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씨의 <마녀체력>
영웅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하지 않는다.
"내가 꾸준히 운동을 하는 이유는 어떻게 죽을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죽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움직이고 싶기 때문이다. 골골 100세는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체력을 쌓는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재미가 없을 테니까. 사실 내 진짜 속셈은 따로 있다. 언제라도 손짓하며 지나가는 기회란 놈의 앞머리를 확 잡아챌 수 있도록 몸 상태를 준비해 놓고 싶다. 체력이 강해지면서 그동안엔 꿈도 꾸지 못했던 근사한 버킷 리스트가 생겨났다. 유럽 자전거 여행, 몽블랑 트레킹, 사하라 사막 마라톤, 필리핀 스킨 스쿠버, 실크 로드 도보 여행 등. 리스트의 꼬리는 라푼젤 머리카락 자라듯이 늘어져만 간다. 이런 모험은 돈과 시간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 후다닥 능력을 갖출 수도 없다. 꾸준히 운전 연습을 하듯 체력을 단련하다가, 기회가 내 앞에 다가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버스 운전대에 앉을 수 있어야 한다.
"에펠탑까지 걸어가서 근처에 있는 공원을 뛰기 시작했다. 누구나 감격하는 놀라운 파리의 상징을 코앞에 보면서 뛰고 있는 기분을 상상해 보시라. 관광버스가 수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을 내려놓는 그곳. 하지만 나는 그들 같은 관광객이 아니라, 마치 이 도시에 오래 살아온 주민처럼 동네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면서 나란히 달렸다. 그렇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나는 에펠탑 주위를 열 바퀴나 신나게 뛰었다. 그것이 내가 만난 최초의 파리였다. 언제든 파리는, 그런 느낌으로 기억날 것이다. "
현실의 모든 것을 잊을 만큼 흠뻑 몰입하는 고양 생태를 '희열'이라고 부른다. 어릴 때는 누구나 놀면서 맛보곤 했던 이 감정을 어른이 되면서 다들 잊어버린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고달프고 비루하며 우울한 일투성이다. 일하는 동안, 가족들끼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시시때때로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를 입는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거나, 가족과 헤어지거나, 사람들을 안 만날 수는 없다. 나 홀로 사막이나 우주에 가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운동'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놀이를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흠뻑 놀다 오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대인에게 '놀지 못한다'는 말은 '우울하다'와 마찬가지라고 한다.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나아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 해결한답시고 거기에 골몰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마치 무대 위에서 대사를 까먹고 헤매는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던지는 것과 같다. 불안은 가중되고 문제는 점점 심각해진다. 그럴 때는 오히려 잠시 막을 내리고 현실에서 빠져나가, 이상한 나라에 놀러 간 앨리스처럼 격렬하게 운동을 하는 게 낫다. 물론 그렇다고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운동은 정신력을 강화하는데 마술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바로 직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이 왠지 견딜 만하게 느껴진다. 일단 기분이 달라지고 긍정적인 마음이 들면, 그 상태가 여러 시간 지속된다는 점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