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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07. 2024

며느리가 휴가 내고 명절 준비하러 와야지!

휴가는 그럴 때 내는 게 아니지

2024. 2. 6.

<사진 임자 = 글임자 >


"누나가 우리 보고 왜 너희는 명절 하루 전에 집에 오냐고 그러던데?"

"그럼 누나보고 일주일 전부터 집에 가서 장만하고 있으라고 해! 어차피 시가에도 안가잖아?"


무슨 대단한 명절이라고 며칠 전부터 와서 일하라는 거야?

그렇게 하고 싶으면 본인이 미리 가서 지지고 볶고 있으면 되지.

물론 나는 시누이에게 억하심정은 없다, 다만 그 상식 이하의 사고방식이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안타까웠다.


"누나가 나보고 뭐라고 그러더라. 왜 명절인데 꼭 하루 전날 오냐고."

"하루 전날 안 가면 언제 가는 건데? 가고 싶으면 혼자 휴가 며칠 내서 가. 가도 불만이야?"

"아니, 엄마 혼자 고생하는데 미리미리 안 온다고."

"누가 직장 다니는 사람이 휴가까지 내서 며칠 전부터 시가 가는 사람이 있어?"

"엄마 혼자 힘드니까 그런 거지, 누나는."

"그러니까 그건 누나 생각이지. 그렇게 어머님이 안돼 보이면 자기 누나가 가서 다 하면 되잖아. 정작 본인은 시가에도 안 가면서 누구 보고 오라 마라야? 직장도 안 다니고 시가에도 안 가는데 뭐가 걱정이야? 가고 싶을 때 아무 때나 갈 수도 있잖아. 30분 거리도 안되는데."

"그러게. 아무튼 우리 보고 늦게 온다고 뭐라고 하더라."

"그러든지 말든지 나한테 할 소리는 아니다. 그게 무슨 상식 이하의 소린지 모르겠네. 직장인이 명절이라고 뻔히 연휴 있는데 며칠 전부터 휴가 내서 집에 가는 사람 한 명이라도 봤어? 우리 면장님도 안 그러셔. 군수님도 안 그러셔. 한낱 말단 공무원이 당장 할 일도 많은데 뭐 그리 대단한 명절 쇤다고 며칠 전부터 휴가를 내라는 거야? 게다가 시골 면사무소에서는 명절 전이 더 일 많고 바빠. 아무리 사회생활 안 해봤다고 그렇게 모를까? 그건 상식 아니야?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쉬라고 연휴 기간도 있는 거잖아? 나보고 며칠 동안 거기 가서 일하라는 거야 뭐야? 그렇게 하지도 않겠지만 어쩜 자기 누나는 그렇게 꽉 막혔어? 직장이 나 휴가 내고 싶다고 아무 때나 바로 휴가 내고 쉴 수 있는 그런 데야? 명절이 대체 뭔데? 그게 뭐라고 며칠 전부터 가서 준비를 하라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에휴."


그러니까 시누이는 공무원들은 놀고먹는 줄 안다.

세상 편하게 직장 생활하는 줄 안다.

갑자기 휴가 내겠다 이렇게 말하면 어서 그러세요 하고 결재해 주는 곳인 줄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부 공무원이었을 시절 한 번은 시누이가 우리에게 왜 꼭  명절 하루 전에 집에 오는 거냐고 남편에게 따진 적이 있었다.

결혼 초에 시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시누이는 시가에 가는 일도 없다.

그래서 어쩔 땐 본인이 먼저 친정에 가서 우리가 언제 오나 벼르고 있기도 했다.

자꾸 전화하며 빨리 빨리 오라고 닦달하는 일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물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형님. 내가 지금 놀러 다니고 있는 줄 알아요? 형님은 직장 생활 안 해서 세상 물정도 모르나 본데 직장이란 게 어디 내 맘대로 다 하고 살 수 있는 덴 줄 알아요? 명절 전날 갔으면 됐지 뭘 더 바라요? 형님 동생하고 지금 살고 있는 것도 고마운 줄 아세요! 어디서 지금 시누이짓하려는 거예요? 시가에 가서 일한다고 며칠 휴가 내겠다고 하면 아마 결재도 안 해줄 걸요?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면 당장이라도 휴가낼 마음이 있지만 명절 그게 뭐라고 뭘 얼마나 지지고 볶는다고 미리 휴가를 내라는 거예요? 도대체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했는지 신기하네요. 그렇게 어머님이 힘든 것 같으면 본인이 직접 가서 다 하세요. 본인도 안 가면서 누구보고 빨리 안 온다고 성화예요? 본인부터 모범이 보여줘 보세요. 그리고 그게 마치 전부 내 일인 것처럼 얘기하네요, 들어 보니까. 명절 준비는 당연히 며느리가 다 해야 된다 이런 심보인가요? 우리가 가든 말든 신경 끄고 마음이 있으면 혼자 먼저 가서 실컷 준비하세요. 형님은 어차피 시가에도 안 가잖아요?"

