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Aug 01. 2023

결국, 집 나갔던 남편은, 나에게 돌아오는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코

2023. 7. 31.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냥 당신이 해 줘."

"싫어. 안 한다고 했잖아."

"그러지 말고."

"진짜 하기 싫다니까."

"이 사람이. 좀 해 주라니까!"

"그럼 확실히 증거를 남겨. 앞으로 이발할 때 잔소리 안 하겠다고 당장 각서 써!"


나이롱 이발사 주제에 튕기기는, 있는 대로 다 튕겼었다.

무면허 이발사의 갑질,

갑질하는 이 기분이라니.


"얼른 나 이발 좀 해 주라. 너무 많이 길었어."

또 3주가 지나자 남편이 요구했다.

"이젠 나가서 해. 난 안 할 거라고 분명히 저번에 말했잖아."

정말 나도 마음 단단히 먹고 단칼에 거절했다.

"됐어! 안 할 거면 말아!"

본인도 기분 상했다 이거지?

"진짜 앞으론 안 할 거니까 나한테 말하지 마!"

아무리 내가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라도 그렇지 그런 식의 대우를 받고는 정말이지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벌써 3년째, 남편의 이발을 도맡아 해왔다.

"머리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그럼 나가서 자르세요.

"너무 오래 걸린다. 빨리 좀 해 봐. 미용실에서는 10분도 안 걸리던데."

그럼 나가서 자르시라고요.

"양쪽이 길이가 다르잖아. 어떻게 머리를 이렇게 잘랐어?"

그러니까 나가서 자르라니까!

"갈수록 어째 더 못 자르는 것 같다."

몇 번을 말해? 정 그렇게 불만이면 나가시라고!

"정신 차리고 집중해서 좀 잘라.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 거야?"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제발 좀 나가라 나가, 그렇게 불만이면.


내가 집에서 이발을 해 준 이후로 딱 두 번 남편은 미용실에 갔다.

물론 당시 가정 불화가 심해져서 서로 꼴도 보기 싫어하던 앙금이 뼈에 사무쳐 말도 하기 싫어졌을 때의 일이다.

꼴도 보기 싫은 마당에 이발한다고 거실에서 얼쩡대는 모습을 어떻게 보나?

얼굴도 보기 싫은데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그 수백만가닥의 머리카락을 어떻게 자르나?

지난번엔 정말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이발할 때마다 잔소리하고 마음에 안 들어하면서 왜 굳이 나한테 잘라 달라고 하는지 이해도 안 됐지만,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걸핏하면 '자격증도 없다'는 말로 나의 최대 약점을 꼬투리 잡아 뭔가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었다.

"무면허인데 돈을 너무 많이 받아가는 거 아니야?"

이런 말로 나이롱 이발사의 비위를 건드렸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물론 실력이 많이 부족하긴 하다, 슬프게도) 그런 대우를 받아가면서 꾹 참고 그 머리를 만져야 한단 말인가?

그래, 결심했어!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워서 안 한다 내가!


"우리 집 근처에 8천 원짜리 미용실이 있더라. 대신 머리는 안 감겨 줘. 근데 괜찮은데? 어때? 한 번 봐봐. 괜찮지?"

"안 보고 싶어."

"그러지 말고 한번 봐주라니까."

"보기 싫다고!"

"딱 한 번 만."

"흥, 딱 8천 원어치만 잘랐구만!"

내가 다시는 집에서 이발을 안 해주겠다고 세게 나가자 남편도 보란 듯이 집을 뛰쳐나가 (거짓말 좀 보태서) 정말 5분 만에 다시 컴백했다.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가?

너무 놀라워서 나는 입이 다 벌어졌다.

그 빠른 이발 속도보다 정말 딱 8 천 원어치만 한 이발 솜씨에.


"왜? 별로야? 난 괜찮은데?"

"나보다 더 못 자른 것 같다. 어떻게 5분 만에 이발을 할 수가 있지?"

물론 능력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도 이발할 거 다 하고 시간이 남을 수도 있다.

나는 어떻게든지 꼬투리를 잡아버리고 말겠다는 못된 심보로 얼굴도 모르는 그 미용사를 비방했다.

아니, 질투였을까?

"자세히 봐봐. 난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은데?"

"뒤를 안 봐서 그렇겠지. 아무튼 딱 8 천 원어치야."

"그렇게 별로야?"

"응. 난 별로야. 하지만 내 머리는 아니니까 난 상관없어."

"그래도 8천 원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당신은 자격증도 없는데 두 배로 받잖아."

"난 시도 때도 없이 해 주잖아. 주말 아침 8시에도 하고 저녁에 밤 10시 넘어서도 하고. 집까지 출장 이발 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완전 거저인 줄도 모르고 그동안 호강에 겨워서 말이야."

"하긴 미용실 가서 기다리는 것도 싫은데 그런 건 없으니까 그건 진짜 좋다. 시간 낭비도 안 하고."

"당연하지. 나한테 2만 원 줘도 모자라지 그런 거 생각하면."

다시 관계 회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나만 또 혼자 생각했다.)


"그냥 당신이 계속 이발해 줘야겠다. 사람들이 이번에 머리 이상하게 잘랐대. 어디서 잘랐냐고 뭐라고 하더라. 이상하다고."

자그마치 8천 원어치 이발을 하고 첫 출근을 한 날 남편이 내게 애원하다시피 했다.(고 또 나 혼자만 생각했다.)

다시는 남편 이발을 해주지 않겠다고 선포한 후, 이러다가 정말 단골을 잃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직장 사람들 덕분에 살았다.

구관이 명관이고 때론 나이롱 미용사도 자격증 있는 미용사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고 항상 나는 생각해 온 사람이다.)

"나 안 할 거라고 했잖아. 거기 좋다며? 잘한다며? 잘 맞는 거 같다며? 계속 거기 다니시지 뭐 하러 나한테 해달라고 그래? 다시는 나한테 부탁 안 할 것처럼 그러시더니? 나 바쁜 사람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또 이번에 이발비를 받으면 어디에 요긴하게 쓸지 가위를 집어 들기도 전에 설레기 시작했다.



이전 12화 충동적인, 사위의 미라클 모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