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그리고 엄마가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스마트폰을 사면 그걸로 끝이 아니야."
"뭐가 또 있어?"
"매달마다 요금이란 걸 내야 돼."
"그런 것도 있어?"
"그럼! 스마트폰을 사용한 대가를 치르는 거지. 우리 집에서 전기 쓰면서 매달 돈을 내잖아. 그런 거랑 비슷한 거야. 공짜로 쓸 수는 없잖아. 알고 보면 세상에 공짜는 많이 없거든."
스마트폰은 한 번 사는 것으로 끝인 줄 알았던 철없는 어린것들은 세상에 그런 법도 다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그 기계를 구입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돈이 하나도 안 드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알려 줄 건 알려 줘야겠지?
"어차피 지금 너희에게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엄마는 당장 그걸 사 줄 생각도 전혀 없고 너희는 그걸 살 만한 자금이 없으니까 못 사겠지만 너희가 알아 둬야 할 게 있어."
사 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소리는 하는 거냐고 남매가 반발할 때 하더라도 이참에 아주 쐐기를 박는 거다.
"핸드폰 요금도 너희 입장에서는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어. 엄마는 핸드폰을 그렇게 많이 쓰지도 않고, 요금제를 아빠가 잘 알아봐서 고른 거라 많이 비싸진 않은데 어떤 사람들은 몇 만 원씩 내기도 하는 것 같더라? 너희가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잘만 알아보면 저렴한 요금제도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일급비밀을 발설할 시기가 아니다.
뭐든 쉽게 쉽게 마음만 먹으면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어린이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할 필요도 있었거니와 내가 아주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다소 위화감을 조성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과장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지만) 과연 어린이가 '굳이' 스마트폰을 장만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다시금 짚어보고 싶었던 거다.
남매는 금전적인 부분에서 살짝 예민한 것 같다.(고 나는 느껴왔다.) 보통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그들은 당연히 공짜일 줄 알았던 일에 자신들의 용돈에서 일부 내야 한다고 하면 금세 태도가 바뀌면서 없었던 일로 하자는 식으로 나올 때도 더러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코를 풀려면 살짝 손을 대는 시늉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무조건 공짜로만 다 받으려고 하면 안 되지. 그래서 나는 일부러 요금 얘기도 꺼냈던 것이다. 자신들의 용돈에서 꼬박꼬박 요금을 내야 하는 일만큼 무서운 일은 아마 없을 테니까. 현재 매달 2만 원의 용돈으로 살고 있는 그들에겐 호환, 마마, 호랑이, 불법 비디오테이프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물론 어디까지나 내 짐작으로만) 바로 핸드폰 요금일지도 몰랐다.
"그럼 그 요금이 얼만데?"
"그것도 다 달라. 여러 가지가 있어."
"돈 많이 들어?
"글쎄, 엄만 매달만 오천 원씩 내고 쓰는데 이 정도도 나쁘진 않아. 만약에 너희가 스마트폰을 사게 되더라도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요금제를 골라야 할 거야."
"아빠가 내주면 안 돼? 꼭 우리가 내야 돼?"
"글쎄, 그건 나중에 가서 정확히 얘기해야겠지만 반드시 아빠가 그 돈을 내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 너흰 어떻게 생각해?"
"그렇지."
"너희 용돈에서 요금을 내든지(=그러니까 만에 하나 나중에 백 년 후에 그 기계를 장만하더라도 분수에 맞지 않게 터무니없는 요금제 같은 건 꿈도 꾸지 말거라.) 아빠가 보태주든지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지. 아무튼 요금은 너희 용돈에서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너희가 쓰는 물건이니까 그 정도는 괜찮겠지?"
순간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매하게 되면 물건 귀한 줄도 모르고, 금전적인 부분에서 부모가 모든 것을 다 뒷바라지해 주게 되면 아이들이 다른 면에서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착각할지 모르니(그건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에 지출해야 할 일이 생길 때면 거의 항상 아이들도 자금을 보태게 하고 있다. 하다 못해 합기도 심사비를 내야 했을 때나 가족 여행을 갈 때도 남매는 각자의 용돈에서 보탰다.
"지금은 너희가 스마트폰이 없으니까 갖고 싶다고 그러지만 일단 갖게 되면 또 너희가 기대했던 것만큼 좋지 않을 수도 있어. 사람은 원래 없으면 갖고 싶다가도 막상 그걸 가지면 처음에는 좋다가 점점 만족도가 떨어지기도 하거든. 아마 엄마가 보기엔 너희들은 지금 당장 그것이 없으니까 그냥 막연하게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다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까, 너희한테는 없는 거라서 그냥 부럽고 그래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정말 신중히 잘 생각해야 해. 너희가 정말 그게 필요한지, 반드시 지금 있어야 하는지, 만약 사게 되면 그걸 어떻게 이용할 건지 그런 것들을 말이야."
"우리도 다 생각하고 있어."
그런 생각 같은 건 안 하고 있는 것(같다고 강하게 의심이 되는데)은데 우리 집 최연소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우리 아들은 무슨 생각으로 스마트폰을 사고 싶다고 그러는 거지?"
"스마트폰이 있으면 좋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있으면 어떤 면에서 어떻게 좋은지 그걸 얘기해 보라는 거야."
하지만, 남들 따라 덩달아서 그저 갖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어린 것이 논리적으로 엄마에게 대꾸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대답이 없었다.
"엄마 생각에는 우리 아들이 '그냥 다른 친구들도 있으니까 나도 갖고 싶다.' 이런 생각이 강한 것 같아. 엄마가 항상 말하잖아. 남들 따라 살 필요가 없다고. 네가 생각을 하고 살아야 돼. 나중에라도 네가 정말 이제 스마트폰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때 엄마랑 아빠한테 얘기해 줘. 대신 신중히 잘 생각해 봐야겠지?"
"응. 알았어."
"그게 무조건 좋기만 한 거면 엄마가 지금 당장이라도 사주지 왜 안 사주겠어? 엄마 아빠가 안 사는 이유가 다 있는 거야. 물론 좋은 점도 있지만 안 좋은 점도 분명히 있거든. 엄마랑 아빠는 그걸 다 생각하고 있는 거야. 지금도 계속 생각 중이고. 알겠지?"
내 말 뜻을 어느 정도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남매는 일단 수긍했다.
아마도, 한 번 아니라고 한 건 거의 끝까지 아니라는 것을 경험상 잘 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 시기'가 아직 아니라고 우리는 판단했다.
그리고 아이들이나 우리 부부가 이젠 그 '때'가 됐다고 판단이 되면 언제라도 그것을 구입할 의향은 있었다,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