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Oct 04. 2024

역시 넌 결국엔 눕고 싶었던 게야

일단은 앉아 있자

2024. 9. 15.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이거 봐봐. 핸드폰으로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그것도 되고 고것도 돼."


그러니까 초등학교3학년 때였던가.

혼자만 학교 도서관에 남아서 오후 6시가 되도록 책을 보다가 다들 나가고 학교 문이 잠긴 줄도 모르고 있다가 갇혀 버린 후 딸에게 핸드폰을 사준 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최소한 아이와 연락할 수단은 있어야겠다 싶어 급히 핸드폰을 사줬다.

복도에 있는 공중전화로 콜렉트콜을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물론 스마트폰까지는 필요 없었으니 '효도폰' 비슷한 것으로 말이다.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그것 하나만으로도 딸은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다.(고 나는 믿어왔다)


"합격아, 핸드폰이 있으니까 좋아?"

"당연히 좋지!"

"뭐가 그렇게 좋아?"

"엄마한테 문자도 보낼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알람도 맞출 수 있고 또..."

"그래? 좋으면 됐다."

"엄마. 이거 진짜 신기해. 이런 거 알았어?"

딸은 신문물을 만난 기쁨에 겨워 처음엔(물론 그러리라고 충분히 예상을 했지만) 그 핸드폰을 가지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과장 좀 보태자면) 하루 종일 그것만 가지고 놀다시피 했고(과연 별 기능도 없는 그것을 가지고 하루 종일 놀 것이 뭐가 있으랴 싶으면서도) 자나 깨나 애지중지 보물단지 모시듯 했다.

왜 그렇지 않으랴.

없던 것이 생겼을 때의 기쁨,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 별 기대도 없었는데 느닷없는 선물을 받았을 때의 벅찬 감동 그런 비슷한 것에 휩싸여 딸은 한동안 신이 났었다.(고 그렇게 보였다, 내 눈에는)

그러던 것이, 

그랬었는데, 

계속 그러진 않더라도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그 기간이 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단단히 착각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물론 주위에서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스마트폰은커녕 단순히 문자와 전화만 되는 핸드폰 그것도 없는 아이들이 있긴 있는데 너는 그래도 초등학교 3학년이 벌써 핸드폰을 갖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냐고, 사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핸드폰 같은 건 꿈도 안 꿨었는데 (예상치 못한 불상사로 인해 결국 사 주긴 했지만) 벌써부터  그것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냐고 너무 엄마 속이 빤히 보이는 그런 말은 더 이상 효력이 없었다. 


"엄마, 아빠 고마워요!"

"뭐가?"

"핸드폰 사줘서요."

"그래. 혹시 급히 연락할 일 있을지도 모르니까 잘 가지고 다녀."

"네. 정말 고마워요!"

라고 한껏 들떠서 요리보고 조리 보며 몇 날 며칠 동안 우리만 보면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살던 때가 분명히 있었는데 말이다.

"엄마, 근데 내 핸드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라서 기능이 별로 없어."

라는 말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그 핸드폰의 겸손한 기능으로 인해 현실을 직시할 때쯤, 딸은 이내 시들해지고 말았던 것 같다, 제가 소유한 새로운 기기가 말이다.

"엄마는 스마트폰이라 좋겠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다 되잖아."

이제 딸은 슬슬 욕심을 내는 것 같았다.(고 나는 느꼈다.)

"합격아, 엄마가 핸드폰을 사 준 이유가 뭐지? 저번에 너 학교에 갇혀서 연락도 안되고 그래서 사 준 거잖아. 핸드폰의 기본 기능은 그게 우선이야. 다른 기능은 그렇게 필요해 보이지 않는데? 어차피 핸드폰이란 게 처음에 휴대용 전화기 목적으로 나온 거 아니었어?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많은 기능이 너한테는 아직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렇긴 하지. 그래도 기능이 더 많으면 좋잖아."

"일단은 지금 핸드폰이 전화도 잘 되고 문자도 잘 되잖아. 그리고 집에서는 노트북으로 공부도 하고 숙제도 할 수 있고 필요한 걸 할 수 있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응. 엄마 말이 맞네."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뭔가 아쉬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내가 왜 모를까.

(욕심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다는 걸, 내려다 보기보다는 자꾸 올려다보고 싶다는 걸 나도 잘 아는데 말이다.


역시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어.

맨 처음 나와 문자를 시도 때도 없이 주고받으며 그 단순한 일에도 재미있어하며 웃음꽃이 끊이질 않던 아이였는데(하긴 그땐 고작 초등학교3학년이라 가능했었는지도 모른다), 등굣길에 본 꽃이 예뻐서 엄마한테 보여주려고 사진 찍어 왔다며 집에 오자마자 호들갑스럽게 그 사진을 내밀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는데...


하지만, 

네기 아무리 눕고 싶어도 누울 자리를 보고 자리도 뻗어야겠지?

그리고 언제쯤 눕는 게 좋을지도 잘 생각해 봐야겠지?

결정적으로 그 시기는 너 혼자만 결정할 건 아니고 우리가 같이 생각해 볼 일이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