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Aug 26. 2024

무화과를 나르려거든 발로 뻥 차세요

아저씨는, 바구니에 든 게 뭐냐고 물으셨어

2024. 8. 25.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무화과 파티 할 거야? 아님 장사 나갈 거야?"

"아니."

"무슨 무화과가 그렇게 많아?"

"다 너희 먹으라고 외할아버지가 따 주신 거지."


여차 하면 저 많은 무화과를 이고 지고 정말 아이들과 5일 장에라도 가서 내다 팔아도 될 것 같았다.

올해도 친정에는 무화과가 풍년이다.

이미 그동안 그 맛을 많이 봐 왔지만 또 콩고물 좀 많이 떨어지게 생겼다.


"그거 뭐요?"

한 아저씨가 나중에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시더니 내 짐 보따리를 슬쩍 훑으시고 저렇게 묻는 것이다.

"무화과잖아요. 보면 모르세요? 다른 과일들은 꼭 꽃이 지고 난 다음에 열매를 맺지만 무화과는 꽃도 피지 않고 바로 열매가 열려서 무화과인 거잖아요. 꽃이 없는 과일, 그래서 그렇잖아요. 왜 그런 시 모르세요? 김지하 시인의 '무화과' 안 들어 보셨어요? 꽃은 안 피지만 그 무화과 속에 꽃이 피었다고 노래한 그 시 말입니다! 전 그 시를 처음 읽고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답니다. 열매 속에 꽃이 피다니요! 정말 시인은 뭔가 달라도 달라요, 그렇죠?"

라고는 오두방정 떨지는 않았다, 물론.

대신 나는 잽싸게 바구니 안에 있는 아무 무화과 하나를 집어 들어 아저씨 앞에 들이밀었다.

동시에 경계를 해제하고 한 마디 했다.

"하나 드실래요?"

다 알면서 그러셔.

뻔히 무화과인 줄 아시면서.

가만,

저 말인즉,

"무화과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이런 의미인가?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중에 문이 닫히려는 찰나, 부랴부랴 안으로 달려오는 한 부부(로 보이는 커플)가 있었다.

"골고루 뭘 많이도 가져오셨네. "

아저씨는 다짜고짜 나의 친정 이바지에 대해 토킹 어바웃 하기 시작하셨다.

유난히 친정에서 먹을거리를 잔뜩 챙겨 온 날이었다.

쌀, 찹쌀, 쪽파, 상추, 깻잎, 애플 수박 다섯 통 그리고 문제의(+다량의+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무화과와 함께한 날이었다.

쇼핑 카트를 가득 채우고도 달리 담을 가방이 없어 친정 집에서 쓰는 바구니며 대야에 닥치는 대로 친정 로컬

푸드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양손에 짐을 다 들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어 발로 대야와 바구니를 밀며 겨우 엘리베이터를 탄 후였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좀 거칠게 그것들을 다루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내려가서 짐을 가져오기 싫었다. 두 번에 나눠서 짐을 가져오면 더 수월할 텐데 그게 귀찮아서 한방에 해결하려고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단순 무식하게) 그 이바지들을 꾸역꾸역 엘리베이터 안에 집에 넣었던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디 장사 나가는 줄 알았을 거다.

아저씨의 시선이 내 무화과에 머물렀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빤히 무화과를 쳐다보는 데에 시치미 떼고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나 그렇게 깍쟁이는 아니다.

나 그렇게 야박하지는 않다.(라고 주장하지만 어떻게 입증할 방법 같은 건 없다, 물론.)

그래서 나는 무화과를 집어 들었던 거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옆에 계신 아내(로 보이는) 분은 거절하셨다.

그런데 (남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망설임 없이 바로 손을 내미셨다.

"주시는데 받아."

그렇게 말씀하시며 아내 분 몫까지 내게서 받아 가셨다.

"저번에도 우리 어머님이랑 같이 탔을 때 쪽파 주시더니만..."

아,

그러니까 이 아저씨가 그 아저씨였구나.

생각났다.

올봄에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도 주고 자꾸 주시네."

그게 말이죠, 그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셔서 모른 척하기 힘들었어요, 사실.

"좀 가져가서 드실래요?"

무화과는 정말 많았으므로, 자칫 잘못하면 물러지고 상하기 쉬웠으므로 누구와라도 나는 나눠먹을 의향이 충분히 있었다.

"아니요, 우리 어머님 거랑 딱 세 개만 있으면 돼요."

이렇게 말씀하시며 바구니에서 무화과 세 개를 '고르셨다'.

효성이 지극한 분이시네, 어머님 몫까지 챙기시고.

지극한 효심에 감동한 나머지 나는 무화과를 더 적극적으로 권유할 의무감마저 느꼈다.

고백하건대, 다 못 먹고 상해서 버릴 때도 있었으므로(때늦은 나의 양심 고백이 영원히 우리 부모님 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기를, 제발) 난 차라리 반이라도 기꺼이 덜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정말 딱 세 개만 필요한 것인지 어쩐 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턱대고

"원하는 만큼 덜어 가세요."

라고 난데없이 인심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 가져가셔도 돼요."

"괜찮아요. 가져가세요."

나는 재차 권했다.

의지의 한국인은 '삼 세 번'의 민족이 아니던가?

(근거는 없지만) 법에도 농산물 나눔을 할 때는 의무적으로 세 번 정도 상대방의 의향을 물어야 한다고 나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저씨는 극구 사양하셨다.(고 믿는다, 믿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내릴 채비를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아내(로 보이는)분께 서둘러 말씀하셨다.

"얼른 좀 들어다 드려."

그 말에 화들짝 놀라 나는 바로 액션을 취했다.

행여라도 나는 그분이 내 농산물들을 정말 '굳이' 들어다 주실까 봐 발로 힘차게 대야와 바구니를 뻥 찼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쭈구리! 너구리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