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성인이 된 후로 남편과 처음 뛰어 본 후, 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4월 2일, 생전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라는 것에 참가해 보게 됩니다. 바로 <합천벚꽃 마라톤 대회>입니다. 남편은 벚꽃 구경하기도 좋고 먹거리나 볼거리도 많으니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며 같이 뛰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물며 몽글몽글 솟아올랐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전혀 다른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아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이제 저 세상에 합류하는 거야?
앗싸~~ 신난다!'
마라톤을 위한 예행연습에서 남편과 6km 넘게 뛰었었고, 초등학교 1학년인 어린 쌍둥이들과 함께 걷고 뛰며 완주해야 하니 5km의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자신감에서 저는 배번과 준비물을 챙기고 기대와 설렘도 며칠 전부터 차곡차곡 마음에 쌓아두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다가온 대회날 당일.
저는 세 아이들을 데리고 난생처음 보는 곳으로 운전해 가야 하는 의무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동호회 사람들과 운동 겸 자전거로 미리 출발한다는 구두의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전을 좋아하고 혼자서도 룰루랄라 잘 다니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탕탕치며 출발하게 되었는데 아뿔싸! 저는 마라톤 대회의 운전과 주차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도착하게 되는 주차장마다 만차라는 표시와 함께 주차 안내원이 다른 곳으로 가라고 손신호를 보내 주었습니다. 골목길은 주차할 곳을 찾으려는 차들로 인해 양방향이 모두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좁은 골목길인데 차도 작지 않으니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등줄기가 오싹해짐을 견디다가 주차할 곳을 발견할 때의 그 기쁨이란! 다시는 남편 없이 혼자서 운전해서 대회에 오지 않겠노라는 결심이 저절로 마음속에서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주차는 힘들었지만 마라톤 대회는 정말이지 '마을 축제'이며 '운동하는 이들의 축제'였습니다.
지역 특산물의 소개와 함께 각종 먹거리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이나 가족단위 방문객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아기자기한 체험부스들도 여기저기에 마련되었습니다. 마라톤 대회가 달리는 행위만이 아닌 지역주민이 함께 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하고 즐기는 장소라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피에로 아저씨에게 풍선을 받고 아이들에게 팝콘을 주려고 줄을 서 있는 그때, 한 할아버지가 내 옆을 지나갔습니다. 분명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얼굴의 나이는 최소 50대 후반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나의 눈에 띈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커다랗고 굵직한 울퉁불퉁한 다리의 근육!"
저는 그 연세의 어르신이 그렇게 큰 근육을 가지고 계신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제 입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그분이 불편하지 않게 나의 눈은 그분 뒤에서 다부진 근육들을 스캔하고 있었습니다.
바지는 짧았고 운동화는 전문 러닝화 같았습니다. 상체도 나시를 입고 계셨는데 하체 못지않게 탄탄한 근육을 뽐내고 계셨습니다.
저의 곁을 잠시 스쳐 지나가셨지만 그분의 인상은 너무 강렬했고 나의 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보, 저분 봤어? 근육 정말 대단하지?"
저는 그때부터 주변의 선수들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운동복과 건강한 근육핏의 몸매! 감탄과 놀라움이 절로 나왔습니다.
바로 그때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제일 먼저 하프코스(21km)의 출발이 있겠습니다. 선수들은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합천벚꽃마라톤 대회> 의 하프코스 참가자들
하프 코스, 10km, 5km 순으로 출발하기에 우리 가족의 순서는 아니었지만 저는 먼발치에서 하프코스 참여 선수들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적당히 검은 탄탄한 구릿빛 근육에 짧은 러닝복으로 가볍게 뛰어 나가는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멋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나도 저 대열에 끼여서 달려볼 수 있을까?'
'나도 함께 뛴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 같은데...'
가족 마라톤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저의 마음속은 벌써 다음 경기 때의 하프코스 라인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상상도 잠시, 곧 5km 차례가 왔습니다. 첫째는 일치감치 먼저 뛰어나가 제일 먼저 결승지점에 도착했고 초등학교 1학년인 쌍둥이는 저희 부부가 한 명씩 맡아 뛰고 걸으며 마침내 온 가족이 완주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오~ 재밌다. 이거 할만한데?'
저의 들뜬 행복과는 대조적으로 아이들은 힘들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한, 약간은 모호한 경계에서 갈등하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벌써 결심하고 있었죠. 살살 구슬려서 종종 아이들과 이런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쇼킹했던 인상은 건강했던 할아버지의 인상과 하프코스 선수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보, 나 마라톤 대회 또 나갈 거야!
그런데 10km가 아닌 하프코스에서 달려보고 싶어."
"엥? 지금 뭐라는 거야?
5km 처음 뛰어보고 바로 하프코스(21km) 가겠다고?
그게 가능하겠어? 겁도 없네~"
남편은 놀라기도 하고 긴가민가했지만 저의 마음은 벌써 강하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다음 경기 때는 꼭 하프코스에서 저렇게 늠름한 선수들과 같이 뛰어볼 것이라고!
그렇게 저는 4월 2일 5km의 가족 마라톤을 처음으로 뛰어 본 후, 두 달 후쯤인 6월 4일에 마라톤 대회 첫 하프코스를 출전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