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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30. 2023

외숙모 보고 오랑캐라니?

손  여사, 미안...

2023. 7. 25. 이것은 '닭의장풀'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외숙모가 오랑캐였어?"

오랑캐라니, 12살 딸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신성한 집안에서 오랑캐가 다 무어란 말인가.

"엄마가 그랬잖아, 외숙모는 오랑캐라고."

얘가 얘가 생사람을 잡네, 내가 언제 오랑캐라고 그랬다고 그래?


"엄마, 엄마는 왜 외숙모한테 새언니라고 해? 그럼 헌 언니도 있어?"

누가 내 딸 아니랄까 봐.

"엄마한테 오빠가 두 명, 남동생이 한 명 있지? 너희한텐 외삼촌이 총 3명 있잖아.

엄마의 남자 형제랑 결혼한 여자는 엄마 입장에서, 특히 엄마의 오빠랑 결혼한 여자를 새언니라고 하는 거야."

"왜 언니라고 해?"

"그게 그렇게 부르는 거야. 우리가 어떤 사물을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것처럼 결혼을 하고 새로 생긴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다 있거든. 너희 외삼촌이랑 결혼한 사람은 너희한테는 외숙모가 되고 엄마한테는 새언니가 되는 거지. 외상촌 두 명은 엄마 손위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언니가 생긴 셈이라고 생각하면 돼. 근데 친언니는 아니니까 그래서 새언니라고 하는 거 아닐까? 가짜 언니보다는 낫잖아?"

"그래? 그런 거였어?"

"응, 그리고 엄마의 오빠랑 결혼한 여자는 아무리 엄마보다 나이가 어려도 새언니라고 하지 새 동생이라고는 안 해. 큰 외숙모는 엄마보다 나이가 많지만 둘째 외숙모는 엄마보다 나이가 어리잖아. 그래도 엄마가 새언니라고 불러."

딸이 더 많은 질문을 하기 전에, 딸 입장에서 충분히 할 법한 질문에 내가 선수 쳐서 미리 다 공개발행해 버렸다.

"신기하네."

"그렇지? 좀 복잡하기도 하고. 너도 전에 학교에서 촌수 이런 거 배웠잖아."

"응, 옛날에 배웠지. 근데 너무 복잡해."

"요즘은 친척들하고도 왕래도 별로 없이 사는 집이 많으니까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아무튼 호칭은 알아두면 쓸모 있어. 잘 모르면 실수도 할 수 있는 법이거든. 알아 둘 필요가 있으니까 학교에서도 배우는 거고."

"너무 복잡해. 뭐가 뭔지 모르겠어."


"새언니를 '올케'라고도 해. 혹시 그런 말은 안 들어 봤어?"

"난 안 들어봤는데?"

"그냥 그런 말이 있다고만 알고 있어. 결혼을 해야 생기는 거니까."

아마 나의 그 '올케'라는 말이 화근이었을 것이다.

오랑캐를 알기엔 아직은 어린 열두 살 소녀가 아니던가.

아직은 그 실체를 몰라도 되겠지.

딸은 전에 내가 알려 준 '올케'라는 생소한 단어를 떠올리다가 그만 새언니를 오랑캐라고 둔갑시켜 버린 것이리라.

올케와 오랑캐 사이, 묘하게 끌린다.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새언니가 오랑캐 같단 말은 절대 아니다.


"아, 올케를 네가 착각했구나. 오랑캐가 아니라 올케야 올케. 듣고 보니 헷갈릴 만도 하다, 네 입장에서는. 올케랑 오랑캐가 발음이 좀 비슷한 것도 같네. 근데 오랑캐는 너무 멀리 갔다."

"내가 헷갈렸어, 엄마."

"발음이 조금 비슷한 것도 같은데 아무튼 한글은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잖아. 자음 하나 모음 하나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단어가 되고. 외국인이 보기엔 비슷하게 생긴 글자지만 서로 전혀 상관없는 그런 뜻이 되고. 그치?"

"아휴, 한글은 복잡해. 그래도 우리 한글을 세계 사람들이 다 쓰면 좋겠다. 그러면 영어 공부 안 해도 되잖아."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아무튼 말이란 건 단어 선택에 신중해야 돼. 하마터면 외숙모가 오랑캐 될 뻔했네. 그치? 이 사실을 외숙모가 알면 뭐라고 할까?"

"글쎄?"


"엄마가 옛날에 봤던 시 중에 이용악 시인의 오랑캐꽃이란 시가 있어. 그 시가 생각난다 네 얘길 들으니까. 오랑캐꽃은 제비꽃이라고도 한대. 옛날에 그 꽃이 필 때쯤엔  양식이 다 떨어져 가는데 그때 오랑캐가 쳐들어 왔나 봐. 그래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도 하고 모양이 오랑캐 헤어 스타일을  닮아서 그렇다는 얘기가 있어. 제비꽃은 예쁘기만 하던데 엄만 고등학생 때 맨 처음에 그 시를 읽고 참 안 어울린다는 생각 많이 했었어."

"엄마, 진짜 신기하다."

갑자기 올케에서 시작해 고등학교 문학소녀 시절 소환까지 해버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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