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급히 연락을 주고받고 해야 할 일도 없고, 겨우 8살짜리가 학교 다니면서 처리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스마트폰이 필요한 거라지?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선생님의 지도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비롯하여 선생님이 알려주신 필수 준비물과 학교에서 마실 물과 알림장, 8칸짜리 국어 공책과 연필, 지우개 그 정도면 된 거 아니야?
여기에서 더 필요한 게 있다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아직 깎지 않은 여유분의 연필 한 두 자루 이 정도면 된 거 아니었냔 말이다.
아직 샤프도 허용이 안 되는 시점에서 효도폰도 아니고 스마트폰이라니?
아드님이 또 너무 앞서가시네.
"엄마, 나도 스마트폰 사줘."
난데없는 그 요망한 것의 등장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내가 잘못 들었겠지?
이제 겨우 의무교육을 시작한 어린이가 입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저 철없는 어린 것이 또 단단히 착각을 하셨구나.
불현듯, 한 오백 년 전에 어린이집 다니던 6살 딸이 찰나지만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했던 때가 스쳐 지나갔다.
이번엔 아드님이시다.
나름 2년 더 늦됐다.
하루는 하교하고 집에 와서 내게 그 요망한 것을 '사달라'고 했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 보는 '기막힘'이던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기원전 2,000년 경에.
누나가 하는 모든 것은, 했던 말이나 행동은 어느 것 하나 거의 빠뜨리지 않고 'ctrl+c' 한 후 'ctrl+v'하는 아드님이 아니시던가. 그렇다면 나는 다만 '복습'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 뻔한 수법, 이미 내가 잘 알고 있단다.
"내 친구들은 '다' 스마트폰 있단 말이야."
아들은 냅다 책임도 못질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려고 했다.
수법이 비슷하다 못해 아주 똑같다, 그 옛날 제 누나의 그것과.
너무 진부한 도입부에 나는 그만,
"아들아, 그건 옛날에 누나가 썼던 수법이란다. 그런 뻔한 거 말고 뭔가 더 참신한 거 없을까? 더 그럴듯하게 호소를 해 봐야지. 누나는 6살 때 그런 말을 했지만 넌 벌써 8살씩이나 먹지 않았느냐? 엄마는 논리적인 다른 이유가 필요해. 친구들이 이미 다 스마트폰이 있다는 그 진부한 말은 너무 시시해."
라고 진도를 나갈 필요조차 못 느꼈다.
게다가
"아들아, 방금 그말은 이미 몇 년 전에 누나가 똑같이 했던 말이야. 이미 한물 간 수법이라고! 한 물 가고 두 물 가고 열 물도 더 갔단다, 아들아!"
라고는 입도 뻥끗하지는 않았다 물론.
"우리 아들, 잘 들어 봐. 네가 지금 사업을 하기를 해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중요해서 급하게 연락을 받고 확인해야 할 일이 있기를 해? 너는 그냥 학교 갔다가 집에 오는 게 하루 일과잖아. 그렇지?"
"응. 그렇지."
"그리고 엄마가 지금 육아휴직을 해서 집에 있잖아. 혹시 만에 하나 정말 정말 네가 급히 어딘가로 연락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그래봤자 제일 먼저 엄마에게 연락을 해야겠지만) 선생님께 대신 연락해 달라고 부탁을 해. 너는 스마트폰이 없으니까 중간에서 연락해 달라고 엄마가 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려 놓을게. 하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거야."
"그래도 있으면 좋잖아."
아들은 딸보다는 더 집요한 면이 있다.
또 가끔, 아들은 꽉 막혀서 답답할 때가 있다. 어렸을 때일수록 더했다.(만약 이 글이 아들에게 발각되더라도 최대한 늦게 발각되기를)
"글쎄, 있으면 뭐가 좋을까? 잘 생각해 봐. 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집하고 학교만 왔다 갔다 하는 어린이가, 하루 중에서 밖에 있는 시간이 다 해 봐야 서 너 시간인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 것 같아. 그리고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선생님이 먼저 연락 주실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근데 누나 학교 다니는 거 보니까 그런 연락 한 번도 안 오더라. 넌 그냥 학교에 잘 있다 집에 오면 되는 거야. 학교에 있는 동안은 선생님이 계시고 집에 오면 엄마가 있는데 스마트폰이 굳이 필요할까?"
