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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02. 2024

이것은 생각하는 의자가 아니여!

핫핑크 옆에 핫골드

2024. 6. 2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은 내가 꽹과리 좀 칠까?

"그럴래?"

"내가 할 테니까 엄마랑 아빠랑 같이 점심 드시면 되겠네."


상사화도 아닐진대, 부모님은, 자그마치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식사를 같이 못하고 계신다.

아빠가 콩밭에서 보초 서는 동안 엄마가 식사를 하시고, 차례가 되면(?) 교대하는 식이다.

언젠가는 나도, 그 2인 교대 근무에 2.5명 교대자로 투입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시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나도 그날은 근무조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 요즘도 날마다 콩밭 나가셔?"

"요새 새들 때문에 눈만 뜨믄 나간다."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돼?"

"며칠은 더 해야제. 그놈들이 날만 밝았다 하믄 떼로 온단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너는 아무것도 모르믄 가만히 있어라."

마지막 엄마의 말씀에 나는 이렇게 혼자만 해석했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콩밭에서 보초 한 번도 안 봤으면서 잔소리 그만해라' 내지는 '그런 말 할 시간 있으면 와서 꽹과리 한 번이라도 두들겨라'

왠지, 은근히, 그러나 아마도 확실히,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새를 쫓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도 꽹과리를 마구마구 치면서 말이다.

"엄마, 내가 가서 새 쫓을게."

엄마가 최근에 자꾸 새타령(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새타령이 아니다, 물론. 새들이 지겨워서 쫓으러 다니는 새타령인 셈이다.)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한 번쯤은 나도 콩밭에 파견하고 싶어 하시는 건지도 모르는 거라고, 아마도 그럴 거라고 거의 확신했다.

하지만 여름에 취약한 나는(어느 계절이라고 취약하지 않은 때가 있었겠냐마는) 감히 내가 먼저 콩밭으로 달려가겠노라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일흔의 엄마, 차라리 여든을 기다리는 게 더 빠른 아빠, 두 분이 뻔히 매일같이 콩밭으로 출근하는 줄 알면서도 선뜻 내가 하겠다고 말 못 했다.

그러나, 몇 달 후, 그 콩밭에서 난 수확물을 반드시 받아먹게 될 나로서는 인간적으로, 양심상 적어도 한 번은 파견 근무를 가야 한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키기 전에 자원해서 출동하자, 그런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나는 콩밭으로 갔다.

새떼가 콩밭에 앉으려는 찰나 나는 마구 꽹과리를 쳤다.

서리꾼들은 깜짝 놀라 도망갔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

하지만 어디에 숨었다가 다시 날아드는 건지 다 쫓았다고 방심하고 있으면 어느새 그놈들이 내 눈앞에서 알짱거렸다. 정말이지 나는 '알짱거렸다'는 그 표현 말고는 그 상황에 딱 맞는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보다 더 세고, 충격적이며, 한번 들으면 조류도 기분 팍 상해지고 마는 그런 다른 표현은 없는 걸까. 그게 생각나지 않아 나는 억울할 지경이었다.

뭔가 기분 나빠. 뭔가 내 앞에서 코웃음 치는 것 같아. 뭔가 인간인 나를 얕보는 것 같아. 뭔가, 뭔가, 뭔가.

그 놈들에겐 뭔가가 있어.

괜히 기분 나빠.

꼭 내 앞에서 보란 듯이 날아오르다 말고 콩밭에 앉으려다 말고를 반복하며 나를 놀리는 것도 같았다.

"꽹 과리이 이이 이~"

서리꾼들이 괘씸한 행위를 할 때마다 나는 쳤다. 마구 쳤다.

화들짝 놀라 푸드덕 거리며 저 멀리 날아가는 모양새 좀 보라지.

그럴 때면 나는 고소하기까지 했다.

(슬프게도 그건 찰나일 뿐이었다, 물론.)

생각하는 의자도 아니고, 아이들이 어릴 때 쓰던 그 핑크 의자가 이번엔 이 밭으로 이사 왔다.

밭을 한 바퀴 빙 돌며 꽹과리를 치고 잠시 쉬어가는 의자다.

설마, 혹시, 만에 하나, 이 의자 때문에 새들이 더 날아오는 거 아니야?

런, 맙소시!!!

콩밭에 핫핑크 의자는 좀 너무하잖아?

핫핑크는 핫스폿을 부르는 건가?


내가 이 나이에 저 새들하고 이러고 있어야 해?

사람도 아니고 조류랑?

말도 안 통하고 염치도 없는 서리꾼들이랑?

서리꾼들에게만 핫스폿이 되어버린 콩밭, 그 한가운데 경계하며 보초서는 인간이라니!

세상 가장 질 떨어지는 가성비, 세상 영양가 없는 가성비, 그 가성비는 콩밭에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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