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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n 15. 2024

손도 커요, 굳이

그런 사람 있어요

2024. 6. 1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제발 사지 마.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음식점 차릴 거야?"

"기다려 봐. 내가 주문할게. 요즘 남들도 다 이렇게 먹는대."


남들 누구?

누가 그래?

또 도졌다.

쇼핑 본능, 아니 정확히는 충동구매 본능이라고 해야 맞겠다.


"필요할 때 조금씩 사 먹는 게 더 낫다니까."

"아니라니까. 대량으로 사야 더 싸."

"날마다 먹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먹는 건데."

"많이 사서 팍팍 먹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못하니까 하는 소리지.(=알아서 하는 게 뭐 있었더라?) 하여튼 내 말만 안 들어."

"그거 작은 거 하나씩 먹어 봐야 얼마나 된다고. 사서 냉동시켜 놨다가 먹으면 돼."

"그렇게 사놓으면 잘 먹지도 않아. 없어야 먹고 싶지, 많으면 먹고 싶지도 않다니까."

"일단 사 두면 다 먹게 돼 있어. 그런데 배송비가 있네. 배송비 아까우니까 두 개는 주문해야겠다."

"하나만 해. 하나도 많아."

"배송비 아깝잖아."

"배송비 아끼려다가 충동구매만 하는 거라니까."

"주문한 김에 두 개는 사야겠어."

참치,

전생에 참치를 못 먹어서 죽은 구신이 환생을 하셨나, 이번엔 참치 대용량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참치 가격이 많이 오른 것 같네. 양도 더 적어진 것 같고."

"그러네. 그럼 대용량으로 사 먹어야지."

내가, 그 양반 앞에서 그 발언을 한 게 화근이었다.(고 순순히 이제 와서 인정하는 바이다. 이런 걸 고급 전문용어로 '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라고 한다지 아마?)"

물론 그 양반 앞에서 저런 말을 한 내 잘못이 크다.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어야 했다.

그 양반 앞에서 내뱉지 말았어야 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예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원전 3,000년 경에.

그동안 축적해 온 나만의 스몰 데이터에 의하면 저렇게 나오고도 남을 양반이다.

자꾸만 축적되어 가는 나의 스몰 데이터,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그것, 이젠 모을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것, 어쩌자고 나는 자꾸 모으고 있는 것일까.


"생각을 해봐. 그거 대용량 큰 거 한 통만 사도 평생 먹을 거다.(=과장이 심하지 않다고는 말 못 하겠으나 그만큼 대용량이니 신중히 생각하셔라.)"

"에이, 이왕 먹는 거 한 번 먹을 때 많이 먹으면 좋지."

"꼭 많이 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구신이 환생한 게 틀림없어, 소용량 참치캔에 한 맺힌 구신 말이야.)"

"내가 사줄게. 당신 많이 먹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마는 거지. 그리고 필요하면 그때그때 사 먹으면 된다니까."

"귀찮게 날마다 어떻게 사러 가?"

"별 게 다 귀찮다.(=설마 댁보고 참치캔 사 오라고 심부름시킬까 봐?)"

"사 줄 때 먹어."

"난 사달라고 한 적 없다. 참치 가격이 올랐다고만 말했지."

"요즘 남들도 다 이렇게 대용량 사서 냉동해 놨다가 먹는대."

"그런 얘긴 처음 들어 보는데? 그리고 살 거면 하나만 우선 사 보면 되지. 뭐 하러 두 개나 사? 일단 먹어 보고 사든지 해야지."

"배송비 나가니까 그렇지."

"그게 문제라니까. 배송비 때문에 굳이 두 개까지 살 필요가 없다니까."

"이왕 살 거면 한꺼번에 사는 게 좋지. 기다려 봐."


그러니까 그 양반은 좀 손이 큰 편이다.

이런 것도 손이 크다고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간도 크다는 거다, 가끔 보면.

간헐적으로 내게 하는 말이나 행동, 간 큰 남자의 딱 그것이다.

승강이 끝에 결국 다음날 그 통들은 도착하고야 말았다.

1,880g짜리 둘, 튼튼하게 사방이 다 막힌 그것을 보자 내 가슴이 턱 막혔다.

이제 막 도착했는데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나는 음식은 약간 모자란 듯하게, 이왕이면 맛있다며 조금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그만 멈추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물론 항상 일관성이 있지는 않다는 걸 그 양반이 제보하기 전에 양심고백 하는 바이다.)

"이건 오래 두고 먹어도 돼. 통조림이니까."

"그래도 한 번 개봉을 하면 최대한 빨리 먹어야 될걸?"

"괜찮아. 냉동시켜 두면 돼. 통조림은 보관 기간이 꽤 길어."

"그건 개봉하기 전 얘기겠지. 냉동시킨 것도 오래 두면 좋을 건 없지.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먹이겠다."

대용량이 싸다고 무조건 맹목적으로 '가성비'만 따지다가 결국 다 처리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건 가성비가 좋은 게 아니라고, 진짜 합리적인 게 뭔지도 모르면서 찰나의 기쁨에 넘쳐 사리분별 능력이 떨어졌다고 느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날마다 참치 반찬만 해 줄까?

제발 참치는 이제 그만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참치는 꼴도 보기 싫다고 눈에 안 보이게 해달라고 내게 사정할 때까지?

우리 집 멤버들이 열심히 그 두 통을 다 먹어 치우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참치 김밥이라도 만들어 팔아치우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김밥지옥'이라도 창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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