"하지만 스마트폰이 있으면 엄마한테 전화할 수도 있잖아."
어쭈?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 이거군.
"엄마한테 전화를 왜 할 건데?"
"할 말이 있을 수도 있지."
"할 말이 있으면 집에 와서 하면 되잖아. 집에 오는 데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인데 미리 전화까지 해 가면서 급하게 할 말이 과연 있을까? 물론 있을 수도 있지만(하지만 난 거의 없다고 99%를 장담했다) 엄마 생각에는 거의 없을 것 같아. 넌 어떻게 생각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내 친구들은 다 있어."
그래 이거였어, 네 누나가 썼던 수법이야.
나는 또 시작했다.
"자, 우리 아들 반 친구들이 총 몇 명이지?"
"스무 명? 아니 더 됐나?"
이런! 아드님은 반 친구들이 몇 명인지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하셨다.
그렇다면 내게 승산이 있다.
정확히 반 학생수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전부 다 있다'는 그 말은 사실과 다를 확률이 높다.
유치하지만 내가 반은 이기고 들어가게 생겼다.
"그럼 혹시 그중에 스마트폰 있는 친구들이 누구누구인지 알아?"
아직 학기 초라서 친구들 이름도 모르는 마당에, 내 반인지 네 반인지 구분도 못하는 마당에 그 이름들을 댈 리가 없었다.
아들은 고작 두세 명의 친구들 이름을 댔다.
아마도, 그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는 아이들이라기보다 이제 겨우 (앞, 뒤에 앉아서) 이름만 익힌 친구들일 확률이 더 많다.
"우리 아들, 넌 아까 너희 반 친구들이 거의 다 스마트폰이 있다고 했지만 몇 명 밖에 없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라는 말은 틀렸지. 우선 너는 확실히 없잖아. 그러니까 '다'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아. 넌 어떻게 생각해?"
"그렇네. 생각해 보니까 우리 반에는 있는 친구들보다 없는 친구들이 더 많아."
진작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처음부터 엄마를 상대로 어떻게든 '딜'을 해 보려고 했던 패기 넘치던 어린이는 어디 갔을꼬?
"그래. 엄마도 들어 보니까 오히려 없는 친구들이 더 많네. 그렇다면 스마트폰이 '거의 다 있다'라고 말할 게 아니라 '거의 다 없다'라고 말했어야지. 안 그래?"
"맞네. 우리 반 친구들은 스마트폰이 거의 다 없어. 나만 없는 건 아니야."
"그래. 스마트폰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사람들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살 수도 있고, 안 살 수도 있는 거야. 그건 선택하는 거지 필수가 아니잖아, 특히 1학년은 말이야.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리 아들은 어때?"
"나도 사실은 필요 없어."
아들은 서서히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뭬야? 그럼 엄마한테 그냥 해 본 말이었단 말이더냐? 애초에 엄마를 상대로 부풀려서 말한 것부터 잘못이었어. 이 엄마를 호락호락하게 봤겠다? 스마트폰이라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였어? 앞으로는 무조건 행동부터 하지 말고 신중히 생각한 후에 잘 다듬어서 논리적으로 엄마를 설득하려고 노력하도록! 알겠나?!"
라고는 본심을 말하지는 않았다 물론.
아들이 스마트폰을 사야 하는 당위성은 엄마가 그것을 굳이 살 필요도 없는 오만가지 이유에 비해 한없이 빈약했다. 너무 빈약한 나머지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처음부터 아들은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집에서 그런 요구를, 더군다나 나를 상대로 그런 요구를 하시다니!
이런 걸 고급 전문용어로 '사람 잘못 봤다'라고 한다지 아마?
"우리 아들이 옛날에 색종이로 스마트폰 잘 접던데. 오랜만에 그거 한 번 해 볼까? 다른 것도 잘 접지만 그때 그 스마트폰 정말 진짜 같더라."
"그럴까?"
그리하여 그날도 아드님은 실제로 소지한다면 속세와 인연 끊고 연락 두절되기 딱 좋은, 걸 수도 받을 수도 없는 '무늬만 스마트폰'인 그것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