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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11. 2024

남편이 내 공무원연금으로 노잣돈을 하라고 했다

넌 나에게 글감을 줬어, 오늘도!

2024. 9. 9.

< 사진 임자 = 글임자 >


"당신 연금으로 당신 노잣돈 하면 되겠다."

"뭐? 벌써 나를 보내 버리려고?"


이 인간이 아무리 내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벌써부터 나를 황천길로 보내 버리려는 건가?

넌 나에게 글감을 줬어, 오늘도!


아직도 확실하게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도 서지 않은 채 둘 다 불안에 떨며 그 양반 본인의 공무원 연금은 일단 나중에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금 '나의 공무원 연금'에 대해 토킹 어바웃하던 참이었다.

"지금 여기서 내 노잣돈 얘기 나올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나 아직 갈 생각 없는데?"

"아, 말이 헛나왔다."

"진심이 나온 거 아니고?"

"아니야, 노후 대비하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잘못 말했어."

"그거랑 이거랑은 완전 차원이 다른 건데?"

"실수라고."

"얼마나 오랫동안 진심으로 생각해 왔으면 노잣돈이란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

"잘못 말한 거라니까."

"밖에서도 그러지? 조심해. 어쩔 때 보면 진짜 안 해도 될 말을 하고 얼토당토않은 소리도 잘하고 그러더라. 집에서도 그러는데 밖에서 안 그러란 법 있어?"

물론 누가 누구한테 저런 훈계를 하는 건지 내가 말하고도 웃기지만 말이다.

"진짜 그래. 내가 말해 놓고도 말실수한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는 것 같아."

"있는 것 같은 게 아니라 '확실히' 있어."

정말이다.

경험상,

살아보니,

그 양반은 왕왕 그런 '사건'을 만들고 다니신다.

그래도 그렇지.

밥상 앞에서 노잣돈씩이나 운운할 건 아니었잖아.

어쩜 '노후 대비'와 '노잣돈'을 헷갈릴 수가 있는 거람?

노후 대비는 산 자의 몫이고 노잣돈은 죽은 자의 몫이 아니던가?

물론 부처님은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라 하셨고, 월명사도 '생과 사는 여기 있으매~' 노래했지만, 나는 부처님도 아니고 월명사도 아니니까, 한낱 어리석은 중생에 지나지 않으니까 '생과 사'를 엄연히 구분 지어야만 하겠어.

특히 누구 앞에서는 말이야.

노잣돈을 발설하기 전에 노후 대비 얘기가 먼저 나왔어야지.

'이 몸이 죽고 죽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하기 직전에 그때 노잣돈 생각을 하셔야지.

말이란 게 헛나올 때가 있긴 있다.

나도 가끔은 의도와는 다르게 헛말이 나오곤 하니까 물론.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아내의 노잣돈을 염두에 두는 남편이라니!

살뜰한 당신, 준비성이 철저한 당신.

그나저나 내 노잣돈은 얼마나 챙겨두면 되려나?

"난 다 당신 생각해서 그러지."

"내 생각하지 마."

"이 사람이. 생각해 주면 고마운 줄 모르고."

"내 생각은 안 해줘도 돼. 그냥 나는 없다고 생각해. 제발 내 생각은 하지 마."


생각만 해, 제~에~발.

속으로만 생각하라고, 나처럼.

아무리 오랫동안 마음으로 품어 온 숙원 사업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입 밖으로 내서는 아니 될 것이야.

신중히 생각하고 말해야지.

아직,

솔직히 '아직'이잖아.

벌써부터 노잣돈부터 생각할 건 아니잖아.

내 애들은 키워야지.

초등학교도 아직 졸업 안 했잖아.

아무리 급해도 초등학교 졸업하는 건 보고 싶어.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니겠지?

황천길 얼리어답터는 지금 되고 싶지 않아.

그런 얼리어답터엔 관심 없어.

그럴 생각 '아직은' 없어.

때 되면 내가 알아서 황천길 잘 찾아갈게.

당신 보고 노잣돈 보태 달라고 하지는 않을게, 최소한.

같이 가자고도 하지는 않을게, 양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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