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ul 25. 2023

기상청 '때문에' 딸이 울었다

빗나간 기상예측이 선량한 가정에 미치는 영향

2023. 7. 22.  일기예보 적중한 날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일기예보가 틀릴 수도 있잖아, 엄마."

"그래. 틀릴 수도 있지만 지금 여기선 그걸 따지면 안 되지."

"비가 안 온다고 해도 비가 올 수도 있잖아."

"물론 그럴 수는 있지만 이 문제에서는 그것까지 생각하면 안 된다니까."

"일기예보가 맞지도 않는데 어떻게 비가 올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어?"

"그래. 네 말도 맞아. 실생활에선 그런 일이 있지만 문제를 풀 때는 문제에만 집중을 해야 한다니까. 현실하고 연관 짓지 말고."

"아무튼 비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잖아."

"자꾸 그렇게 따지면 문제 못 풀어."


이게 다 기상청 때문이다.(고 원망하고 싶다.)

평소에 불신을 가득 심어 전 결과다.

기상청이 어쩌다가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의 수학 가능성 문제의 뿌리까지 뒤흔들어 놓게 되었나.


"엄마. 꼭 비가 안 온다는 보장은 없잖아?"

"그렇긴 한데, 여기에선 문제만 보고 따지는 거야. 자꾸 그렇게 장난치지 말고, 문제를 풀 땐 문제에만 국한해서 거기에만 생각해야지. 왜 자꾸 기상청  얘기를 해?"

딸의 수학 문제집을 채점하다가 점점 언성이 높아졌고 딸은 기어이 울음을 보였다.

물론 딸도 틀린 말은 안 했다.

그동안 체험학습을 가려고 날을 잡아 놓고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 예보에 그 날짜가 뒤로 밀려났는데 정작 애초에 가기로 한 그날에 비는 오지 않았고 그동안 이런저런 행사 때 일기 예보가 빗나가자 딸은 기상청에 대한 불신을 최고조로 키워왔다.

그러니까,

사건의 발단은 자꾸 틀리기만 하는 일기 예보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고 나만 주장한다.)

처음엔 나도 딸의 의견에 수긍했다.

그런데 자꾸 딸이 장난식으로 대꾸하자 화가 난 것이다. 사실 화 낼 일도 아닌데 말이다.

너무 오냐오냐 길렀나?

쓸데없는 권위 따위는 아이들 앞에서 내세우지 않으려고, 가급적이면 편안한 분위기의 가정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한 우리 부부다. 하지만 가끔 그런 관대함으로 인해 버릇없는 아이로 자랄까 봐 염려되는 순간들도 물론 있다.

이번에 그랬다.

처음에 내가 딸의 장난을 조금 받아 주니까 딸은 한없이 엄마랑 농담 따먹기를 하려고 했다.

"말 좀 좋게 하지. 엄마는 왜 말을 그렇게 할까?"

남편까지 출동했다.

"내가 처음엔 좋게 잘 말했는데 자꾸 문제에 집중을 안 하고 기상청 얘기만 하잖아. 지금 가능성 얘기를 하는데 문제만 생각하라고 해도 계속 일기예보가 틀릴 수도 있다고 그 얘기만 하니까 그렇지."

나도 처음엔 좋게 좋게 얘기했다고.

"맞아, 아빠. 엄마가 처음엔 좋게 얘기했어."

아들이 나서서 나를 옹호해 줬다.

4인 가족 모두 적절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집은.


"합격아, 엄마가 화낸 건 미안해. 하지만 문제를 풀 때는 그 문제에만 집중하고 다른 건 생각하지 말아야 돼. 네 말도 맞긴 하지만 지금은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거잖아. 주어진 상황에서 보기 그 자료만 보고 비가 올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라는 거잖아. 평소 우리나라 기상청이 얼마나 날씨정확히 예보했는지 여기서 생각할 것도 없어. 딱 그 문제 상황만 집중해야 하는 거야. 자꾸 이것 생각하고 저것 생각하면 아무 문제도 못 풀어. 알겠지?"

결국 나는 딸에게 화를 낸 점에 대해 사과를 했고 딸도 받아줬다.


기상청아, 예보 좀 잘해주라 제발.

어린이들도 불신한다.

불미스러운 사건은 이내 잊고 딸은 또 일기예보 타령을 시작했다.

"엄마, 근데 요즘은 진짜 일기예보가 딱 맞네. 비 온다더니 정말 비가 온다. 그치? 요즘은 좀 적중하는 것 같네."

잃었던 신뢰를 이제 회복할 수 있으려나?

장마 기간이니 비 온다는 예상이 빗나가기가 더 어려울 것도 같긴 하다.




이전 13화 외숙모 보고 오랑캐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