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좋은 날.
12월. 겨울이다.
한국은 눈이 많이 내려서 도로 곳곳에서 사고도 많이 나고, 출퇴근 길이 혼돈의 도가니 그 자체라고 하던데 여기는 해가 쨍쨍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겨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사람들은 나고야의 겨울이 춥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늘 롱패딩과 함께였는데 나고야에서는 늘 코트와 함께하고 있다.
하늘도 예쁘다. 맑은 하늘.
2시간 떨어졌을 뿐인데 이렇게 파란 하늘이라니.. 한국에서는 요즘 보기 힘든 하늘색인데..
일본에 오고 나서 날씨가 맑은 날이면 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된다. 하늘색도 이쁘고 그 위에 떠 있는 구름도 몽글몽글 너무 예뻐서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부서지는 햇살과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이 세 가지의 조합이 너무나 잘 어우러진 따뜻한 날이다.
목적지도 없이 햇살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왼쪽? 오른쪽? 어디로 가지? 맨션 입구 앞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 오른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는 중간중간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도 느껴보고, 부서지는 햇살에 눈살이 살짝 찌푸려지긴 하지만 그래도 따뜻하고 좋다.
걷기에 딱 좋은 날이다.
일본에 오고 난 후로, 자주 걷는다. 백수이기도 하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냥 밖을 걷게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동네 산책이든 공원 산책이든 항상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지만, 일본에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공짜 듣기 평가 같은 느낌?
들을 때마다 "와~ 말하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 "어? 이 단어 오늘 외운 건데." "어머? 정말 이런 말을 쓰네?" "아.. 큰일이다.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등등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갑자기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나는 왜 여기 있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앞으로 어떻게 한다.. "
이런 생각을 하다가 또 갑자기 "와~ 날씨 너무 좋네." 이런 생각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여기 이런 가게가 있구나." "이런 곳도 있었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 "어? 한국말이다."등등 생각의 흐름이 오락 가락 한다.
나고야에는 한국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우연히 걷다가 한국말이 들릴 때면 괜히 반갑다.
지난번에는 마트에서 한국인 엄마와 자녀가 장을 보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말을 걸 뻔했다.
나 정말 사람이 그리운가 보다.
어느덧, 일본에서 생활한 지 2달이 지났다. 말이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이 없고, 특정한 목적이 없이 낯선 곳에서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흘러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