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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01. 2024

고진'몸살'래

개학이 오늘인데 왜 일어나질 못하니

2024. 1. 6.

<사진 임자 = 글임자 >


다 거짓말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방학 끝에 개학이 오긴 온다.

하지만 그전에 몸살이 먼저 왔다,

그것도 나에게 유독 심하고도 상당히 지독하게...


재앙은, 아마도 아들이 지난주 목요일에 이를 한꺼번에 4개씩이나 뽑고 나서 시작된 것 같았다.(고 근거도 없는 의심을 혼자만 하고 있다.)

살짝 건들어 보더니 이가 네 개 흔들린다고 온 김에 빼고 갈 거냐고 묻길래, 그렇게 많이 뽑아도 상관없냐고(=설마 죽는 건 아니죠?= 목숨에는 전혀 지장이 없겠죠?)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앞으로 닥칠 한 치 앞의 재앙도 눈치 못 채고 나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절호의 찬스로 여기고 내원한 김에 시원하게 다 뽑아 달라고 했다.

물론 아들에게도 정말 괜찮겠는지 당사자의 의사를 미리 물어봤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위아래 모두 맞물리는 그 부위가 모두 흔들리는 바람에 그 부분을 모두 빼 버린 게 화근이었던가 보다. 일단 지혈이 금방 되지 않았고, 위로 아래로 뻥 뚫려 있으니 더 신경 써서 거즈를 꽉 깨물어야 한다는 당부에 최대한 세게 물고 있으라고 아들에게 간청했다.

두 시간도 넘게 그렇게 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갑자기 아들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느닷없이 으슬으슬 춥다고 했다.

불길했다.

지금은 아니 된다.

내일모레가 개학인데, 지금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그동안 방학 때 무사히 보내온 보람도 없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대한 아들의 비위를 맞추며 얼토당토않은 어리광을 다 받아주며 목요일 밤을 넘겼다.

금요일 아침에는 제법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다.(고 착각한 것이 2차  화근이었다.)

치과에서도 이를 뺄 때 꽤 아팠을 거라고 여러 차례 말했던지라 최대한 침착하게 이 빠진 설움을 달래려 애썼으나 아들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하긴 앞니 몇 개 남고 전에 빠진 자리에 이가 채 나기도 전에 4개를 홀랑 또 빼버렸으니 남아 있는 이도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싸한 느낌과 함께 나도 한기가 들기 시작한 건 금요일 오후부터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뭐라도 먹일 요량으로 살살 얼러 가며 먹고 싶은 건 말만 하라고 다 갖다 바치겠다고 했으나 아들은 식욕을 완전히 잃어버린 눈치였다.

안돼, 밥을 먹어야 해, 그래야 학교를 가지.

다시 극소식좌로 돌변한 아들은 미음 같은 그 멀건 것 두 세 숟갈을 먹고 배가 부르다고 못 먹겠다고 버티고 나왔다.

"먹어야 돼. 그래야  상처도 금방 아물고 이도 잘 나지. 아플 때일수록 더 잘 먹어야 기운 차릴 수 있어.(=그래야 학교도 갈 수 있어, 제발.)"

나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했지만 아들은 급기야 자리보전하고 말았다.

하루 종일 죽 서 너 숟갈로 연명하다시피 했다.

이 뺀 자리의 상처에 음식물이 닿아서 자꾸만 아프다는데 나도 억지로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임신부에게 한겨울에 복숭아라도 따다 줄 각오로 자꾸만 물었다.

"우리 아들이 먹고 싶다는 거 엄마가 다 사다 줄게. 말만 해. 뭐가 먹고 싶어?"

기운이 빠져 탈진하다시피 한 아들에게 나는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아들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이 나왔다.

"엄마, 수박은 언제 나와?(=지금 당장 수 박 한 통 따 오시지요.)"

"어떡하지? 요즘 수박 안보이던데, 엄마가 마트 여러 군데 다 가봤는데 없었어."

아들은 정말 하필이면, 너무 구하기 힘든 음식을 요구했다.

먹고 기운 차릴 수만 있다면야 그깟 수박 한 통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사줄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 최근에 시장에서 수박 구경을 못한 지 꽤 됐단 말이다.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던 어매'처럼 아들은 수박만을 원했다.

자식이 그렇게 먹고 싶다는데 한겨울에 없는 수박을 어디서 구한단 말이냐.

차라리 눈 덮인 산길을 헤쳐 새빨간 산수유 열매를 따오는 일이 더 쉬워 보였다.

이제 아들은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목요일 저녁부터 부실한 끼니로 입만 축이고 있다가 드디어 사달이 났다.

문제는 나도 덩달아 몸살 기운이 슬슬 느껴졌다는 거다.

