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an 20. 2024

옥수수 음모론

구황작물계의 이단아를 처음 만난 날

2024. 1. 19.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거 덜 익은 것 같은데?"

"진짜 그러네."

"불을 너무 빨리 끈 거 아니야?"

"그랬나?"

"더 익혀야겠어. 완전 생 옥수수야."

"알았어. 다시 쪄야겠다."

"옥수수 한 두 번 쪄 본 사람도 아니면서."

"살짝 덜 익을 수도 있는 거지. 다시 찌면 되지 뭐."

"잘 좀 쪄 봐."


얼마 후,

"한 번 먹어 봐. 다시 쪘어."

"그래도 덜 익은 것 같은데?"

"그래?"

"왜 이렇게 못 쪄?"

"이상하다. 이번에 더 오래 쪘는데?"

"옥수수가 질긴가?"

"그런가?"

"한번 더 쪄야겠는데?"

"그래야겠다."


또 얼마 후

"이번엔 잘 익었을 거야."

"똑같잖아. 다시 찐 거 맞아?"

"내가 뭐가 무서워서 거짓말해?!"

"근데 왜 이렇게 하나도 안 익었어?"

"나도 모르지."

"옥수수가 불량 아니야?"

"진짜 그런가 보다."

"이런 걸 돈 주고 샀어?"

"세 개에 4500원이나 줬는데 왜 이러지?"

"뭐야? 저런 걸 4500원이나 주고 샀다고?"

"지금은 제철이 아니잖아. 합격이가 먹고 싶대서 한번 사 와봤는데."

"하여튼, 이상한 것만 사 와가지고는."

"내가 이렇게 불량 옥수수일 줄 알았나."

"세상에 이런 걸 돈 주고 팔다니..."

"그러게. 잘 익지도 않는 걸 말이야."

"그나저나 난 못 먹겠다. 맛도 없고, 익지도 않고."

"진짜 왜 이렇게 안 익지?"

"완전 날 거잖아."

"진짜 이상하네. 보통은 한번 찌면 잘 익는데."

"쓸데없이 왜 그런 옥수수는 또 산 거야?"

"진짜 잔소리 많네. 맛이나 한번 보라고 주니까."

"난 안 먹어. 무슨 옥수수가 이 모양이야?"

"사람들이 이 옥수수 맛있다던데."

"또 누가?"

"아무튼 맛있댔어."

"무슨 옥수수인데?"

"초당 옥수수라고 들어 봤어?"

"몰라."

"아무튼 맛있다고 했단 말이야. 그래서 더 비싼 거야."

"하나도 맛없구만 뭐가 맛있단 거야? 결정적으로 잘 익지도 않고 완전 불량 옥수수구만."

"진짜 이상하긴 하다."


덤 앤 더머 부부가 초당 옥수수를 둘러싸고 옥신각신 하던 날,

그것을 둘러싸고 우리 부부를 해하기 위한 무슨 음모론이 있는 건 아닌가 강한 의구심이 들 무렵 '더머'인 남편에 앞서 '덤'인 아내는 남편의 눈을 피해 재빨리 검색을 해 봤다.


Q : 초당 옥수수는 원래 쪄도 아삭한가요?

A : 네, 초당 옥수수는 쪄도 아삭합니다.


익명의 어느 부부는 초당 옥수수를 처음 먹어본 티를 냈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 이래서 내가 면장을 못하는 거야.

어차피 우리 입맛은 아니었다.

앞으로 초당옥수수와는 의절하는 걸로, 애초에 우리와는 인연이 아니었던 걸로, 쪄도 찰지지 않고 아삭한 그런 구황작물은 취급하지 않는 걸로...



작가의 이전글 남의 남편 착시효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