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4.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친구들이 아무도 없어."
"왜?"
"나도 몰라. 계속 기다리는데 아무도 안 와."
"약속 시간도 지났잖아. 혹시 모르니까 좀 더 기다려 봐."
"알았어."
"계속 안 오면 그냥 집에 와. 날도 더운데."
"응."
딸은 분명히 친구들과 약속한 시간이 되기 15분 전에 집을 나섰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 제대로 갔다. 그런데 친구들이 아무도 안 왔다니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딸이 착각했을 리는 없고 친구들이 깜빡했을 리도 없을 텐데, 한 둘도 아니고 4명이 모두 안 나왔다는 건 정말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 나 주말에 친구들하고 놀아도 돼?"
"응, 별 스케줄 없으니까 그래."
분명히 친구들과의 약속을, 만나기로 한 시간과 날짜를, 내게 정확히 알려줬었다.
그리고 딸은 일주일 내내 그날만 기다려왔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처음으로 학교도 안 가는 주말 시간에 '따로' 친한 친구들 다섯 명이 모여서 놀기로 했다고 했다.
얼마나 들떠서 신나 하던지 그날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면 큰일 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큰일이, 정말 큰일이 나고야 말았다.
이것도 또 그 요망한 '스마트폰' 때문이었다.
한여름에 하필이면 날도 뜨거운 낮 12시 30분을 약속 시간으로 잡은 것부터가 불길했다.(고 아무 상관도 없는 계절과 시간을 뒤늦게 원망해 본다) 어차피 친구들이 다 모이면 갈 곳은 정해져 있으니 그 목표 지점 근처에서 만나도 될 것을 굳이 번거롭게 학교 운동장에서 보자고 한 것부터가 잘못 꿴 단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또 억지로 끌어다 꿰어 맞추고 있다)
"친구들이 왜 한 명도 안 온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더위를 먹은 건지 실망감에 기운이 빠진 건지 딸은 너무 의기소침해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네 명이 다 깜빡할 리도 없잖아? 어떻게 한 명도 안 나올 수가 있어? 어떻게 된 거야?"
딸보다도 내가 더 호들갑이었다.
상식적으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딸의 멤버들은 총 다섯 명, 딸을 제외한 네 명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니.
그러기도 힘든 일이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일부러 친구들이 안 나온 건 아니겠지.
가뜩이나 불 난 집에 선풍기를 강으로 틀어서 더 활활 타오르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나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친구들이 다 스마트폰이 있어서 단톡방 하거든. 근데 나는 그게 안되잖아. OO가 못 나온다고 하니까, OO도 일이 있어서 못 나온다고 하고 그래서 그냥 약속 취소됐나 봐."
"그럼 너한테도 따로 연락을 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너 스마트폰 아닌 거 번히 다 알잖아."
"깜빡했대. OO이가 내가 단체방 못 보니까 따로 문자 보낸다고 했는데 깜빡하고 안 보내버렸대. 그래서 그렇게 됐어."
"그래. 그랬구나. OO이가 깜빡 안 하고 너한테 연락만 해줬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괜히 나가서 고생만 하고 왔네. 속상했겠다. 이미 일어난 일인데 어쩌겠어. 친구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일부러 그럴 친구도 아니잖아. 그치?"
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이들이라 여러 가지 생각 못하고 그럴 수도 있다. 항상 모이던 멤버들하고만 얘기를 하다 보면 다른 친구를 잊을 수도 있다. 얘기해야지 했다가도 금세 깜빡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딸이 그런 일을 당하니 나도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딸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렇다고 해서,
"얘들아, 합격이 폰은 스마트폰 아닌 거 뻔히 알면서 꼭 단톡방에서 그렇게 해야만 했니? 어쩜 한 명도 문자나 전화 한 통도 해 주지 않았던 거야? 너무 서운하다."
라고 딸의 친구들에게 뒷북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요즘은 아이들도 단톡방이 기본인가 보다.
학교에서는 가능하면 단톡방 같은 건 만들지 말라고, 괜히 만들어서 친구를 험담하거나 안 좋은 방향으로 운영될까 봐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로만 단속한다고 될 일인가. 단톡방에 있다고 해서 꼭 안 좋은 행동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잘 운영하면 분명히 순기능도 있다.
꼭 단톡방을 만들어야 했을까?
물론 만들 수는 있다.
만드는 건 친구들의 자유니까.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항상 내 딸을 신경쓰고 있어야 할 의무도 없긴 하다. 스마트폰이 없는 건 단지 딸 사정일 뿐이니까.
다만 조금 더 다른 친구를 생각해 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다.
물론 이것도 다 내 욕심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먼저 나서서 딸에게 알려 주겠다고 한 친구도 있긴 있었잖은가.
스마트폰이 없다는 건 이렇듯 종종 어떤 무리에서 제외되고 잊히고 관심 밖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래들과의 사교의 장인 동시에 종종 수업 시간 중 각종 교과 활동의 보조 도구로서 이미 스마트폰은 초등학교 6학년인 딸에게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막연하고도 서글픈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