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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1. 2023

그리하여, 사과나무는 원플러스원이 되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부부의 자세

2023. 4. 23. 사과꽃 피고 지고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것으로 할끄나?"

"그게 괜찮은 것 같수? 그럼 그럽시다."

아빠는 묘목 장수 아저씨께 그 나무가 진짜 좋은 나무인지, 혹시라도 부실한 나무는 아닌지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져 묻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물론.

옆에서 내가 듣기에도 너무 까다로운 게 아닌가 싶게 말이다.

아빠는, 좀, 그런 분이시다.


"아빠, 근데 하나만 심어도 될까? 혹시 모르니까 두 그루 살까?"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면 사 먹을 필요도 없고 원 없이 먹을 수 있으니(물론 어디까지나 나만의 착각 혹은 바람이지만 말이다.) 이왕이면 두 그루를 사는 게 어떻겠냐고, 만에 하나 한 그루가 잘못되더라도 비상용으로 한 그루를 더 심으면  안심이라며 내가 즉석에서 제안을 했다.

"그럼 그럴끄나?"

"그럽시다. 두 그루 심으면 사과도 더 많이 따고 좋지. 여기저기 나눠 먹을 수도 있고."

두 그루를 심다고 해서 반드시 두 배로 사과를 수확하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나눠먹자'는 그 말 한마디에 아빠는 마음이 동하신 게 틀림없다. 아빠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보시의 화신' 정도라고나 할까?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막 퍼주는' 스타일이시다. 사과나무의 임자는 우리가 되겠지만 거기서 열린 사과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과도 나눠 먹을 생각으로 마침내 두 그루로 낙찰을 했다.

"다른 것도 더 살 거 있으시면 사시라고 해."

묘목의 '묘'자도 모르는 하나뿐인 아빠의 사위가 옆에서 나를 부추겼다.

"아빠, 우리 다른 나무도 살까? 집에 혹시 필요한 나무 없소?"

나는 아빠에게 선심을 쓰듯 말했다.

"이거나 잘 키워라.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사긴 뭐를 더 산다고 그러냐?"

아빠는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신다.

아빠 말씀 하나도 그른 것 없다.

의욕만 앞서고 행동은 굼뜨고 실속 없으며, 묘목에 대한 지식은 더욱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바로 우리 부부다, 아빠 눈에는.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사과나무가 심어질 곳은 내 텃밭도 아니고 엄연히 아빠 소유의 땅이었으므로 아무리 내가 의욕이 넘치고 상상 속에서만 과수원을 가꿔도 땅 주인이 마다하면 그만인 거다. 손바닥 만한 내 땅 하나도 없으면서 사고 싶은 나무들은 많았다. 유실수는 뭐든지 한 그루씩 사고 싶었으나 땅 주인이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하셨으므로 결국 무산됐다.

"이것들이 잘 클란가 모르겄다. 우선 이거 두 그루만 사자."

어떤 농작물이든 튼튼하게 잘 기르시는 아빠 답지 않게 약한 모습이셨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외손녀 탄생을 기념하는 것인데 이왕 심은 거 잘 자라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있으셨던가 보다. 게다가 사과나무씩이나 되지 않은가.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간 뼈대 같은 그 두 그루의 사과나무를 아빠는 아직 만나지도 못한 손녀 안아보듯 차 안에서도 조심스레 안고 집까지 가셨다.

정작 딸의 탄생기념수(樹)에 오만가지 의미를 부여한 우리 부부는 차라리 무덤덤했다.


아빠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딸 내외가 '말로만'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란 것을, 사후 관리 같은 건 안중에도 없으리란 것을, 심고 가꾸고 병충해에 맞서 싸울 사람은 결국에는 아빠가 되리란 것을 말이다.

그 모든 게 당신의 몫이 될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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