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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ul 18. 2024

그래, 6살이면 스마트폰이 있어야지

당연히 있어야 하고 말고!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나도 이제 스마트폰 있다!"


옛날 옛적에, 퇴근 길에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씻기고 나자 느닷없이 6살 딸이 말했다.

'나도'라고?

'스마트폰'이라고?

나는 사 준 적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언제?

왜?


"엄마, 짜잔~ 어때? 내 스마트폰 멋지지?"

딸은 과연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소재는 색종이요, 기능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아무 것도 있을 수가 없는(인간적으로 인정할 건 인정해야만 한다),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렇다. 딸은 스마트폰을 드디어 장만해 버렸다.

만들어 버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아무튼, 필요는 6살 어린이로 하여금 만들어 버리게 한다, 기필코.

그 무렵 한창 종이접기에 빠져 있던 6살 딸과 4살 아들은 만들어 버렸다, 자그마치 스마트폰을.

"우와, 우리 딸 스마트폰 정말 멋있다. 이렇게 멋진 스마트폰이 어디서 났지? 어쩜! 엄마 것보다 더 좋아 보이는데? 엄마도 이런 스마트폰 있으면 좋겠다.(=물론 거짓말을 살짝 보탰다는 것쯤은 7년이 지난 지금은 너도 다 알겠지? 그냥 엄마 혼자 오버해서 한 번 해 본 소리란 것쯤은 너도 이미 알겠지?)"

나는 전생에도 못 떨어봤을 거라 확신하는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내생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호들갑을 최대한 다 떨고 또 떨었다.

"그치? 엄마, 내 스마트폰 멋지지?"

"이거 완전 최신형이잖아! 이런 스마트폰은 어디서 살 수 있는 거야?"

"이건 산 게 아니야. 내가 만들었어. 이걸로 사진도 찍을 수 있어."

"정말? 신기하다. 사진도 다 찍을 수 있는 거야? 사진도 진짜 잘 나오게 생겼네."

"당연하지. 자, 엄마 가만히 있어 봐. 내가 엄마 시진 찍어 줄게."

"그래. 엄마 사진 이쁘게 찍어 줘. 잠깐, 엄마 거울 좀 보고. 사진 찍을 줄 알았으면 화장 안 지우는 건데."

"자, 찰칵, 찰칵! 엄마. 봐봐. 어때? 사진 잘 나왔지?"

"우와. 진짜 사진 잘 나왔다. 우리 딸은 사진도 정말 잘 찍네."

아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게지?

딸은 종이접기로 만든 새까만 스마트폰을 들고 제법 진짜 스마트폰인 것마냥 공평하게도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번 나를 찍고 또 찍었다.

신통방통하기도 하지.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했을꼬?

바로 전날

"우리 반 친구들은 나만 빼고 다 스마트폰이 있어."

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내지는 혼자만의 대단한 착각에 빠져있었던 딸이었다.

엄마한테는 안통할 거라는 생각에 딸은 색종이를 동원해 실력 발휘를 했다.

집에 있는 종이접기 책에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스마트폰을 갈망해 왔는지를 반영하듯, 작금의 세태(반드시 나는 그쯤에서 작금의 세태'라는 말을 쓰고만 싶었다)를 여실히 보여주며 (나에게만)요망하고도 요망한 그 스마트폰이 버젓이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만상에!

맙소시!

종이접기 책에 스마트폰이라니!

나 어릴 때만 해도(이쯤에서 나는 다시금 또 라떼 한 잔을 들이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종이접기 책이란 자고로 동서남북이나 종이배나, 비행기 따위 밖에는, 그밖에는 별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어찌나 신나게 스마트폰 자랑을 하던지, 어찌나 실감이 나게 내 앞에서 카메라 셔터(물론 그 종이 쪼가리에 셔터 같은게 달려 있을 리는 만무하다)눌러 대던지, 나는 그만 딸아이가 애처러워지고 말았다.

안쓰러워졌다.

좀처럼 내겐 없는 일이지만 마음이 약해지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끝끝내 마음이 약해지지는 않았다, 물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일을 그르쳐서는 아니된다.

그때 이 모든 광경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4살 아들도 출동하셨다.

"엄마, 이거 봐봐. 나도 스마트폰 있지롱."

아들도 그럴싸한 '스마트폰을 접었다'.

"우와! 우리 아들도 드디어 스마트폰이 생겼네. 축하해."

"나도 엄마 사진 찍어 줄게."

"그래. 우리 아들도 엄마 사진 이쁘게 찍어 주라."

"알았어. 자, 찰칵, 찰칵. 어? 이 사진은 안되겠어. 잘못 찍었어. 엄마가 움직여서 흔들렸어.

얼씨구!

아들은 한 술 더 떴다.

자그마치 초점(물론 그 어린 것이 '초점'씩이나 되는 그 단어를 알 턱은 없지만 내가 해석한 바에 의하면 그렇다는 거다)이 흐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삭제 버튼을 눌렀다.(물론 그 삭제 버튼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나는 몰랐다)


"아빠! 이거 봐봐. 우리 스마트폰 생겼어!"

저녁에 퇴근한 그 양반에게도 남매는 마구마구 셔터를 눌렸다.

"애들이 스마트폰 생긴 기념으로 사진 찍어 준다잖아. 얼른 포즈 잡아."

대관절, 스마트폰이 다 무어냐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해 하는 그 양반에게 나는 잠자코 포즈나 취하라고 했다.

그날 우리집 멤버들은 사진을 찍고 또 찍었으며 잘못 나온 사진은 지우고 잘 나온 사진은 저장하고(물론 실체 같은 건 전혀 있을 수 없었지만)한참을 사진찍기 놀이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물론 아주 가끔은 서로 다른 장면을 얘기해서 잠시 어리둥절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

어린이는 이렇게 놀아야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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