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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3. 2024

13일의 금요일보다 더 무서워

월요일이 안 오면 좋겠다

2024. 9. 22.

< 사진 임자 = 글임자 >


"고생했어."


그럼, 당연히 고생했지.

사고 친 거 뒷수습하느라 무지하게 고생했지, 날도 더운데.

왜 이렇게 나는 이발 실력이 한결같을까?(=왜 한결같이 일관성이 없을까?)


"여름에는 그냥 미용실 가는 게 어때? 날도 더운데."

"그냥 당신이 해 줘."

또 3주가 됐다.

그래서 또 잘랐다.

이발해달라고 앉아 있는 손님(?)만 더운 게 아니라 가위를 들고 있는 나도 너무 덥다. 에어컨을 틀어도 덥다.  행여라도 잘린 머리카락이 사방팔방 날릴까 봐 바람을 살짝 피해서 이발하느라고 진심으로 심하게 덥다.

이쯤 되면 여름엔 잠시 휴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은 예기치 못한 긴급 상황이 발생하는 바람에 이발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방구석 이발 4 년 만에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아들을 이발해 줄 때는 간혹 그런 경우가 더러 있긴 했으나 그 양반 머리를 이발해 줄 때는 (나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니) 정신을 더 바짝 차리고 임했으므로 일찍이 이런 사고는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이번에는 유난히 머리가 더 긴 것 같은데?"

"그래? 평소랑 비슷하게 잘랐는데? 잘 먹어서 머리카락이 더 잘 자랐나 보지."

"그런가?"

"그럴지도 몰라. 그럼 이번엔 좀 더 짧게 잘라 주리?"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보기에도 항상 3주마다 이발을 하는데 이번엔 같은 3주 만이었는데도 유난히 머리가 더 길어 보였다. 최근에 찍은 사진을 보더니 머리가 너무 길어서 지저분해 보인다는 그 말을 자꾸 반복했다.

오호라, 머리를 짧게 잘라 달란 말이군.

그래도 워낙 실력이 일정치 않은 무면허 나이롱 이발사는 일단 길게 자르고 봐야 안심이다. 자칫 잘못하다가 처음부터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버리면 뒷수습이 불가하므로 나름 나도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이발을 해 온 거였다.

클리퍼를 끼우고 뒷머리와 옆머리를 정리할 때까지만 해도 순조로웠다.

육아 휴직 했을 때 대학교 평생 교육원에서 3개월씩이나 교수님께 배웠는데 그때 배운 건 온데간데없고 이젠 내가 기분 내키는 대로 이발 순서와 방향을 정한다. 그러니까 대중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원칙이 없다는 말이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뒤통수 위쪽 머리를 이발기로 조금씩 쳐내다가 기울기가 잘못된 건지 이발기를 떼고 나자 목덜미 뒤쪽이 훤히 드러나버렸다. 그때의 아찔함이라니!

다행히 아래쪽이라 주위를 그에 맞게 좀 더 밀어버리면(?) 얼추 균형이 맞을 것 같았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뒤통수의 핫스폿을 진정시키고 나는 다시 한번 안도했다.

인간의 뒤통수에 눈이 달려 있지 않음에...


참 아이러니하다.

3주마다 꼬박꼬박 같은 사람 머리를 잘라 주는데 어쩜 그렇게 실력도 안 늘고 오히려 더 퇴보하는 느낌인 거람?

13일의 금요일 같은 거 하나도 안 무섭다.

그러나,

나는 지금 월요일이 두렵다.

무섭다.

출근을 하면 이제 사무실 직원들이 그 양반에게 적극적으로 어떤 제보를 해 올지도 모른다. 그의 뒤통수에 어떤 참사가 빚어졌는지에 대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는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그러면 머리카락은 또 어느새 자라나 있을 테니까.

자고로 시간이 약이라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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