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 용서와 화해
창세기 32장은 야곱과 에사우가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야곱이 에사우의 장자권과 강복을 가로채 버렸기 때문에 에사우는 크게 분노하였다. 야곱은 에사우에 의해 죽을 것이 두려워 하란으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하란에 살고 있던 외삼촌 라반 밑에서 나그네살이를 이십 년을 하였다. 그 나그네살이는 야곱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매섭고 혹독했다.
야곱은 이십 년 동안 형 에사우의 분노가 두려워 감히 고향에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꿈에 하느님께서 나타나시어 '고향으로 가라' 하시자 용기를 내어 가족들과 종들과 가축들과 함께 아버지 이사악이 살고 있는 고향 가나안으로 가게 된다.
야곱은 에사우와의 만남이 두려워 우선 심부름꾼을 먼저 에사우에게 보내며 이렇게 말하도록 지시하였다.
"나리의 종인 야곱이 이렇게 아룁니다. '저는 라반 곁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이제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소와 나귀, 양과 염소, 남종과 여종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십사, 이렇게 사람들을 보내어 주인님께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이 이야기에서 야곱은 에사우가 분노하지 않도록 자신을 '종'이라 지칭하며 자신을 최대한 낮추며 눈치를 보는 야곱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리고 신부름꾼들이 돌아와 야곱에게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나리의 형님 에사우에게 다녀왔습니다. 그분은 장정 사백 명을 거느리고 나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이 말을 들은 야곱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마도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렸을 것이다.
야곱은 몹시 놀라고 걱정이 되어, 자기 일행과 양과 염소, 소와 낙타들을 두 무리로 나누었다. 그는 '에사우가 한 무리에게 달려들어 치더라도, 너머지 한 무리는 살아남을 수 있겠지.'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야곱은 기도하였다. "저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 저의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 '너의 고향으로, 너의 친족에게 돌아가라. 내가 너에게 잘해 주겠다."하고 저에게 약속하신 주님! 당신 종에게 베푸신 그 모든 자애와 신의가 저에게는 과분합니다. 사실 저는 지팡이 하나만 짚고 이 요르단 강을 건넜습니다만, 이제 이렇게 두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제 형의 손에서, 에사우의 손에서 부디 저를 구해 주십시오. " (창세기 32장 10절, 11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야곱은 아침이 되자 형 에사우에게 줄 선물을 골라내었다. 성경에는 수많은 염소 암수, 양 암수, 어미 낙타와 새끼, 암소와 황소, 나귀 암수를 한 떼씩 따로 보내고 자신은 맨 뒤에서 따라갔다.
그리고 맨 앞에 선 종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나의 형 에사우가 너를 만나, '너는 뉘 집 사람이야?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에 있는 이것들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여라. '이것들은 나리의 종 야곱의 것인데, 주인이신 에사우께 보내는 선물입니다. 야곱도 저희 뒤에 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게 하였다.
야곱은 에사우에게 '나는 에사우의 종이며 나의 것은 모두 에사우의 것이니 제발 화를 풀어주세요.'라고 속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야곱이 그날 밤 야영지에서 지냈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과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동이 트려고 하자 야곱을 이기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 그가 놓아달라고 하였지만 야곱은 축복을 해주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야곱에게 이름을 묻고는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하였다.
야곱이 밤새 씨름한 존재는 신이었다.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였다.
주석에는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죽음의 위험을 뜻한다고 쓰여 있었다.
왜 에사우를 만나기 전날 밤에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시어 밤새 씨름을 하신 것일까?
창세기 17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 후에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라이를 사라로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셨다. 이것은 어쩌면 야곱이 장자권을 가지고 민족을 이끌 자격이 있는지를 마지막으로 시험하신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야곱은 하느님께 끈기와 힘으로 그것을 증명하였고 하느님은 축복과 함께 야곱을 이스라엘이 되게 하셨다.
새로운 이름을 갖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
새로운 이름은 다시 시작하는 사는 삶, 야곱이 야곱으로서 살았다면, 앞으로는 이스라엘로서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종교에 따라 세례명 혹은 법명을 받는다. 믿음이 없는 삶에서 믿음이 있는 삶으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예인들이 예명으로 활동을 한다. 그것 또한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야곱에게 고단한 이십 년은 어떤 의미일까? 고난은 야곱을 성장시키는 훌륭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야곱은 고난을 통해 장자권을 가질 진정한 자격을 얻게 되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라.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사우가 장정 사백 명과 함께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야곱은 라헬과 요셉을 무리의 맨 뒤에 세우고 자신은 맨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형에게 다가갈 때까지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에사우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도 에사우는 하란에서 야곱이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전해 듣지 않았을까?
그러자 에사우가 야곱에게 달려와서 그를 껴안았다. 에사우는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입 맞추었다. 그들은 함께 울었다. (창세기 33장 4절)
에사우는 야곱을 용서하고 화해했다.
야곱이 아이들과 가축들로 인해 천천히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에사우는 먼저 세이르로 돌아갔다.
다음 24장은 야곱의 일행이 가나안으로 가던 중 발생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