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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01. 2023

낳은 정보다 기른 정

친엄마는 아닌 것 같지만

2023. 5. 15. 치즈 +2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무리 봐도 친엄마는 아닌 것 같은데."

"왜?"

"병아리 닭발이 새까맣잖아. 근데 따라다니는 닭은 안 그래. 수탉도 닭발은 하얘. 다른 암탉 중에 둘이 발이 까맣더라. 그럼 그중에 친엄마가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네."


아이들과 친정에 갔던 날 병아리를 보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치즈(처음에 샛노랗다고 해서 딸이 지어준 병아리 이름이다.)'가 졸졸 따라다니는 그 암탉이 친엄마는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과학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콩 심은 데 콩이 나지 팥이 날 리는 없으니까.


오리가 태어나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물체를 엄마로 인식한다고 했던가?

치즈는 생물학적 친엄마는 아닌 품어 준 그 암탉을 제 엄마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맨 처음 알을 깨고 나왔을 때부터 한 암탉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 암탉이 품은 알은 여러 개였지만 부화에 성공한 병아리는 단 한 마리 치즈뿐이었다.

저출산의 심각성은 비단 인간만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알을 10개 품으면 거의 실패하지 않고 다 부화에 성공했었는데, 요즘 암탉들은 아예 알을 품으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여러 개를 품어도 부화에 성공하는 건 겨우 한 두 마리가 전부다. 닭들도 예전의 닭들이 아닌가 보다.

닭의 라테시절, 그땐 정말 병아리들이 바글바글했었는데.


치즈가 엄마라고 생각하고 따르는 암탉은 정말 지극정성으로 치즈를 3주 간 품었었다.

정작 자신은 알을 낳지도 않았는데, 그러니까 다른 암탉들이 낳은 알 위에 처음에 앉아 있어서 아빠가 알을  그 닭에게 몰아줬다. 암탉이 10마리 가까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알을 품으려고 나서는 닭은 없었는데, 매일 알만 낳고 자리를 뜨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 치즈엄마(편의상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가 그 알들을 모두 품었다고 한다. 닭이 알을 품기 시작하면 암탉이더라도 더 이상 알을 낳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저때가 벌써 부화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무조건 제 엄마 뒤만 따라다녔다.

분명히 친정 집에서 기르는 암탉 중에 한 마리가 치즈의 생물학적 친엄마가 있을 것이다. 수탉은 단 한 마리뿐이었으므로 아빠는 확실하다. 그런데 엄마가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겠다. 닭발이 새까만 암탉이 두 마리라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품은 정'이 있어서 그런지 (품었던) 치즈 엄마가 친엄마보다도 더 치즈에게 열과 성을 다 했다.

내가 모이를 주려고 가면(전혀 해치지도 않는데) 푸드덕 거리며 구석으로 달음박질친다. 엄마는 앞에서 치즈는 뒤에서 행여나 엄마랑 떨어질 세라 재빨리 따라간다. 한 번씩 엄마는 치즈가 잘 따라오는지 잠시 멈춰 서서 기다리는 일도 잊지 않는다.

세상에,

동물도 저런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어떤가.

자신이 낳지도 않은 병아리인데, 어찌 보면 남의 자식일지도 모를 일인데 그걸 3주 동안 고이 품어주고 부화한 후에도 제 자식처럼 알뜰살뜰 보살피는 그 모정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얘들아, 너희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라는 말 들어 봤어?"

치즈가 귀엽다며 자꾸 만지려는 남매에게 내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아이들은 왜 느닷없이 병아리 앞에서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의아해했다.

"사실 치즈 엄마는 저 닭이 아니라 따로 있는 것 같거든. 근데 자기가 그동안 품고 살았다고 친자식처럼 저렇게 잘 보살펴주잖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꼭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가 아니어도 요즘은 입양도 많이 하거든. 그렇게 받아들인 자식을 가슴으로 낳았다고 그런 말도 해. 부모 자식은 꼭 직접 낳지 않아도 그렇게도 만들어질 수 있는 거야. 사람이나 동물이나 비슷한가 봐.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애틋한 거 같아."

나는 치즈를 보며 일장연설을 했지만 아이들은 단지 병아리의 귀여움에 빠져 새겨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나중에라도 알게 되겠지. 엄마가 했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부모는 무엇이고 대관절 자식은 다 무어란 말인가.

세상은 요지경인 기막힌 세태 속에서 그 혈육이란 게 또 무엇인가.

부모 자식 사이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대단하고도 소중한 무언가로 끈끈하게 연결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내가 낳았는지 안 낳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나도 자식을 낳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오만가지 감정들과 새삼스러움들에 대해 한 마리의 암탉과 주먹만 한 병아리 앞에서 나는 숭고함마저 느꼈다.

동시에 불현듯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너희가 사람보다 낫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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