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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03. 2024

다시 한번 아들의 파워 인플루언서가 되어 주세요

새로운 파워 인플루언서를 기다리며

2024. 3. 2.

<사진 임자 = 글임자 >


"OOO  선생님 진짜 좋은데. 나 6학년 때 우리 담임 선생님 되면 좋겠다."

"누나,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오래 계셔서 이제 다른 학교로 가셔야 한대."

"뭐야? 진짜?"

"그래. 누나는 내 말 못 믿어?"

"아깝다, 그 선생님 진짜 좋은데."


겨울방학이 끝나고 열흘 정도 가뿐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던 남매가 봄방학이 시작되던 날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잠깐 며칠간 개학의 기쁨을 봤던 나는, 다시 봄방학이라는 고난주간을 앞으로 어찌 살아낼지 심란해졌던 날이다.


작년에 3학년이던 아들의 담임 선생님은 전에 딸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그러니까 남매가 같은 선생님을 1년씩 만났던 거다

"너 그 선생님 진짜 좋아. 참고로 알아 둬."

3학년이 된 동생의 담임 선생님이 과거 제 선생님이었던 그분으로 정해지자 딸은 동생에게 고급 정보를 방출했다.

"게임도 많이 하고 선물도 많이 주고 자유 놀이 시간도 많이 줘. 아무튼 진짜 좋아."

그래서 아들은 부푼 기대를 안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과연 누나 말대로 그 담임 선생님은 아들에게도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셨다.

학부모 공개 수업에 가서 뵐 때도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셨고 학부모에게 알림 문자를 보내실 때나 알림장을 올릴 때도 전혀 딱딱하지 않게 하셨다. 오히려 너무 편안하게 하셔서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요즘 선생님들은 진짜 우리 때랑 많이 다른 것 같아."

초등 교사인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저렇게 말했더니 친구도 정말 그렇다며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뭔가 다르긴 다르다고 했다.

이제 나와 친구는 더 이상 젊지 않은 거란 말인가, 그럼?

어쨌거나 제 누나를 맡았을 때랑 자신을 맡았을 때랑 비슷하게 수업하시는 담임 선생님을 아들은 아주 잘 따르는 편이었고 선생님의 말씀을 항상 금과옥조로 삼고 학교 생활을 했다.

내 말은 잘 안 들어도 선생인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봤다.

그러니까 아들의 파워 인플루언서였다, 그 선생님은.


봄방학이 시작된 후 이젠 정말 담임 선생님들과 헤어질 시간이 돼서 나는 매년 하던 대로 딸과 아들의 담임 선생님께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잘 지도해 주셔서 고맙다, 선생님 가족 모두 항상 건강하시라는 대강 이런 내용의 단순한 문자였다.

평소 선생님들께 시시콜콜 연락하며 지내는 편이 아니라서 느닷없이 저런 문자를 보내는 게 좀 어색하긴 했지만 그냥 일 년 동안 내 아이들을 잘 지도해 주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마음이었다.

정말 별 거 아닌 거지만,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잠깐 짬을 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얘들아, 선생님이 답장을 보내셨네. 앞으로 너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잘할 거라고 믿으신대."


며칠 전 반 배정이 나왔다.

아직 담임 선생님은 모르지만 남매는 온 반을 다 뒤져가며 어떤 친구와 한 반이 되는지 궁금해서 한참 동안 자료를 뒤적였다.

그동안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서 별 탈 없이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다고 믿는다.

올해도 남매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와 원만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그뿐이다.

제일 집중해야 할 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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