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자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교양 없는 말을 한다는 게 용납되지 않지만,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나온 그 말에 뜨끔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랑'이라는 명사 뒤에 '-질'이라는 접미사를 붙임으로써 파생어로 거듭난 그 단어를 통해 한껏 불편한 심기를 강력히 표현하고만 싶었다. 다른 단어로는 약하다. 반드시 그 단어여야만 한다.
동시에 나는 이것이야말로 (당사자인 그는 인정하려 들지 않겠지만) 무직자에 대한 '직장인의 갑질'이 아닌가 싶었다.
아직은 순수한 초등 3학년과 5학년 남매가 거주하는 우리 집에서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단어의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였지만 당시는 반드시 '자랑질'이라는 그 말이 매우 적절하고도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엄마! 아빠가 잘하고 있다고 엄마한테 전해 주래."
아들이 제 아빠와 통화를 마치고 내게 착실히 들은 그대로 전했다.
"엄마는 안 물어봤는데? 잘하고 있겠지. 못 할 거 뭐 있겠어."
딸과 아들이 번갈아 가며 남편과 통화를 마치고 나만 쏙 빼놓고 전화를 끊어서 심통이 나서 그렇게 말한 게 결코 아니다. 전화 통화 그거 몇 초면 용건만 간단히 할 수도 있는 건데 나 보란 듯이 아이들하고만 통화를 하고
"얘들아, 엄마 바꿔 줘 봐."
라는 술 취한 소리를 기대했던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그 말이 난데없이 떠오르면서,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왠지 그런 것도 같은 느낌이랄까.
아직 술이 덜 취했나 보다.
회식을 하는 날이면, 특히 술이 잔뜩 취한 날이면(이것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다.) 내게 전화를 걸어 이런 해괴망측한 소리를 다 한다.
"여보, 사랑해."
아니, 이게 남편이란 사람이 아내에게 할 법한 소리인가.
에구머니, 망측도 하여라!
"또 술 취했어? 누가 그런 소리 하랬어? 엉? 정신 차려! 이상한 소리 하는 거 보니까 취했군 취했어! 당장 징역 가고 싶어서 그래?"
라며 나는 남편을 다그치기 바쁘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거지.
게다가 우린 부부라고.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선을 넘었다.'라고 한다지 아마?
간혹 회식이 끝나갈 무렵 저런 몹쓸 말을 하며 내게 전화하는 남편을 나는 '만취했다'라고 단정한다.
일단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만취한 거라고 나 혼자만 결론짓는다.
하긴, 맨 정신으로는 못할 말이긴 하지.
보자보자 하니까,이 사람이 정말, 말이면 다인 줄 아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집에서 그런 말을 뜬금없이 할 때도 있다.
그럴 땐 일단 술은 마시지 않았으므로 제정신은 맞다.
"또 장바구니에 뭘 얼마나 담아 놓으셨을까?"
아마 장바구니가 넘치도록 무언가 담아 놓았을 확률이 높다고 또 나는 단정 지어 버린다.
그러니까 뜬금없는 사랑고백은 프로 쇼핑러의, 일종의 '복선'이다.
"에이, 엄마. 자랑이 아니라 아빠가 엄마 수국 좋아한다고 예뻐서 사진 보낸 거겠지."
딸이 내게 말했다.
"합격이 너 지금 아빠 편드는 거야? 엄마 수국 좋아한다고 한 적 없는데?"
사실이다.
나는 수국이 예쁘다는 말은 많이 했지만 좋아한다고 한 적은 결단코 없다.
"당신 수국 좋아하잖아. 수국 보러 갈까?"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이런 말을 자주 내게 했다.
"나 수국 좋아한다고 한 적 없는데 자꾸 그러네. 혹시 옛날 여자친구가 좋아했던 거 아냐? 그 여자랑 나랑 헷갈린 거 아니야? 응?"
첫날부터 요청한 적도 없는 사진을 보내더니내가 답장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고지순하게 보내온다.
이러다 옛날처럼 나한테 수신 차단당할라.
10년도 전에 나는 임신 중에 미칠듯한 입덧(다들 나의 입덧에 혀를 내둘렀었다. 그만큼 요란했다.)으로 겨우 출근하며 살고 있을 때 '결혼 후 일주일 만에 국가직 공무원을 그만두시고'(이건 우려먹어도 우려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남편은 바람이라도 쏘이고 오겠다며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