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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22. 2024

학부모의 말-요즘 학교에서는 다 스마트폰 써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었다

2024. 8. 20.

"나중에 스마트폰 안 사줄 수는 없을 걸? 요즘 학교에서 다들 스마트폰을 쓰거든."


저 말을 들은 게 벌써 까마득하다.

그녀는 말했다.

초등학생들도 '거의 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닌다'라고.

없는 애들이 없다고.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때는.

"지금이야 스마트폰 안 사 줄 수 있을 것 같지? 시간 더 지나 봐. 애들이 요즘은 모둠 숙제도 다 같이 모여서 스마트폰으로 하고 자료 주고받고 그래.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학교 숙제도 그걸로 하고 조별 모임도 다 스마트폰으로 하던데?"

"진짜?"

"그래. 우리 애들만 봐도 그렇더라."

"언니네 애들만 그런 거 아니고?"

"아니라니까.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 없으면 숙제도 제대로 하기 힘들어."

"그럼 없는 애들은 어떡해? 그래도 반에 한 둘은 스마트폰이 없는 애들(=장차 나의 아이들)이 있을 거 아냐?"

"글쎄, 우리 애들 반에는 다 있는 것 같더라. 걸핏하면 조별 모임하는데 스마트폰 없으면 할 수도 없겠더라."

"그렇단 말이지."

"그래. 너희 애들이 지금은 어려서 그렇지 점점 고학년으로 갈수록 더 할 거다. 그땐 진짜 없으면 안 돼."

"정말 그럴까?"

"아무튼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 없는 애들이 없으니까."

"그래도 없는 애들이 있기도 하겠지."

"아마 거의 다 있을 거야."

"난 빨라도 중학교나 아니면 고등학교 들어가면 사 줄까 했는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야. 그런데 숙제를 스마트폰으로 해서 제출해야 하면 정말 없으면 곤란하겠네."


처음 저 얘기를 들었을 때는 '설마' 했다.

초등학교가 언제 이렇게 변해 버린 거지?

진작에 변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

'거의' 스마트폰이 필수라고?

숙제를 그 요망한 기기로 한다고?

아직 내게 닥치지 않은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라고만 막연히 생각해 왔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스마트폰과 관련해 남편과 합의 본 사항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그때 가서 고민해 보자는 거였다. 이를테면 지인의 말처럼 학교에서 학습과 관련된 일 같은 것 말이다. 어디까지나 일단은 아이들은 학생 신분이니만큼 그런 용도가 아니면 '굳이' 스마트폰씩이나 사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긴 생각해 보니 주위에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도 다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 고작 초등 저학년인(딸과 동갑) 친 조카와 시 조카도 하나씩 들고 다녔다.

어쩌다 거리에 돌아다니는 어린아이들(이제 겨우 초등학생이 된 것 같은, 가방도 버거워 보이는)도 스마트폰에 눈을 붙이고 땅만 보고 걸어 다니는 모습이 흔하게 보였다.

정말 내 아이들만 없는 건가?

아니야, 스마트폰이 있는 아이들만 지금 길에 나와 있는 것일 게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반 친구들이 거의 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니.

아직은 저학년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초등 1,2,3 학년짜리들이?

물론 그 아이들의 부모도 그것을 사 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남들이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주든 집을 사주든 남의 집 아이들은 남의 부모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내 아이들의 일에 집중해야만 한다.

둘 씩이나 되는 내 아이들 건사하기에도 바쁘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내 코가 석자'라고 한다지 아마?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래도' 저학년이면 스마트폰으로 숙제를 해서 제출한다거나 하는 일은 드물 것 같았다. 가뜩이나 스마트폰 중독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학교에서도 종종 대놓고 교육하고 주의를 주고 있는 마당에, 그건 아니지 않은가?

지인의 말마따나 고학년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그래도 나는 최대한 스마트폰을 늦게 사 주고 싶은데, 그전에 필요하면 일반 전화기능만 있다시피 한 그런 휴대전화를 사 줄 생각(그래서 딸이 학교에 갇혔던 사건을 겪고 3학년 때 일반 휴대 전화기를 사줬다)이었는데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이를 어쩐다?


"옆집 엄마 말 들을 것 없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건 옆집 엄마다."

라고도 했다.

"옆집 엄마는 안 만나는 게 상책, 옆집 엄마 말도 안 듣는 게 상책."

이라고까지 말한 이도 있다, 심지어.

(그럼, 혹시, 만에 하나, 옆집 아빠는? 옆집 아빠는 괜찮고?)

자식은 내 뚜렷한 주관으로 키워야지 자꾸 옆에서 속닥거리면 좋을 거 하나 없다고.

하지만 그 당시 지인은 그때 내게 '속닥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현재 상황을, 초등생의 현실을 '귀띔'해 준 것뿐이었다.

내게 무조건 너도 아이들한테 하나씩 장만해 줘라, 무조건 사줘야 한다,라는 식은 아니었던 거다.

현실은 그렇단 말이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겠어.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딱히 원하지 않는다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스마트폰을 사 줄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얼토당토않은 나만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괜히 저 말을 들어가지고 심란해졌다.

나도 무조건 안 사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필요하면, 스마트폰을 구입할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사 줄 의향은 충분히 있었다.

다만 '목적'이 있어야만 했다.

최소한 '다른 집 애들은 다 있는데 우리 애들만 없으니까 사줘야겠다'는 식의 무성의한 이유는 절대 아니다.

목적의식이 없는 스마트폰 사용은 아니 될 말이다.

학생이 공부를 하겠다는데 이를 제지하고 나설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남들은 다 스마트폰으로 수업에 참여하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들 스마트폰으로 모임방을 만들어서 공동 과제를 한다는데, 내 아이들만 그것이 없어서 참여할 수 없게 된다면?

단순히 남들은 다 있는데 우리 애들만 없으면 안 된다는 식의 이유가 아니라, 적어도 학생인 자녀가 수업과 관련된 일은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겠나.

생각만으로도 혼란스러웠다.

마음도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가정은 올해 딸이 6학년이 되면서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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