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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3. 2023

출근길에 전어를 스무 마리 사고

다짜고짜 전어를 사고(1부)

2023. 9. 1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니, 임자야, 이게 다 뭐냐?"

"전어예요."

"뭐? 전어라고?"

"아침에 출근길에 샀어요."

"오다가 샀다고?"

"네."

"갑자기 웬 전어를 다 샀어?"


이러면서 그 하얀 아이스박스를 그늘진 곳에,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상온에 보관하기 위해 챙기던 분이 계셨다.

저는 그냥, 전어가 나왔길래 전어를 사 왔을 뿐인데, 왜 전어를 사 왔냐고 하시면, 단지 전어를 팔고 있어서 전어를 산 것뿐인데...


"네가 전어를 다 살 줄 아냐?"

"요즘 전어철이잖아요."

"별 희한한 애네. 전어를 다 사 오고."

나는 졸지에 출근길에, '장애인 업무, 노인 업무, 쓰레기봉투 업무, 방역업무'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생선을 구입해 온 희한하고 이상하고 뜬금없고 황당한 신규자가 되었다.

그날 아침, 아마 9월 중순쯤이었을 것이다.

출근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에 가려다가, 시간이 좀 남아서(사실은 언제 한번 사야겠다고 굳게 다짐 먹은 일이 있긴 했다.)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나는 그것을 '겟'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요새 전어철이라 싸게 많이 나왔을 것이다.(=언제 한 번 전어 좀 사와라.)"

그 맘 때면 아빠가 좋아하시는 전어를 엄마는 자주 사 오셨다.

그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도 엄마에게서 그 일급비밀을 흘려듣고 나는 마침내 어떤 일을 실행하기에 이르렀다.

옛날에는 그곳도 5일장이 서던 곳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특정 생선이 많이 잡힐 때면 반짝 도깨비 시장처럼 면 소재지 상가에서 너도나도 가게 앞에 제철 생선들을 내놓고 팔기도 했었다.

엄마를 따라다니며 각종 생선들을 샀던 전과가 좀 있던 나는 기원전 2,000경의 기억을 더듬어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당시 밥은 면사무소에서 매일 했고, 직원들이 각자 반찬 한 두 가지를 챙겨 와 점심을 함께 먹고 있었다.

거의 여직원들이었고 같은 복지계에 근무하는 미혼의 남자 주사님이 한 분 계셨고 간혹 마땅히 점심 먹으러 나갈 무리에 합류하지 못한 직원이나 밖에 나가서 밥 먹기 싫은 직원이 일일 점심 멤버로 합류하기도 했다.

여직원 중에서 유일한 미혼녀인 데다가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던 나는 나름 잔머리라는 것을 굴리게 되었다.

나는 생선을 아주 좋아한다.

고기는 거의 안 먹었지만 생선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으므로 좋아하는 반찬 원 없이 먹어나 보자(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착각이었고) 이런 마음으로 전어를 스무 마리 사갔던 것이다. 그것도 단 돈 1만 원에 말이다.

인생은 육십부터, 전어는 스무 마리부터다.

어쩜, 공평하기도 해라.

고정 멤버가 5명이었으니 1인당 4마리씩 나누면 이보다 더 공정할 수가 없었다.(고 나만 생각했다.)

아무리 계산적이지 않은 나였지만, 수학에 약한 나였지만 그 정도 계산쯤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점심시간에 생선을 먹은 기억이 없기도 했다.

그 생선을 가져가서 어떻게 요리하겠다는 그런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 물론.

다소 무모했던 메뉴 선정이었다.(고 1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일단 사는 것에만 의의를 뒀지 그다음은 아무 생각도 없었다.


같이 점심을 드시던 다른 직원들이 뜨악해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는, 맹세코 그 전어 스무 마리를 특정 직원에게 기증하겠다거나 한 사람에게만 몰아주겠다거나 하는 그런 마음은 없었다.

다짜고짜 어쩌자고 면사무소로 전어를 사들고 왔냐는 눈빛의 직원들의 얼굴을 보자 내가 생각해도 내 행동이 황당했다.

그리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제 저 생선들을 어쩐담?


(내일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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