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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05. 2023

어린이도 어버이날이 부담스럽다.

피차 부담스러운 5월

2021년 5월 3일의 숙제(?)

< 사진 임자 = 글임자 >


< 어버이날을 대하는 딸(초5)의 자세 >

"근데 엄마는 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편지 안 써?"

"... 응? "

"어버이날이잖아. 우리는 엄마 아빠한테 편지 쓰는데 왜 엄마랑 아빠는 안 써?"

"엄마는 편지는 안 쓰더라도 평소에 (물론 내 기준에서만) 잘해드리는 편이잖아."

"아휴, 우리도 어버이날 되면 힘들다고요!"

부모가 된 이후로는 어린이날만 되면 뭔지 모를 의무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상대적으로 어버이날은 그냥저냥 편하게 넘어가기 일쑤였다.


"어린이날이라고 꼭 선물을 사 줘야 돼?"

얼마 전에 남편이 어린이날 선물 타령을 하는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그거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다고 그래? 이제 합격이는 내년까지 기회가 딱 두 번 밖에 안 남았잖아. 설마 중학교 가서도 어린이날에 선물 달라고 하겠어?"

이제 이 일을 몇 년만 지나면 안 해도 되겠거니 생각하고 나는 이미 홀가분해졌는데 뜻밖에도 남편이 제동을 걸길래, 내가 곧 끝이 보이니 몇 해만 더 참아보자고 했다. 철없는 아이들이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마흔이 넘고도 어린이날 선물 타령을 하는 나도 있는데, 속으로 잠깐 뜨끔했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긴 하네."

수긍이 굉장히 빠른 그 남자는 다시 평정을 되찾은듯했다.

"그러니까 이왕 선물 줄 거면 그냥 딴 소리 하지 말고 기분 좋게 줘."

나는 아이들에게 말로만 인심을 다 썼다.


"우리도 어버이날 되면 신경 쓰여."

느닷없이 딸이 자녀 입장에서 어버이날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날인지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어버이날만 되면 부모님께 편지 쓰라고 하고. 나 편지 쓰기 싫은데."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매년 아기자기하게 편지지를 꾸며서 알록달록 색색의 사인펜으로 글씨를 쓰고 '사랑한다.'라는 그 말을 수도 없이 남발하고 '부모님의 은혜는 평생을 갚아도 다 갚지 못한다.'라는 산골 훈장님의 훈화 말씀 같은 기특한 말도 편지 내용에 가득 찼었다는 것을, 기억력이 급격히 쇠퇴해가고 있는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럼 그동안 억지로 편지 쓴 거였어?"

"그건 아니지만, 편지는 별로야."


나도 잘 안다. 학교에서 으레 행사적으로 매년 그 일을 치른다는 것을.

그래도, 뻔히 시켜서 하는 일인 줄을 잘 알면서도 두 아이들이 손바닥만 한 종이에 같은 말을 반복하며 써 내려간 그 마음을 기특해하며 뿌듯해하며 울컥해지기까지 했었는데...

하교하자마자 내게 달려와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며

"짜잔~ 엄마 이거 받아요! 엄마 선물이야. "

하면서 몇십 층짜리 건물 등기부등본이라도 되는 듯 자랑스럽게 건네줄 때는 내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는데, 그게 마지못해 한 행동(으로 강하게 의심된다.)이었다니. 차라리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 편지란 것을 딸이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써 온 날 나는 얼마나 감격에 겨워하며 내 딸을 꼭 끌어안아주었던가. 물론 편지라기보다 받아쓰기에 더 가까웠으리라.

선생님이 불러주신 대로 기계적으로 받아 적은 것에 지나지 않았을 테지만, 꾹꾹 연필로 눌러쓴 그 사랑을 나는 동네방네 다 자랑하고 다녔었지. 사무실에 출근해 직원들에게(그것도 아직 결혼도 안 한 처자들에게) 팔불출처럼 자랑하며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던 색종이 카네이션에서 향기라도 뿜어내는 듯 코를 박곤 하지 않았더냐. 친정 부모님께 들고 가 딸로 하여금 또 얼마나 마르고 닳도록 그 자랑스러운 것을 읽고 또 읽게 했냔 말이다.

7살 때는 무려 큐빅씩이나 붙인, 그 위화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한 편지를 받고 딸의 미적 감각이 남다르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8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쓴 편지에는 자그마치 사진까지 붙여 왔었잖니.

작년엔 또 어땠는고?


"엄마랑 아빠도 우리처럼 부모님께 편지 써야지 왜 안 써?!"

딸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왜 자식이 돼서 부모님께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편지조차 쓰지 않는 것이냐'며 따져 물었다.

합격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하고 싶다.

내가 너한테까지 잔소리를 들어야 되겠니?

엄마가 애들도 아니고 꼭 의무감에 편지를 써야 할 필요는 없잖아, 편지는 안 써도 다른 많은 일들을 하고 마음을 써 주고 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지난번엔

"엄마가 너희 어린이들을 낳았으니 어린이날에 엄마도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어!"

라고 말했다가

"그럼 엄마를 낳은 외할머니한테도 엄마가 먼저 선물을 줘야지!"

라며 반격을 당했던 내가 아니던가.

결코 만만하지 않은 아이야, 생각할수록.

내가 낳았지만 보통은 아니야, 아무튼, 보면 볼수록.


그러면서 또 은근히 기대를 한다.

다음 주 월요일이 어버이날이니까 또 학교에서 숙제(?) 하나를 해 오겠지?

이번엔 다른 때보다도 더 날카롭게 분석하리라.

단지 의무감에 마지못해 편지를 썼는가 아니면 진심을 담아 정성을 들여 썼는가를 따질 것이야.

딸은 이번엔 엄마의 예리한 눈길을 피할 수 없으리, 결코!

그러나,

이마저도 어째 올핸 생략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예전 같으면 진작에 들고 왔어야 맞다.

항상 어버이날이 닥치기 며칠 전에 후딱 그 일을 해치워버리곤 했으니까.

어쨌거나 편지 한 장이라도 들고 와주기만 한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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