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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17. 2024

길 가는 저 아이들을 보거라

스마트폰 사용 실태 현장체험학습 하던 날

2024. 10. 1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저기 봐봐. 애들이 핸드폰만 보느라고 차가 오는지 어쩐지 관심도 없어."

"엄마. 어린이들만 그러는 거 아닌데? 어른들도 그러는데?"


그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길을 걷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물론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요망한 것에 정신없이 한눈 파느라고 주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광경은 낯선 게 아니었다.

예전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초반에 몇 번 데려다주고 데리고 올 때 보면 초등학생들이 학교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핸드폰부터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아니, 학교 건물을 빠져나오면서부터 이미 스마트폰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추측컨대, 교실을 나오면서 그때부터 그러고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강하게 의심이 들었다.

"큰일이다. 애들이 주변을 안 살펴봐. 특히 횡단보도 건널 때 더 조심해야 하는데 정신 차리고 조심히 건너야 하는데도 그런 건 안 보고 핸드폰만 보면서 걸어 가더라니까."

집에 온 아이들에게 내가 그날 얼마나 대단한(?) 광경을 목격했는지 미주알고주알 다 쏟아냈다.

"도대체 어린이들이 뭘 그렇게 보는 걸까?"

정말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렇게 다급하게 길을 걸어가면서까지 보아야 할 그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것도 초등학생들이.(물론 초등학생들이 들으면 발끈할 일일지 모르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엄마, 내 친구도 그냥 걸어가면서 게임해. 내 친구들은 거의 다 그러던데?"

아들이 간증을 마치자 딸도 바통을 이어받았다.

"아휴, 엄마.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뭐. 그냥 다 그러고 사는 거야."

어마?

얘 좀 보게나? 이제 만 12살짜리가 마치 120살짜리처럼 말하네?

"다 그러긴 뭐가 다 그래? 안 그런 어린이들도 있겠지."

"그렇게 다녀도 다 잘 다녀. 큰 일 안 나."

"너 너무 안일한 거 아니야? 그렇게 핸드폰에 정신 팔려서 걸으면 위험할 수 있잖아. 엄마는 그게 걱정되는 거지. 우리가 그냥 앞만 보고 걸어가다가도 잠깐 한눈팔아서 넘어지기도 하고 그러는데 특히 핸드폰을 보면서 걸으면 아무래도 주위를 잘 못 살피니까 사고가 날 확률도 더 높다잖아. 엄마도 다 들은 얘기가 있어. 괜히 그러는 게 아니야."

"에이, 엄마는 너무 걱정이 많아."

"무조건 핸드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최소한 차도 다니는 길을 건널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이 말이지. 횡단보도 건너는데 일 년이 걸려? 백 년이 걸려? 그거 잠깐 안 본다고 무슨 큰 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 잠깐만 참으면 될 텐데. 그래봐야 겨우 10초에서 30초 사이 아니야?"

"그렇긴 하지."


길 가다 많이 뵀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거 없이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거기에만 눈을 고정시키고 옆에 사람이 오는지 차가 오는지 장애물이 있는지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무조건 걷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런 사람들과 부딪칠 뻔한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 것도 있고 하니 길을 걸으면서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한다.(결정적으로 급히 나를 찾아주는 데가 없긴 하다) 특히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내가 길을 걸어가면서까지 핸드폰을 이용해야 할 중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꼭 핸드폰을 써야 할 일이 있으면 가능하면 사람이 없는 한쪽으로 빗겨 나서 멈춘 상태에서 핸드폰을 작동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의식적으로라도 말이다)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저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테니까.


"합격아, 저기 저 애 봐 봐. 초등학생 같은데 신호등이 바뀌었는데도 건널 생각도 안 하지? 왜 그러겠어? 지금 핸드폰에 빠져 있는 게 틀림없어. 계속 그것만 보고 있잖아."

"정말 그러네."

내가 본 그 아이가 신호등이 녹색인 것을 알아채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우리와 그 애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아마 저 애는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핸드폰을 계속 볼 걸?"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

"손이 계속 올라가 있잖아. 기다려 봐."

"엄마, 진짜네? 엄마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보니까 계속 핸드폰을 보던 사람이 신호에 걸리면 신호 기다리는 중에도 핸드폰 보고 길을 건널 때도 계속 보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내내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녹색불에서 이제 곧 빨간불로 바뀔 텐데 서두르는 기색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서

"얘야, 곧 빨간불로 바뀐다. 핸드폰 그만 보고 얼른 조심히 건너야지!"

라고 소리칠 수도 없었다.

우리는 길을 건너고 그 아이가 어떻게 하고 있나 뒤돌아 봤더니 빨간불로 바뀌었어도 핸드폰만 보고 길을 건너고 있었다.(그 횡단보도는 약 30초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

"엄마 말대로짜 계속 핸드폰만 보고 걸어가네."

딸이 뒤돌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엄마가 제일 걱정되는 건 저거야. 길에서 저렇게 한눈팔까 봐."

"에이, 걱정하지 마. 엄마. 난 안 그래."

그럼, 안 그러겠지, 안 그래야지.

경험상, 거짓말 조금 보태면 길을 가는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모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걷는다.

어리고 젊을수록 그런 경향은 강한 것 같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일이 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연세 지긋해 보이는 어른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칠순이나 팔순처럼 보이는 어른들도 걸어가면서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는 분이 계셨고,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거기에서 눈을 떼지 않는 분들이 꽤 있었다.

"엄마, 저 할아버지 봐봐. 저 할아버지는 어린이도 아닌데 어른인데도 길 건너면서 핸드폰만 보고 걸어가네."

딸이 제보했다.

"응,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많더라. 연세 많은 어른들은 안 그래도 걸음이 느린데 핸드폰까지 보면서 걸어가면 더 늦겠다. 그치?"


"자, 오늘 엄마랑 같이 길 가 보니까 어때? 정말 핸드폰만 보고 가는 사람들이 진짜 많지?"

"응, 정말 그러네."

"도대체 그 사람들은 가 그렇게 볼 게 많을까? 물론 급히 확인해야 할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닌 경우도 있을 거야. 그치?"

"그렇겠지."

"그래도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최소한 횡단보도에서는 좀 더 조심하면 더 좋을 텐데. 나중에 혹시 네가 스마트폰을 갖게 되도라도 이건 명심해. 알겠지?"

"걱정하지 마, 엄마. 그럼 이제 나 스마트폰 사주는 거야?"

"아니, 지금 사 준다고는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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