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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31. 2024

생존 바느질을 하는 시간

방학 단기특강

2024. 1. 2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바느질은 어떻게 하는 거야? 나도 좀 알려 줘."

"작년에도 해 봤잖아? 기억 안 나?"

"응. 잘 기억 안 나. 다 잊어버렸어."

"그래? 그럼. 다시 가르쳐 줄게. 10살이면 자기 옷에 난 구멍쯤은 직접 꿰맬 수 있어야지."


딸보다는 아들이 이런 일에 관심이 더 많다, 고 느꼈다.

어쩌면 엄마가 하는 오만가지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결코.

"엄마, 나도 할래. 왜 나만 쏙 빼놓고 하려고 그래?"

뒤늦게 우리의 바느질 체험 활동에 합류한 2살 연상의 누나가 있었다.


"엄마, 바지에 구멍이 났어. 어떡하지?"

아들이 내복 바지 무릎에 난 구멍을 내게 보이며 물었다.

"어쩌긴, 꿰매면 되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구멍이 난 것은 메우면 될 일인데 그런 걸 묻다니, 역시 넌 아직 어리구나.

"에이, 이걸 뭐 하러 꿰매? 새로 하나 사면 되지."

얘가 얘가, 어디서 장바구니에 마구잡이로 새 내복 집어넣는 소릴 하고 있는 거람?

"그 옷 멀쩡하잖아. 구멍이 나긴 했지만 거의 새 건데, 딴 데는 아무 이상도 없는데 구멍 조금 났다고 해서 버려? 엄만 버릴 생각 없어."

단호하게 나는 의사전달을 했다.(고 생각했다.)

"엄마, 이게 그렇게 아까워? 굳이 바느질해서 입어야 돼?"

"아들아, 세계적으로 버려지는 옷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해? 옷 한 벌을 만들려면 우리가 평생 먹을 양의 물 몇 배는 들어가고, 만에 하나 안 입고 헌 옷 수거함에 버려진다고 해도 활용률을 얼마 된 지도 않는대. 그리고 그 옷을 소각하려면 어마어마한 탄소가 배출되고 말이야. 최대한 입을 수 있는 데까지는 입어야지, 너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잖아."

라는 설교는 그날 하지 않았다.

평소에 종종 해 왔으므로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아들이 또 말이 안 통하기 시작한다.

"그 구멍 난 부분만 바느질하면 아무 이상 없잖아? 어차피 내복이고 집에서만 입는 옷인데, 우리끼리 있을 때만 입는 건데 뭐 어때?"

"그런가?"

"그럼. 엄마가 해 줄게."

"그러면 나한테 가르쳐 줘. 내가 해 볼래."

그래, 이래야 내 아들이지.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건조기를 사용하면서부터 옷감이 잘 상하는 느낌이었다.

문제의 그 내복도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었는데 건조기를 사랑한 나머지 주야장천 돌렸더니 어느새 구멍이 나 있었다. 정말 건조기 때문에 옷감이 상해서 그리 된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은 없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었다.(게다가 건조기를 사용하는 지인들도 한결같이 그런 얘기를 했으므로 더 의심스러웠다.) 아니면 아이들이 그 옷을 입고 어디에 걸려서 구멍이 났거나. 요즘은 옷 재질이 많이 좋아져서 쉽게 낡지도 않는 것 같다. 낡은 옷을 처분하고 새 옷을 구입하려면 앞으로 서 너 번은 윤회해서 태어나야 새 옷 구경을 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생길 것 같다. 나는 2012년에 딸이 태어나고 썼던 속싸개와 목욕수건, 2014년에 태어난 아들이 쓰던 속싸개를 여전히 잘 쓰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 그 구멍은 미약하였으나 결국에는 창대해졌다.

콩알만 한 크기의 구멍이었는데 아이들이 손가락을 넣다가 손을 집어 넣다가 다리를 집어넣고 급기야 얼굴도 들어가게 그 구멍이 커졌다. 조금 더 지체했다가는 아예 그 부분을 싹둑 자르고 반바지라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바지로 거듭나기 전에 손을 써야 했다.

엄마가 집에서 자녀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도대체 더 무엇을 가르친단 말인가?

바느질 정도는 제 손으로 할 수 있어야 미래형 새 나라의 어린이지.

어린이가 반드시 익혀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생존 바느질'이라고 한다지 아마?


새 옷을 지어 입으란 것도 아니고 단지 옷에 난 구멍을 눈속임할 만큼의 바느질 솜씨면 충분하다.

생존 수영의 계보를 이을,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서는) 살면서 필수로 익혀야만 하는 우리 집 어린이들의 필수 교양 분야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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