라고 말할 의향이 충분히 있었다, 내게 그렇게 전화해서 따졌더라면 말이다.


나는 그 상식이하의 발언에 어이가 없다 못해 얼떨떨하기까지 했다.

당장 사무실 내 다른 여직원들에게 이 비보를 알렸다.

"우리 시누이가 나보고 왜 명절 하루 전날 시가에 오냐고 뭐라고 하더라. 어머님 혼자 하시기 힘드니까 미리 와서 준비하라고. 어떻게 생각해?"

직장 생활을 하며 명절 연휴 전날에 휴가를 내고 안 나오는 직원은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는 나는 다른 직원들의 의견들 듣고 싶었다.

"너희 시가가 그렇게 대단한 집이야? 며칠 전부터 휴가 내고 가서 준비해야 할 만큼?"

"그렇게 불만이면 본인부터 가서 하면 되지 왜 남보고 휴가 내라 마라야? 본인 엄마잖아? 나 같으면 내가 그냥 가서 하겠다. 시가도 아니고 친정 일인데."

"직장생활도 안 해봤나 보다. 어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어이없다. 하루 전날 가면 됐지. 가서 일만 하고 올 건데 뭐 하러 며칠 전부터 가? "

생각해 보면 남편은 우리 집에 거의 가지도 않지만 가면 길어야 30분에서 1시간 정도 있다가(정확히는 놀고먹기만 하고) 온다.

그에 비하면 나는 시가에 명절 전날 가서 음식 준비도 하고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밥하고 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최소 4,5 끼는 차리고 치우고 오는데? 있는 내내 부엌에서만 살다 오는데?

여론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이 들끓는 여론을 고스란히 집에 가서 남편에게 전했다.

"내가 우리 사무실 직원들하고 얘기해 봤는데 그렇게 말하더라. 어떻게 생각해?"

"누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그래? 하지만 상식적으로는 좀 이해 안 돼.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 것 같아."

"엄마 혼자 고생하니까 그런 거잖아."

"누가 어머님 보고 그렇게 하란 사람 아무도 없어, 어머님이 좋아서, 어머님 욕심에 일을 크게 만드는 거잖아. 그것 가지고 왜 엉뚱한 사람들한테 불통 튀기는 거야?

"누나는 딸이니까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딸이 하면 되잖아. 내일 가서 여직원들한테 이 얘기 그대로 해봐. 다들 뭐라고 하는지. 직장 다니는 올케가 '감히 명절 하루 전날 시가에 온다'고. 그마저도 어쩔 땐 명절 비상근무 걸리면 근무까지 다 하고 시가 가는데 휴가 좀 미리 내서 자기 엄마 안 힘들게 와서 일할 것이지 왜 그렇게 늦게 오냐고 뭐라고 했다고 한번 직원들한테 말해봐. 비상근무 날짜도 바꾸라고 한다고 한 번 얘기해 봐. 남들은 뭐라고 말하는지 궁금하다."

"......"

물론 남편은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했다.


남편 말마따나 딸 입장에서는 엄마가 고생하는 게 안쓰러운 마음에 동생 내외에게 서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직장을 그만둔 지금의 나도 굳이 며칠 전부터 시가에 가서 일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쩜 사람이 본인 기준에서만 생각을 할까?

아무리 남이라지만 어쩜 그렇게 이기적일까.

나는 그때 시누이의 그런 말과 행동이 너무 이기적이고 상식 이하로 느껴졌다.

평소에 간섭도 많은 편이라 그렇잖아도 심기가 불편하던 차였는데 너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 것이다.

아무리 세상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다지만, 굳이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라면 내가 누나 입장이라면 나는 그냥 조용히 내가 집에 가서 엄마 도와줄 거야. 동생한테 왜 빨리 안 오냐 어쩌냐 이런 말 하지도 않아. 그게 할 소리야? 도대체 언제까지 동생을 어린애 취급하면서 사사건건 간섭하려고 하는 거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왜 말을 못 해!"


아무리 누나라지만, 공부할 때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라지만 낄 데 안 낄 데 다 끼면서 간섭하려 드는 태도가 넌덜머리 났다.

결정적으로 어머님이 버젓이 계시지 않은가 말이다.

가족 사이에도 각자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나는 시누이의 그 사고방식이 진심으로 안타깝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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