목요일 밤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자꾸 열을 확인하고 해열제를 먹이고 물수건에 부채질을 해주고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열에 내 속도 까맣게 타들어갔다. 나도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기 시작한 마당에 말이다.

아들만 는다면야 다 나한테 옮겨 버려도 좋다고 어미로서 당연한 바람을 가졌다.

그리고 그 바람대로 실현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벌써 내가 이번 겨울에 세 번째 걸리는 감기다.

금요일 아침 당장 병원으로 향했다.

약이라도 먹이니 마음은 놓였지만 그래도 아들은 금방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먹은 게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4개나 한꺼번에 빼 버린 이가 말썽이었던가?

치과에서 괜찮다는 말만 믿고 그리 한 건데 후회막심이었지만 이제 와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꼭 그게 문제였던 게 아닐 수도 있었으니까.

자식이 아프니 내가 잠이 올리가 없었다. 며칠 밤을 거의 뜬눈으로 보내다시피 하고 결국 나도 병이 나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이 되니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 것 같았다.

내가 한눈 판 사이에 누군가 쇠몽둥이로 내 몸을 흠씬 두들겨 팬 게 분명하다며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우리 집 한 성인 남성을 강력히 의심했다.

(이쁘고 순진한 내 어린것들이 그런 험한 일을 했을 리는 결코 없을 테니까)

목소리는 안 나오고 목구멍이 타들어갔고 얼마나 부었는지 목구멍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한 번씩 앓을 때마다 혼이 다 빠지게 호되게 앓는 편인 나는 정말이지 이런 상황에 학을 뗀 지 오래다.

그나마 약이라도 먹으니 아들도 서서히 기력을 회복한 것 같아 안심될 무렵 아들이 콜록콜록하기 시작했다.

안돼, 이건 너무 가혹해.

지금 나도 죽을 판이라고.


"괜찮아, 아빤 어렸을 때 감기 걸려도 병원도 안 가고 살았어. 아빠는 감기 걸려서 한 달간 적도 있어. 감기도 걸리고 해야 면역력도 생기고 그런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 와중에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한 성인 남성에게 나는 급기야 분노했다.

아무리 본인이 병간호하지 않는다기로소, 이 인간아, 그게 지금 아픈 애들 앞에서 할 소리란 말이더냐?

남도 아니고 제 자식의 고통을 저리 아무렇지도 않게 하찮게 생각하는 인간이라니!

우리 애들은 감기 걸리면 특히 기침이 심해 잠을 못 잔다. 잠도 못 자는데 기력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생활이 얼마나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우리가 지금 단체로 꾀병을 부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제발 할 말 안 할 말 구분 좀 하고 방에서 나오지나 말았으면 좋겠는데 걸핏하면 거실에서 어슬렁 거리며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핀잔만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아무 도움도 안 된다'라고 한다지 아마?

"아프다 아프다 하면 더 아픈 거야. 그렇게 정신이 약해서 어떡해. 이겨내야지. 아빠 어렸을 때는..."

또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아프고 싶어 아픈 사람이 어디 있을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루 종일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나(말도 하기 힘들 만큼 아팠으니까)는 죽을 힘들 다해 그 불순분자에게 악을 썼다.

아무 짝에도 도움 안 되는 그 인간에게.

"자꾸 옛날 얘기 좀 그만해. 애들이 아픈데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옛날 감기하고 지금 감기하고 같아, 이 인간아?! 방에 들어가!!! 나오지도 마!!!"

그렇게 나는 그 인간을 거실에서 무찔렀다.

아무리 공감능력이 없다기로소니, 남도 아닌 가족들이 이렇게 아파서 고생하는데 도대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걸까?

귀신은 뭐 하나 저런 인간한테 감기 안 옮기고.


나도 점점 몸상태가 안 좋아졌고 아들은 나으려다 말았고, 아젠 딸이 또 새로 시작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내가 먼저 주사 맞고 약을 먹고 아들과 딸을 병원에 데리고 갔다.

오후에는 아들이 치과 충치 치료가 예약돼 있어 다시 몸을 질질 끌고 치과를 갔고 그날 나는 정말 탈진할 것 같았다.

2월 1일, 며칠만 있으면 개학인데, 이제 나에게도 봄날이 오는데, 하필 지금 시점에 모든 시련이 닥쳐온 건지 절망스럽기만 했다.


정말 다 거짓말이다.

믿을 수 없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흔해 빠진 사탕발림.

방학 내내 고생만 한 내게,

불과 개학을 며칠 앞두고 찾아온 반갑잖은 그것,

감기 몸살.

바야흐로 '오자성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해야 할 때다.

고진감래-> 고진몸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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