한 후 아내가 죽고 자식들 또한 떠나자 지옥 같은 고통이 시작되어 4년에 걸쳐 1만 2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실크로드를 걸은  <떠나든, 머물든>​의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



 우리는 살다 보면 자신을 극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지금의 나도 엄마로, 아내로, 한 사람의 존재 가치로 있는 힘을 쥐어짜서 건강하게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시점에 있다. 예전에 메모해 놓았던 놓았던 <마녀 체력>을 재독 하면서,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회복하고 건강한 힘이 축척되고 있음이 느껴져서 얼마나 다행이고 기쁜지 모른다.

 갑상선 저하증을 10년 넘게 앓고 있는 환자로써 무엇보다 매일의 꾸준한 운동이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즘엔 이마저도 나만의 사치였나 싶어 위축감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에조차 위로를 건네는 말이 책 속에 들어 있었다.



 현실의 모든 것을 잊을 만큼 흠뻑 몰입하는 고양 생태를 '희열'이라고 부른다. 어릴 때는 누구나 놀면서 맛보곤 했던 이 감정을 어른이 되면서 다들 잊어버린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고달프고 비루하며 우울한 일투성이다. 일하는 동안, 가족들끼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시시때때로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를 입는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거나, 가족과 헤어지거나, 사람들을 안 만날 수는 없다. 나 홀로 사막이나 우주에 가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운동'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놀이를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흠뻑 놀다 오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대인에게 '놀지 못한다'는 말은 '우울하다'와 마찬가지라고 한다.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나아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 해결한답시고 거기에 골몰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마치 무대 위에서 대사를 까먹고 헤매는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던지는 것과 같다. 불안은 가중되고 문제는 점점 심각해진다. 그럴 때는 오히려 잠시 막을 내리고 현실에서 빠져나가, 이상한 나라에 놀러 간 앨리스처럼 격렬하게 운동을 하는 게 낫다. 물론 그렇다고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운동은 정신력을 강화하는데 마술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바로 직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이 왠지 견딜 만하게 느껴진다. 일단 기분이 달라지고 긍정적인 마음이 들면, 그 상태가 여러 시간 지속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몰라 당황해하고, 과거에 집착하여 점점 나를 갉아먹고 있는 상태에서 그곳에 헤드라이트를 비추기보다는 이상한 나라에 놀러 간 엘리스처럼 운동하며 놀고 오라는 그녀의 말은 나에게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다.

 세상에 지나가지 않는 일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나의 내면의 목소리는 '너의 인생의 황금기'는 지나갔을지 모른다며 깎아 내리지만 그녀는 '다시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황금기를 운동으로 준비하라.' 며 날 다독이고 있었다.

그럼 된 거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닌 것이었다. 오늘 저녁도 그 뜨거운 위로를 느끼기 위해 달려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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