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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pr 21. 2023

첫아기, 딸의 탄생을 기념하는 방법

가진 것 없는 신혼 부부가 할 수 있는 일

2023. 4. 3. 사과나무에 돋은 새 순

< 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 합격이 태어나는 해 기념으로 나무를 하나 심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좋은 생각이네."

"어떤 게 좋을까?"

"글쎄..."


간간이 꽃샘추위가 느닷없이 들이닥치긴 했지만 나른한 봄이 오고 있었고 시골 5일장에 나가 보면 갖가지 묘목들이 장터 도로마다 즐비해있었다.

2012년 4월의 어느 봄날, 하루는 내가 남편에게 제안을 했다.

곧 태어날 아기에게 뭔가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다고,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우리만이 줄 수 있는 그런 것, 그러니까 세상에 딱 하나뿐인 내 딸만을 위한 그런 것을 말이다.


딸의 출산 예정일은 5월이었으나 조산기가 있다는 의사의 말에 그해 지방 선거라는 머리 아프고도 큰일을 다 치른 후 나는 일찌감치 출산 휴가를 받았다.

한 달 먼저 출산 휴가에 들어가니 출산 준비가 여유로웠다.

어지간한 아기 용품은 물려받은 게 많았고 부른 배를 보고 있노라면  이제 내가 할 일이라고는 그저 아기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의 첫아기를 맞이하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뭐가 좋을까?

내가 엄마로서, 우리가 부모로서 첫아기에게 어떤 것을 주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소위 탄생 기념수라는 것 말이다.

요즘에는(과거부터 그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원을 선발해서 지자체에서 기념수를 심어줄 만큼, 개인적으로도 많이들 심는 흔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때만 해도 내 주위에 아기를 낳을 때 기념으로 나무를 심는다는 지인은  한 명도 없었다.

어쩜 내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해냈는지 스스로가 대견했다.


"나무를 심는 게 어때? 합격이 태어나는 기념으로 말이야. 그 나무가 자라는 걸 합격이도 같이 보는 거지. 열매를 맺는 나무면 더 좋을 것 같아. 합격이가 자라서 직접 따보기도 하고. 어때, 내 생각이?"

"나무? 그거 좋네."

나 혼자만 아기를 만날 생각에 들떠 분주하게 보였고 남편은 왠지 시큰둥한 게 매사에 비협조적인 것 같았다.

"근데 무슨 나무가 좋을까? 좀 알아봤어?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야? 뭘 심으면 좋을지 생각이나 해 봤어?"

"난 잘 모르겠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생각을 좀 해보란 말이야. 아마 잘 자라면 평생 기를 수도 있을 텐데 협조 좀 해."

"알았어."

일단 기념 선물의 종류가 나무로 확정 지어지자 나는 다급해졌다.

하루라도 빨리 나무를 심고 어서 열매가 열려(아직 어떤 것으로 심을지 정하지도 않은 마당에, 더군다나 아직 그 묘목을 심지도 않은 마당에) 정체도 모를 그 새콤달콤한 것을 어서 한 입 베어 물고 싶었다.


모르겠으면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아빠, 우리 나무 하나 심을까 하는데 뭐가 좋을까? 아기 태어나면 따 먹을 수도 있게 열매가 열리는 걸로 하고 싶은데."

"나무를 심는다고? 어디다가? 심을 땅은 있냐?"

아빠가 갑자기 정색하시며 은근히 배짱을 부리셨다.

저런 게 가진 자의 여유란 말인가.땅이라고는 손바닥만 한 면적 하나도 가진 게 없는, 1호봉을 막 넘긴 청렴하기만 한 신혼의 부부 공무원은 뜨끔했다.

땅만 없나, 내 집도 없고, 내 차도 없고... 없는 것 투성이지 뭐.


"마당 앞에 텃밭 있잖아. 거기다 좀 심읍시다. 우리가 심을게."

아파트 실내 중에서 가장 넓은 게 거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곳을 흙으로 덮고 나무를 심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아쉬운 대로(아니, 현실적으로) 친정 부모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임대차 계약서라도 작성해서 꼬박꼬박 임대료를 지불하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 같은 것은 결코 하지 않았다.

자고로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었으므로, 특히나 자신 있게 약속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으므로.

빈말이라도 땅을 좀 빌려주시라고도 말씀드리지 않았다.

얼렁뚱땅 부모님의 텃밭에 얹혀가기로 했다.

아빠도 그 앙큼한 수법을 모르실 리가 없다.


"너희들이 나무를 심는다고?"

"응. 그냥 심으면 되겠지 그게 뭐 어려운가?"

"그게 막 심으면 된다냐?"

"그냥 심으면 되지 뭐 있나?"

"어이구,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나무를 다 심는다고?"

이런 대책 없는 애들을 봤나, 하는 표정으로 아빠는 어이없어하셨다.

끝까지 나를, 아니 하나뿐인 사위를 포함해 우리 둘을 세트로 못 미더워하셨다.

평소의 우리의 태도가 지극히 반영된 당연한 결과다.


"그나저나 무슨 나무를 심는다고 그러냐? 생각해 둔 거라도 있냐?"

"그러게. 뭘 심으면 잘 자랄까?"

"사과나무나 심든지."

"그거 괜찮네. 그럼 사과나무를 살까?"

그리하여 딸의 탄생 기념수는 사과나무로 낙찰됐다.

사과나무라, 상상만으로도 상콤하다.

뱃속의 합격이도 그 말을 듣고 마음에 들었는지 발길질도 더 힘차게 하는 것 같았다.

"사과나무라고? 엄마, 합격! 합격이야."

아기가 대꾸라도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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