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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16. 2023

소식좌 가족이 뷔페에 가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외식

2023. 7. 13.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제 금방 학교 가는데 어떻게 할까? 너희는 뭐 하고 싶어? 1번 어디 가까운데라도 간다, 2번 그냥 뷔페 가서 밥이나 먹고 온다."


남매는 2번 보기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뷔페'라는 단어만 듣고 바로 2번을 골랐다.

내 마음속으로는 1번을 간절히 바랐으나 그 남자에게 자식은 두 명이었고 안타깝게도 아내는 달랑 한 명뿐이었다.

2대 1로 내가 패했다.


"너희는 뷔페 가는 게 더 좋아? 여행이라도 갔다 오는 건 어때?"

아이들은 아빠가 하는 말 같은 건 들으려고도  안 했다, 물론.

"아빠, 우리 뷔페 가자. 언제 갈 거야? 어디로 갈 거야?"

마음은 벌써 미정의 뷔페 식탁에 앉은 것 같았다.

"난 휴양림이나 이런 데 가면 좋겠는데. 어디 조용하고 시원하데 없나?"

남편과 한 시간 가까이 급히 휴가 계획을 세워봤으나 내 의사는 깡그리 무시되고(솔직히  더운데 어디 나가고 싶지도 않긴 했다.) 방학 동안 가족 넷이 완전체로 집 앞에도 못 나가본 점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내린 특약 처방이었다.


"우리 각자 5천 원어치라도 먹을 수 있을까?"

"글쎄, 그래도 5천 원어치는 먹겠지."

"우리 집에서 누구 하나 많이 먹는 사람이 있어야지."

"먹을 수 있겠지."

남편과 나는 5천 원의 몇 배는 되는 1인당 뷔페 가격표를 보며 지레 걱정했다.

그러면 안 가면 될 것을.

가겠다고는 했지만 그 가격이면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정말 실컷 사서 겨우내 동굴 속에 저장했다가 먹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우리 가족은 해 낼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하지만 한창 음식 좋아할 나이인 초3, 초5 어린이들은 신났다.

아이들이 저리 좋아하는데 가격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일단 저지르자.


다음날, 아침 일찍 수영을 하고 온 아이들은 우리를 재촉했다.

"그냥 우리 출장 뷔페 부르면 안 돼? 더우니까 나가기 싫다."

나는 남편에게 얼토당토않고 말도 아니고 막걸리도 아닌 말을 다 했다.

"그래. 오늘은 엄마도 밥상 좀 안 차려 보자. 하루 쉬는 거야."

라며  뒷감당도 못할 소리까지 다 했다.

솔직히, 뷔페는 우리하고 안 맞다.

안 맞지만 그날 하루만큼은 어떻게 잘해봐야 했다.


"엄마, 나 배불러."

첫 번째 경로 이탈자가 발생했다.

나와 많은 것이 닮은, 특별히 식습관을 그대로 복제한 홀쭉이 아들이 말했다.

후라이드 치킨 한 조각을 먹고 두 번째 조각 귀퉁이를 뜯어먹다 내뱉은 말이었다.

먹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5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실은 나도 그 말이 하고 싶었다.

"어떡해, 엄마도 벌써 배불러."

생선가스 조각 하나를 막 흡입하고 난 뒤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안돼! 겨우 저 조각들 하나 먹자고 그 거금을 들이고 들어온 건 아니잖아?

소식좌들로만 똘똘 뭉친 우리 가족이 뷔페를 간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고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이미 그런 파국을 맞이할 것이란 것을 기원전 2,000년경에 알고 있었지만 설마 한 거리 그 조각 하나에 굴복해 버리다니...

나도 불안 불안했다.

난 한꺼번에 많이 먹지 못해서 슬픈 사람이다.

자주 먹는 편이라 하루 종일 야금야금, 가끔은 와구와구 먹어 치워 대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의 식성은 종잡을 수 없다.


