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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26. 2023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생각한다.

다만, 그 어리석음에 대하여

2023. 5. 2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수행자가 수행을 함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세 가지 독이 있으니,

욕심, 분노, 어리석음, 이 세 가지라고 한다.

나는 모든 번뇌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라한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그런 마음을 내는 것부터 어쩌면 탐욕심의 시작일지도 모르지만, 다만 최소한 어리석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나는 도를 닦는 수행자도 아니요, 신실한 신자도 아니며, 더욱이 해탈의 경지에 이른 성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은근한 욕심을 부리는 일이 하나 있으니 어리석음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은 그런 '탐욕스러운 마음'은 있다. 삼독에서 자유롭고 싶어 경계의 말씀을 깊이 새기다가도 마지막 사는 날까지 '탐심'을 억누를 길은 없을 듯하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감히 모든 불화의 원인은 저 세 가지에 있는 것은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욕심과 분노를 아우르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잘못 꿴 첫 단추가 '어리석음'은 아닐는지.

아직 반백년도 못 살았지만, 하찮고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문젯거리들의 시작은 무지와 무명에서부터 비롯됐음을 깨닫곤 한다.

한 집에 사는 다른 가족들과의 사이에서도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하고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언제나 그 중심에 나의 '어리석음'이 있었다. 어리석은 중생이라 탐욕심을 일으킨다, 어리석은 중생이라 화를 내고 분노한다. 그보다도 더 어리석은 일은 내가 정말 어리석다 못해 문득 바보 같았다는 마음이 들 때 뜨악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잊고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같은 실수를 하고야 마는 사람이 나였다.

어리석은 이를 '어린이'라고 했던가? 아직 어른이 온전히 되지 못한 채 살다 보니 정말 어린 아이같은 말과 행동으로 나조차 어리둥절해지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모든 어른은 '어린이'였을 때가 분명 존재했었음을...

물론 내가 대단히 절제된 생활을 하며 경로를 이탈하는 일 없이 '반듯하게만' 살고자 의도하며 살지도 않았고, 그렇게 되기도 무척 힘들다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끔은 닿을 수 없는 그 삶을 동경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아, 이래서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대단한 무언가를 깨닫겠다는 것도 아니다.

결코 내게 일어날 리 없는 기적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일상을 살면서 어제보다는 조금 더 현명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엔 늘 그런 바람이 있다.

그 욕심이 욕심인 줄 알면서도 집착하며 끄나풀이라도 붙잡고 있는 나를 보며 과연 나는 더 현명해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음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것인가, 번뇌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행자는 아니지만 도를 닦고 있는 기분일 때도, 내 온몸은 흐물거리지만 나를 지탱해 주는 그 견고한 한 마디가 쓰러질 틈조차 주지 않을 때도, 그저 나는 살아내야 했고, 살아갈 뿐이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일,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고 곁가지를 치지 말고 때론 단순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적어도 어리석은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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