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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14. 2023

6살 딸의 비혼 선언

어차피 선택은 너의 몫이니까

2023. 10. 13.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난 나중에 크면 결혼 안 할래."

"응? 갑자기 왜?"

"결혼하면 엄마처럼 일만 하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는 회사도 다니고 집에서도 일하잖아. 나도 결혼하면 엄마처럼 일만 할 거 아니야?"


고작 6살이, 벌써부터 비혼을 선언한다고?

16살도 아니고, 26살도 아니고, 더욱이 36살도 아닌데?


그날, 나는 방 청소를 하고 있었고, 딸이 이를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딸의 말에 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깟 방 청소가 대수가 아니었다 그 순간에는.

"합격아, 왜 그렇게 생각을 했어?"

"엄마 보면 맨날 일만 하고 있잖아."

"네가 보기엔 엄마가 일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응."

"그래서 결혼을 안 하고 싶은 거야?"

"결혼하면 일만 할 거니까."

"아니야. 결혼한다고 일만 하고 사는 건 아니야. 중요한 건 네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미리 상대방 하고 얘기를 잘해서 서로 이해하고 합의해서 많은 일들을 같이 상의하고 결정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거, 그런 거라고 생각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굉장히 중요하고. 지금 아빠는 주말인데 오늘도 출근을 해서 엄마가 청소를 하고 있는 거고. 결혼을 한다고 해서 여자만 모든 일을 다 하는 건 아니야. 그건 집마다 사정이 다 달라. 물론 직장 다니면서 집안일까지 거의 다 도맡아서 하는 여자도 있지.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분명히 있을 거야. 남자가 직장생활도 하면서 여자보다 더 많은 집안일을 하는 경우 말이야.  또 같이 직장 생활하고 부부가 집안일도, 아이 키우는 일도 같이 해 나가는 경우도 있을 거고. 그리고 주말에 엄마가 아빠보다는 더 자주 출근 하지? 그건 엄마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같은 공무원이지만 어디서 일하느냐에 따라 다르거든. 직장인은 주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쉴 수만은 없어. 일이 있으면 나가서 일해야 해. 특히 엄마는 축제도 많고 행사도 많고 비상근무도 많아. 그래서 그런 거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엄마가 일만 하면서 사는 건 아니야. 네가 자세히 몰라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니."

내가 지금 6살짜리 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적절한가 싶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그보다 더 어렸을 때도 우리가 겪는 많은 일들에 대해 때때로 이야기 들려주곤 했었다. 당시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 살아가는 이야기 그런 것들 말이다.

남들 보기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들, 그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하기엔 적당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고 (남들 입장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온갖 얘기들을 말이다.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얘기를 해주다 보면 아이들이 크면서 스스로 듣고 판단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지는 않게 말이다.


"엄마가 살아보니까 결혼이라는 건 말이야. 정말 신중히 해야 할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결혼할 때 그냥 휩쓸려 결혼한 느낌이 많이 있어. 그동안 엄마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결국에는 결혼을 했지. 엄마 생각에는 말이지 결혼을 하려면 결혼식 준비보다 '결혼 준비'하는 일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만큼 살아 보니까 그렇더라. 얼마나 큰 집을 구하고 사는지, 예물을 얼마나 주고받을 건지, 살림살이는 어떤 것들로 준비를 할 건지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거였어. 결혼할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돼야 하고 같이 살기 위해서는 나도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하고 또 결혼을 하면 상대방 부모님이나 그 사람의 가족들이 갑자기 생기는 거잖아.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건지 결혼할 사람하고 충분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특히 자식을 낳는 일 말인데, 그걸 가족계획이라고 하거든. 아이를 언제쯤 낳고 어떻게 키울 건지 어떤 마음으로 기를 건지 이런 것들도 상대방 하고 충분히 대화를 하고 합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

"응."

"네가 커 가면서 하나씩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그러니까 벌써부터 결혼을 반드시 해야겠다, 안 해야겠다고 단정 짓는 것보다는 네가 살면서 신중히 결정해도 늦지 않아. 또 네 마음이 변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치? 그리고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 그런 마음보다는 이 사람도 만나 보고 저 사람도 만나보고 그러면 좋겠어. 그냥 보기만 했을 때는 좋아 보이는 사람도 막상 사귀고 보면 생각했던 거랑 완전히 다를 수가 있거든. 그리고 결혼하면 또 다르고 말이야. "

"응."


딸이 6살 때부터 12살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저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 가정을 꾸리는 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일, 어쩌면 세상이 돌아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일, 그 어마어마한 일에 대해 난 틈만 나면 딸과 아들에게 이야기한다.

"도대체 어린애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라면서 발끈할 딸의 아빠가 옆에 있든 없든 말이다.

남편이 발끈할 때마다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의 이야기는 줄기차게 밀고 나간다.

아빠가 해주지 않으니 이 엄마라도 해줘야겠다 싶었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 중에 그런 말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담?

아빠는 안 해주니까, 엄마 경험상, 엄마가 겪어보니 이러저러하더라고 슬쩍 알려줄 수는 있는 일 아닌가?

친정 엄마도 나에게 옛날에( 특히 결혼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언니라도 있어서 말해 줬더라면, 아니지 남이라도 흘리듯 하는 말이라도 몇 마디쯤 내게 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있는 나만의 미련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딸이 이런 말을 하는 엄마의 의도를 어느 정도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런 말을 하는 엄마의 마음조차 딸이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도 안 해주는 것보다는 한마디라도 해 주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지레 노파심에 자꾸만 하게 된다.

물론 아이들은 내가 하는 백 마디 천 마디의 말보다 평소에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것으로 느끼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라고 감히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마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엄마가 먼저 겪어 보니 그렇더라.

너는 그저 엄마 말을 들어보기라도 해 보렴.

어차피 판단은 네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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