스파게티 두 가닥, 조각난 버섯 두세 개, 떡볶이 떡 하나, 이렇게 종류별로 일단은 하나씩만 집어 온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음식을 담아 온 것이 아니라 먹다 남긴 음식이 담긴 것이라 착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저지르는 남편 덕에 접시 가득 두 개  이상씩 음식을 가져와서 다른 멤버들이  해치우지 못하면 나머지 몫이 내게 떨어진다. 단지 가족이 남긴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를 넘어 들여온 음식은 절대 남기지 않는다는 나만의 원칙 때문이다.

"제발 하나씩만 가져와. 먹고 싶으면 알아서 먹으라고 하고 무조건 많이 가져와서 남기지 말고. 잘 생각해서 가져와. 한 해에 우리나라 음식 쓰레기가 얼마나 나오는지나 알아? 절대 욕심부리지 마!"

음식과 관련해 화려한 전과를 가진 남편을 단단히 단속했지만 그가 내려놓은 접시는 내 기준에서 '수북했다.'

"다 못 먹을 것 같은데?(=남으면 또 내 차지되는 거야?= 나 먹을 건 내가 갖다 먹을 거야.=사고 좀 치지 마.)"

아니나 다를까, 반은 남았다.

또 내가 출동해야 한다.

나는 음식쓰레기는 최대한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그곳에서도 음식을 남기면 결국 쓰레기밖에 더 되랴 싶어 먹고 또 먹었다.


"냉면 먹을래? 어떤 거? 물냉?"

"내가 언제 물냉 먹는 거 봤어?"

"비냉! 알았어!"

불안불한했지만, 설마설마도 했다.

그 설마가 나를 잡았다.

"그냥 후식 정도로 조금만 가져왔어."

"이렇게 많이 가져오면 어떡해? 한두 젓가락만 먹으면 되는데."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쓸데없이 자상한 걸까?

어쩌면 나에게 어떤 복수라도 할 셈이었을까?

음식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또 먹었다.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 또 없습니다.


"뭐 더 먹을래? 뭐 갖다 줄까?"

"아니, 제발 그냥 있어. 내가 알아서 먹을게. 진작부터 배 불렀단 말이야."

한꺼번에 많이 먹지 못해 불리한 사람은 그 사람의 과잉친절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아이들도 몇 번 먹더니 둘이 놀고 있었다.

"엄마, 언제 집에 가? 나 배부른데."

아들이 재촉했다.

"역시 우린 페는 아니야. 집에 가자."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자리를 떴다.

그래도 나름 선방했다고 뿌듯해하며

"진짜 많이 먹었다."

서로를 대단해했다.


"엄마 진짜 많이 먹더라."

딸은 내가 그렇게 많이 먹는 모습을 처음 본다는 듯 몇 번이나 그 말을 했는지 모른다.

많이라기보다, 그냥 골고루 조금씩 맛을 봤다고나 할까, 아니지, 남편이 무조건 가져온 걸 뒤처리했다고 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밥을 안 먹었었네. 저녁은 간단히 된장국에 밥 먹자."

배부르게 먹었다고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다고 다들 한 마디씩 해놓고 내가 밥을 차리자 모두 한 그릇씩 비웠다.

"우리 그래도 각자 5천 원어치는 먹었겠지?"

"그랬겠지. 아마  '잘하면' 만 원어치 먹었을지도 몰라."

그래봤자 제 돈 내고 먹은 셈도 못된다.

"역시, 우린 페는 안돼. 다음엔 그냥 각자 좋아하는 음식 실컷 사서 몇 날 며칠 질리도록 먹는 게 낫겠어."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내가 뒷북을 쳤다.

"너희 엄마 그런 말 할 줄 알았다."

남편도 충분히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잠시 후, 나는 남편이 된장국에 밥 한 그릇을 다 잡수고 엄연히 아들 몫으로 담아놓은 밥그릇에서 밥을 두어 숟가락 푸는 범행현장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역시 집밥이 최고야. 엄마가 해 준 된장국이 제일 맛있어. 그치, 얘들아?이건 5만 원 받아도 되겠어!"

기승전집밥의 어느 여름날의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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